생각 13. 가뭄·메르스 피해의 책임과 추경 논쟁

더불어삶의 생각 2015. 7. 20. 12:54

논평 7. 가뭄·메르스 피해의 책임과 추경 논쟁

 

정부가 11조 8000억원 규모의 추경 예산안을 내놓고 20일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메르스와 가뭄으로 침체된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란다.


단언컨대 메르스 확산의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 있다. 정부는 방역에는 건성으로 임하고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병원과 지역에 관한 정보를 숨기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는 동안 유언비어를 단속하겠다며 엄포를 놓는 일은 잊지 않았다. 국민의 안전(safety)보다 정권 안보(security)를 먼저 챙긴 것이다. 애초에 평택성모병원에서 1번 환자가 발생했을 때 방역당국은 신고를 받고도 건성으로 조사했다. 환자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와중에도 정부는 삼성서울병원의 편의 봐주기에 급급했다. 나중에는 국민 개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면서 환자의 신상정보를 무작정 공개하거나 한 지역을 거의 폐쇄하는 조치로 또 다른 불편을 초래했다. 메르스 확산으로 186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1만명 이상이 격리를 당했다. 정부와 언론이 메르스로 인한 침체니 손실이니 떠들어댔지만, 민중의 고통과 불편을 숫자로 어떻게 다 환산하겠는가. 공공병원에서 내쫓긴 저소득층이나 노숙자 환자들은 갈 곳이 없었다. 사망자 가족들은 전염에 대한 불안 때문에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감염의 위험과 생계의 불안이라는 이중의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정부가 메르스 발생 초기부터 상황을 잘 살펴 신속하게 대응했더라면 사태가 이토록 크게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뭄도 다르지 않다. 기상학자들과 언론은 올해 1월부터 극심한 가뭄을 예견한 바 있다. 지난해 강우량이 예년의 절반에도 못 미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가뭄에 대비해 적절한 방책을 마련하지 않고 침묵과 무대책으로 일관했다. 뒤늦게 박대통령이 현장을 찾아가 논에 물을 뿌려댔을 뿐이다. 4대강 사업에 22조원 이상을 투입했는데도 가뭄지역의 용수 공급을 위해서는 별도의 시설이 필요하다니, 웃어넘기기엔 나라꼴이 너무 엉망이다. 국민은 묻고 있다. 대통령은 무엇을 하고 있나? 국민안전처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위급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국가는 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대규모 추경 편성은 그래서 어색하다. 할 일을 제대로 안 해서 피해를 키워놓은 게 정부인데, 그 정부가 나서서 피해가 막심하다고 호들갑을 떨며 추경안을 편성한다. 또 추경 재원의 80%는 국채 9조 6000억원을 새로 발행해 마련하겠다는데, 이것은 결국 국민의 빚이므로 정부가 국민에게 부담을 전가하게 된다.

 

추경 예산안의 내용도 비판대에 올라 있다. 예산안을 보면 메르스 피해업종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들어가긴 하지만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예산은 찾아보기 어렵다. 11조 8000억 규모의 예산 가운데 절반가량은 세수보전을 위한 예산이고, 민생과 거의 무관한 SOC사업이 1조 3000억원이다. 한국의 현실에서 SOC사업 예산은 대부분 건설업체들에게 퍼주는 돈이며 여당 의원들의 지역구 민원 들어주기의 성격을 띤다. 이런 식으로 돈을 풀어서는 국가부채만 늘어날 뿐 민중의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이 못 된다. 

 

세수가 부족해서 추경예산의 절반가량을 세수보전용으로 편성했다는데, 세수가 왜 부족한지도 들여다봐야 한다. 정부는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더한 경상(명목)성장률을 토대로 국세수입을 산정한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성장률을 지나치게 높게 잡기 때문에 막대한 ‘세수 결손’이 발생하는 것이다. 2012년의 경우 정부는 예산을 편성하면서 실질 경제성장률을 4.5%로 잡았지만 실제로는 2% 성장에 그쳤다(세수 결손액은 2조 8000억원). 2013년에는 4%로 예상했지만 실적은 3%(세수 결손액 8조 5000억원), 2014년 3.9%로 예측했지만 실제로는 3.3% 성장에 그쳤다(세수 결손액 10조 9000억원). 이런 식으로 ‘엉터리 경제전망에 의거한 예산 편성-세수 부족-예산 집행에 차질-추경’의 악순환이 몇 년째 되풀이되고 있다. 즉 ‘세수 부족’은 정부가 만들어낸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세수 부족을 핑계로 공약을 이행하지 않거나 사회복지 예산의 축소를 시도한다.

 

법인세수 감소 역시 세수 부족의 원인이다. 정부출연기관인 KDI의 진단에 따르면 한국의 국세수입 증가율은 2000년대 들어 금융위기 이전까지 연평균 8.3% 수준이었지만 2010년 이후에는 연평균 4.6%까지 하락했다. 금융위기 이후에도 소득세와 부가가치세 부담은 지속적으로 늘었지만 법인세 부담은 금융위기 이후 감소했다. 상식적으로 세수를 늘리려면 돈이 있는 곳에서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 한국의 경우 가계에는 돈이 없고 재벌 대기업의 창고에는 돈이 쌓여 있는데, 이명박 정부 때 인하한 법인세율을 원상회복시키는 조치도 취하지 않았으니 세수가 늘어날 리 만무하다.

 

박근혜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정부가 담뱃세를 대폭 인상한 것이 세수를 늘리기 위해서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기재부 발표에 따르면 올 1월부터 5월까지 담배 판매로 거둔 세금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800억원 증가했다. 교통범칙금과 과태료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박근혜 정부 취임 첫 해인 2013년만 해도 교통단속 건수가 100만 건 이상 증가하고 범칙금은 636억원에서 1906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작년의 경우 교통범칙금과 과태료만 7165억원이고 각종 과태료에 과징금, 벌금, 과료까지 합치면 역대 최대 규모인 3조 2000억원을 거둬들였다. 이렇게 털어가면서 돈이 없다고 누리과정 예산은 지방교육청에 떠넘긴다. 사실 돈은 엉뚱한 곳에 줄줄 새고 있다. 드러난 것만 봐도 방산비리로 1조원, 4대강으로 22조원, 자원외교로 최소 50조원이 낭비되었다고 한다. 사실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만 문제라고 하기도 뭣하다. 한국은 늘 그랬다. 그러니 추경으로 돈을 푼다 해도 서민의 주머니에 그 돈이 들어가리라고 아무도 믿지 않는다. 세금을 걷고 지출하는 데서 선택의 기준과 우선순위가 잘못되어 있다면 차라리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는 게 낫다.

 

정부가 내수 진작을 통한 경기 활성화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최저임금을 현실화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래서 올해는 어느 때보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았다. 하지만 정부는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사용자측을 강제하거나 설득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지 않았다. 얼마 전 결정된 2016년 최저임금 6030원은 전년 대비 500원도 오르지 않은 액수로서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계를 담보하기는커녕 분노만 더 돋웠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박근혜식 해법은 재벌총수를 풀어주는 대사면이라고 하니 애초부터 접근법이 달랐던 것이다. 민중과 정권 사이에는 절충이 불가능한 근본적인 시각의 차이가 가로놓여 있다.


조중동은 경기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으라고 주문한다. 새정연은 불필요한 예산을 빼고 가뭄·메르스 추경을 하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민중이 다 같이 잘살기 위한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요구에 주목한다. 노동소득 증대를 통해 경제에 활력 불어넣기. 서민증세가 아닌 부자증세, 법인세 감세 철회, 불로소득 과세를 통해 최소한의 조세형평성 확립하기. 민중의 생명과 안전이 귀하게 지켜지는 나라 만들기. 절박하고 또 절박한 요구들이다.

 

posted by 더불어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