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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식/더불어삶 성명

한국은행의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기준금리 인하를 규탄한다

by 더불어삶 2020. 3. 21.

<성명>

한국은행의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기준금리 인하를 규탄한다

 

지난 16일, 한국은행이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인하했다. 지난해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해 이미 초저금리를 만들어 놓은 상황에서,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확산되자 또다시 큰 폭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한 것이다. 시민사회의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이번 임시 금통위는 사전에 일정을 공개하지도 않고 기습적으로 개최됐다.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했으니 한국도 인하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금융부문에서 시작된 위기가 아닌 실물경제의 위기 국면이다. 금리를 내리고 돈을 푼다고 소비와 투자가 회복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3월 3일 기준금리를 0.5%p 인하한 데 이어 3월 15일에 1%p 인하해서 모두 1.5%p를 내렸는데 바로 다음날인 16일 다우지수가 12.9% 하락했다. 한국 역시 3월 16일에 기준금리를 0.5%p 인하했지만 주가 폭락세를 막지 못했다. 금리를 내려도 긍정적인 파급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이 더 빠르게 이탈하는 양상이다.

 

한국은행의 이주열 총재와 금통위원들이 무지하고 무능해서 이러한 이치를 몰랐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한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하가 소비와 투자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현실이었다. 통화가 얼마나 잘 유통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인 통화승수(돈의 총량을 의미하는 M2를 중앙은행이 공급하는 본원통화로 나눈 수치)만 봐도 현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월 기준 통화승수는 15.27로 1996년 3월(14.47)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쉽게 말해 시중에 돈은 넘쳐나지만 돈이 잘 돌지 않고 있다. 반면 저금리 정책의 부작용은 명백하게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부작용은 시중의 과잉 유동성이 부동산시장으로만 흘러들어가 주택가격을 지속적으로 상승시킨 것이다.

 

임시 금통위를 개최하기 불과 며칠 전인 3월 12일에 발표된 한은의 <통화신용정책보고서>도 같은 지적을 하고 있었다. 이 보고서는 지난 2018년부터 유동성을 확장한 것이 부동산에 몰려 실물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약해졌다고 진단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계와 기업의 신용 증가가 소비나 투자로 이어지는 파급효과가 축소”됐으며, “가계신용과 주택가격간 상호 인과관계는 뚜렷하지만 주택가격 상승에 따른 부의 효과는 통계적 유의성이 낮”았다. “기업신용 측면에서도 생산유발 효과가 낮은 부동산 부문을 중심으로 신용 공급이 증가”했다. 시중 자금은 과잉인데 생산성이 높지 않은 부문으로 돈이 몰렸다는 뜻이다. 한국은행의 자체 보고서도 기준금리 인하의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효과가 크다고 인정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주열 총재와 금통위원들은 대체 어떤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면서 기준금리를 대폭 내렸을까? 아니면 그저 정부의 압력에 굴복하고 언론의 금리 인하 요구에 휩쓸렸다고 봐야 할까?

 

정부, 경제학자, 언론이 틈만 나면 이야기하는 ‘금리 인하=경기 부양’이라는 공식은 입증된 적이 없다. 이론상으로는 금리를 낮추면 유동성이 확대되고 기업들의 이자 부담이 낮아져 투자가 활성화된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특히 지난 10년간 한국에서는 그 반대 결과가 나타났을 가능성이 높다. 금리 인하로 더 풀린 돈은 부동산 시장 등 비생산적인 부문으로만 몰려간다. 주택가격이 상승을 거듭하면 가계의 주거비용이 상승하기 때문에 소비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 큰 액수의 대출을 받아 집을 구입한 사람들도 대출 상환 부담 때문에 소비를 줄이게 된다. 가계의 소비가 감소하면 기업의 매출도 늘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악순환을 거듭하는 것이 한국 경제의 실상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매출이 급감한 기업들과 중소 자영업자들의 입장에서도 금리 인하는 큰 도움이 못 된다. 지금 문제는 물건이 팔리지 않고 영업점에 손님이 오지 않는 것이다. 문 닫을 위기에 처한 자영업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금의 공급이지 금리 인하가 아니다. 금리를 인하해도 신용도가 낮은 자영업자들은 은행 대출을 받지 못한다. 자영업자들에게 정책자금을 지원함과 동시에 신용보증을 제공해 필요한 자금을 신속하게 지원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물건이 팔리지 않아 현금이 고갈된 영세 중소기업들도 금리 인하의 효과를 누리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자영업자들과 같은 방식으로 신용 보증을 통해 은행 대출의 길을 열어줘야 한다. 일용직, 실직자, 비정규직, 특수고용, 자영업자 등 당장 생계의 문제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즉각적이고 실효성 있는 지원을 해야 한다. IMF조차도 가계, 기업에 현금을 직접 지원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금리 인하의 효과는 물음표인 반면 부작용의 가능성은 명백하다. 이주열 총재는 이번에 기준금리를 0.5%p 인하하면서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일관성 있게 추진되고, 단기적으로는 부동산가격 상승세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금리를 내리면서도 집값 상승에 대한 책임은 모면하고 싶은 모양이다. 물론 위기 국면에서의 기준금리 인하가 부동산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두고 이런저런 견해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한은의 초저금리 기조가 집값 폭등의 원인으로 작용해 수많은 서민에게 고통을 안겼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주열 총재가 언급한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줄곧 집값 하락이 아닌 상승을 부추기는 정책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19차례에 걸쳐 부동산대책을 내놓았지만 집값을 잡는 시늉만 했지 실제로 다주택자의 매물이 나올 만큼 강력한 정책을 시행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번의 기준금리 대폭 인하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하려면 최소한 집값 폭등의 대표적인 요인인 주택임대사업자 세금 특혜를 폐지하는 조치를 병행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 정도의 의지를 가진 인물이 정부와 청와대에는 보이지 않는다. 인천 등 수도권 비규제지역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투기적인 주택 매집행위는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금 특혜가 없다면 일어나지 않을 현상이다.

 

그러므로 주가가 폭락하고 경제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드는데도 집값만 비정상적으로 상승하는 것은 전적으로 문재인 정부, 청와대와 한국은행의 책임이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말 16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가 국가경제에 위기를 불러올 위험성 역시 청와대와 한국은행이 책임져야 한다. 이번의 기습적 금리인하로 경제 운용과 통화정책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졌다. 우리는 정부와 한국은행의 책임을 끝까지 따져 물을 것이다.

 

2020년 3월 23일
더불어삶, 송기균경제연구소, 송현경제연구소

 

 

지난 2월 19일, 한국은행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모여 금리인하 반대 선전을 하는 모습. 지나가는 시민들이 관심을 많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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