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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모음/더불어삶 시선

생각 19. 인천공항 비정규직은 '제로'가 되었는가?

by 더불어삶 2018. 1. 23.

인천공항 비정규직은 제로가 되었는가

 

지난 26, 인천공항공사 노전문가 협의회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안에 대한 합의안을 발표했다. 소방보안검색보안경비 분야의 비정규직 3천명을 공사가 심사 후 별도 직군으로 직접고용하고, 나머지 비정규직 7천명은 자회사(별도회사)를 신설해 고용한다는 계획이다.

 

한동안 인천공항은 특별한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었다. 지난 5,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첫 외부일정으로 인천공항을 방문해 비정규직 1만 명을 정규직으로 연내 전환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합의안은 처음의 약속과 달라도 너무 다른 결과물이 아닌가 한다. 우선 직접고용 규모가 애초 약속한 1만이 아니라 3천으로 너무 적다. 직접고용과 자회사 고용의 비율이 73도 아닌 37. 이것을 비정규직 제로라 말할 수가 있을까? 물론 여러 가지 사정이야 있었을 것이고, 필요에 따라 단계적 해법을 도입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폐단을 시정하겠다는 정책적 의지가 있었다면, 적어도 인천공항에서만큼은 절반 이상을 직접고용으로 바꾸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7.5.12 문재인 대통령, 인천공항(간접고용 비율 90%, 공공기관 전체 1)공사 방문. "임기 내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밝힘.
5.26 공사-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대표단 면담.
7.10 인천공항지역지부 기자회견. 용역업체 노동자 전원을 정규직 전환 대상으로 하되 고도 전문성이 필요한 일부 직무를 제외하자고 제안.
7.20 정부,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발표. 현장에서 숱한 논란이 벌어짐.
8.31 노측 10, 사측 10, 외부 전문가 등 25명이 참여하는 인천공항 노사전문가협의회 출범.
11.1 인천공항지역지부, 공사와의 대화 중단하고 노사전 협의회 불참 선언. 공사가 다수 비정규직 용역 노동자를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배제했기 때문.
11.10 인천공항지역지부, 전날 정일영 사장 면담 이후 노사전 협의회 다시 참여키로 결정.
11.23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안' 공청회. 인천공항 정규직 노조에서는 "무임승차" 등을 거론하며 반발. 이후 사측은 800여명만 직접고용-경쟁채용 하는 안을 고집함.
12.26 노사전 협의회에서 합의 내용 발표.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 전환의 과정>

 

우선 7천 명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만든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대부분은 용역회사(하청업체) 소속이다. 용역회사는 원청인 인천공항공사로부터 업무를 위탁받아 생기는 수입에 운영을 의존한다. 그러다 보니 불필요한 중간관리 비용이 발생하고 현장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은 열악해진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 소통이 안 되므로 각종 사고도 자주 발생한다. 인천공항 노사의 이번 합의는 몇 가지 단서를 달긴 했지만 현재 외부 용역회사에 소속된 7천 명을 신설 자회사 소속으로 바꾼다는 내용이다. 자회사 자체의 규모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하고 공공기관화를 추진한다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사용자는 인천공항인데 관리는 자회사를 통해 한다는 점에서 사용자 책임을 회피할 우려는 그대로 남는다. 즉 인천공항 비정규직 7천 명의 자회사 정규직화라는 방안은 용역업체에서 자회사로 간판을 바꿔 달면서 일부 폐해를 시정하되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라는 본질은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 대신 공사와 자회사 노사 모두가 참여하는 인천국제공항 노사공동운영협의회를 구성해 근로조건 등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는데, ‘협의회는 강제성이 없으므로 앞으로는 자회사 노동자들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 현실에서 공공부문 자회사 고용 노동자들의 처지가 어떠한지는 철도공사의 자회사인 코레일관광개발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코레일관광개발은 철도공사로부터 받는 위탁사업비에 거의 전적으로 수익을 의존한다. 승무원들에게 임금을 적게 지급할수록 코레일관광개발의 수익은 늘어나는 구조다. 2016년에 노조가 설립되기 전까지 코레일관광개발 신입 승무원의 임금은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했고 임금인상률은 매년 동결이거나 1%대에 머물렀다. ‘무늬만 정규직이라는 비판이 나올 법하다.

 

이번 합의안에서 직접고용 대상에 포함된 3천 명에 대해서도 우려가 없지는 않다. 이들 3천 명을 정규직으로 자동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 직군으로 채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별도 직군으로 채용되는 노동자들은 임금과 승진 등에서 합법적인 차별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공공기관이나 금융권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노동자들은 아무리 오래 일해도 처우가 개선되지 않는다고 호소하고 있다. 고용을 안정시킨다 해도 명백한 차별이 시정되지 않는다면 비정규직 문제의 제대로 된 해법이라고 할 수 없다.

 

인천공항의 정규직 전환이 이처럼 불완전한 결과로 이어질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지난 7월 정부가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서 이미 정부 정책의 윤곽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가이드라인에서 정부는 상시지속 업무에 대해서는 직접고용이 원칙이라고 하면서도 광범위한 예외를 인정해 사실상 정규직화 대상자의 범위를 좁혔다. 특히 자회사에 위탁이나 용역을 주고 있는 경우는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리고 정규직화를 진행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사측이 별도 직군을 신설할 수 있도록 해서 차별의 소지를 만들었다. 게다가 전환의 구체적인 방식은 기관별로 노사 협의,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결정하도록 하면서 그 과정을 정부가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 애초부터 문재인 정부의 속내는 자회사 정규직화였는데 보기 좋은 사진만 찍고 생색부터 낸 것인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자회사 정규직화야 과거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에서도 이뤄졌던 일 아닌가.

 

출발점으로 돌아가서, 공공부문 정규직화는 왜 하는가? 공공부문의 왜곡된 고용구조 탓에 해당 노동자들이 차별과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결국 공공서비스의 질도 하락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는 공공부문의 사용자로서 안정된 고용을 통해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책임을 지닌다. 게다가 참여정부를 포함한 역대 정부는 그동안 공공부문에서 효율이라는 미명 아래 핵심, 비핵심, 단순 업무를 구분하고 각종 비정규직을 양산한 책임을 안고 있다. 따라서 공공부문 정규직화는 왜곡된 것을 바로잡고 당연한 권리를 회복해 나가는 과정으로 접근해야 한다. 예산 부족이라는 핑계를 대고 정규직의 반발을 의식하며 어정쩡하게 추진할 일이 아니다.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과정에서 드러난 포장지와 내용물의 불일치가 문재인 정권의 본모습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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