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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모음/더불어삶 시선

생각 25. 투기 주도 성장, 이제 그만할 때가 됐다

by 더불어삶 2021. 5. 13.

투기 주도 성장, 이제 그만할 때가 됐다
GDP의 100%를 넘어선 가계부채...통화정책 방향 전환해야

 

29일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발표했다. 기존에 금융기관별로 적용되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차주별 시행으로 바꿨지만, 차주별 전면 시행을 하는 시점은 2년 넘게 지난 2023년 7월부터라고 한다. 또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실수요자에 대해서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우대를 확대하고 청년에게는 미래소득 반영으로 대출한도를 늘려줄 예정이라고 한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도 신혼부부, 청년 등 실수요자에게 LTV를 완화하고 대출 기간도 늘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규제는 너무 늦고, 구멍이 많고, 정책 당국자들의 의지는 별로 강한 것 같지 않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어느 지표로 보나 위험한 폭탄과도 같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가계신용은 지난해 말 기준 1726조 원이고 증가율은 7.9%였다. 1년 동안의 가계신용 증가액은 126조 원으로, 증가액 기준으로는 박근혜 정부 시절 “빚내서 집 사라”고 했던 2016년(139조원)과 큰 차이가 없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신용 비율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101.1%로 사상 최초로 100%를 넘었다. 지난해 말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통계 작성 이후 사상 최고치인 171.3%로 높아졌다. 가계부채 총량 관리와 DSR 규제 도입을 통해 가계부채를 잡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과 반대되는 결과다.

 

시중 통화량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지난 2월 광의통화량(M2)은 1월보다 42조 늘어난 3274조원에 달했다. 2월 M2증가 폭도 2001년 12월 통계 편제 이후 역대 최대라고 한다. M2 증가율은 지난해 12월부터 계속 확대되고 있다. 시중에 엄청난 자금이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이주열 연임과 문재인표 금융완화

 

유동성의 급증은 박근혜 정부 시기에 시작된 저금리 정책이 철회되지 않고 문재인 정부에서도 경기 부양을 위한 추가 금리 인하를 계속한 결과였다.

 

2014년 4월에 한국은행 총재로 취임한 이주열은 취임 직후까지도 금리 인상론을 이야기하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해 7월 최경환 부총리와 조찬 회동을 하고 나서 이주열 총재의 입장은 ‘경기 부양’으로 급격히 선회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 임기 동안에만 6차례나 기준금리를 인하했고, 그러는 동안 가계부채는 1000조원 대에서 1200조원 이상으로 급증했다.

 

이처럼 박근혜 정부 후반에 가계부채 급증에 대한 우려가 커졌기 때문에 2017년 대선에서는 모든 후보가 가계부채 축소 공약을 내걸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2017년 대선 공약집에도 ‘부채 주도에서 소득 주도의 성장’으로 정책을 전환하겠다는 약속이 담겼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후 예상을 깨고 이주열 한은 총재를 연임시켰다. 이주열 총재의 연임은 시장에 ‘새 정부도 부채 주도 경기부양을 계속한다’는 신호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주열 총재는 박근혜 정부 때 최경환 부총리의 요구에 충실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김동연 부총리, 홍남기 부총리와 호흡을 같이했다. 정부가 원하는 경제 성적표상의 수치를 맞추기 위해 금융완화 일변도 정책을 펼쳤다는 뜻이다. 2017년 이후에는 금리를 인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한은은 저금리 정책을 고집했다. 금리 인하는 신속했던 반면 금리 인상의 계기가 있을 때는 느리고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결국 정권 초반부터 유동성이 급증하고 아파트값 폭등세가 나타났다.

 

코로나 사태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자 한은은 지난해 3월 1.25%에서 0.75%로 기준금리를 내렸고, 5월 다시 0.5%까지 내렸다. 그리고 올해 4월까지 7회 연속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했다. 기준금리 결정에는 다양한 요인이 반영되므로 한은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코로나 이후의 기준금리 인하는 불가피했다는 변명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코로나 이전에도 한은은 이미 기준금리를 최저선(실효하한)까지 내려서 운용하고 있었다.

 

투기 주도 성장의 부작용

 

저금리 일변도 정책의 결과는 투기 주도 성장과 K-양극화였다. 시중에 풀린 돈은 실물 경기를 살리지 못하고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으로 유입되어 투기 광풍을 일으켰다. 코로나로 폐업과 해고가 늘어나고 노동소득은 제자리걸음인데 자산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은 자산을 더 불렸다.

 

투기로 돈을 벌었다는 사람이 늘어나자 자산시장 쏠림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영끌’과 ‘빚투’라는 부작용이 속출하고, 코인 투기 열풍도 한국에서 유독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나라 전체가 거대한 도박판을 방불케 한다. 박근혜 정부가 ‘부채 주도 성장’을 했다면 문재인 정부는 ‘투기 주도 성장’을 하고 있다.

 

불평등의 심화는 말할 것도 없다. 실물 경제의 성장 없는 자산 가치의 폭등은 불로소득에 인센티브를 준 것과 같다. 밤낮으로 열심히 일한 사람들은 그만큼 노동의 가치를 수탈당한 것과 같다. 무주택 세입자와 청년 세대는 부동산값 폭등으로 직접적 타격을 입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빼앗겼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와 한국은행은 4년 동안 자산 불평등을 남의 일처럼 지켜보며 문제를 악화시켰다. 최근에는 정부와 한은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모습마저 보인다.

 

정부와 한은은 앞으로도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싶겠지만 그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시장 금리는 이미 상승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상승하고 다시 국내외 시장 금리가 조금씩 올라가는 양상이다. 시간이 갈수록 한은 기준금리도 상향 압력을 받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막대한 유동성이 자산가격에 이어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 3월 소비자물가는 국제 유가 상승 등의 영향으로 1.5%나 상승했고, 생산자물가도 5개월 연속 상승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 한국의 식품 물가 상승률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8.2%로 OECD 최상위 수준이다. 집값과 집세 폭등에 더해 밥상물가까지 올라가니 자산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날마다 생존의 위협을 느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의 대처는 느슨하기만 하다. 심지어 민심을 따르겠다며 대출 규제 완화를 외친다.

 

무책임한 한은 금통위

 

저금리 기조의 장기화와 부채 급증에 대한 경고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했다. 올해 1월 국회 예산정책처는 “금리 인하로 풍부해진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면서 금융 시장 안정을 저해할 수 있다”면서 “새 통화정책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2월에는 국토연구원에서 <이슈리포트>를 통해 저금리와 유동성 증가가 주택가격 상승의 주 원인임을 밝히고 “단계적 금리 인상 등으로 주택 시장 변동성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해 11월에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연구 보고서를 통해 시중 통화량과 주택가격 상승의 관계를 지적한 바 있다. 연구기관별로 결론은 조금씩 달랐지만, 공통적인 지적은 급증한 유동성이 제조업 생산 등 생산 부문보다는 자산시장으로 유입된다는 것이었다.

 

2월 25일 한은 금통위 내용 요약

2021년도 제4차 금통위(2월 25일) 의사록 내용 요약

– 금통위원들은 만장일치로 한국은행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위원 1 - 기준금리 동결하고 대내외 여건 변화를 지켜보자
위원 2 - 현재의 기준금리를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 통화정책 정상화를 언급하는 것은 시기상조
위원 3 - 기준금리를 현재 수준인 0.50%에서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 국내 경제는 완만한 회복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대 초중반 수준.
위원 4 - 기준금리를 0.50%로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 근원물가 전망치가 1%밖에 안 된다. 현재의 완화적 기조를 당분간 유지하자
위원 5 - 경제 회복세가 뚜렷해질 때까지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지속하자
위원 6 – GDP갭 해소에 상당 시간이 소요될 것이므로 기준금리 동결하고 앞으로도 완화적 기조 유지 필요

 

 

4월 15일 한은 금통위 내용 요약.

2021년도 제7차 금통위(4월 15일) 의사록 내용 요약

– 금통위원들은 만장일치로 한국은행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위원 1 -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0.50%에서 유지. 국내 경제활동 정상화 시기를 예단하기 어려움.
위원 2 - 기준금리를 현 0.50% 수준에서 동결. 물가 상승률이 2% 목표치에 미치지 못한다.
위원 3 - 기준금리를 현 0.50% 수준으로 유지. 통화정책의 정상화를 논의하기는 아직 이르다.
위원 4 -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 향후 경제 회복시 금융안정에 무게를 둔 통화정책 고려.
위원 5 -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0.50%에서 유지. 통화정책 정상화 논의는 시기상조.
위원 6 - 기준금리를 현 0.50% 수준에서 동결. 가계대출 증가 등 금융불균형 위험에 주의.
위원들은 만장일치로 한국은행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하기로 결정

 

 

그러나 이주열 한은 총재는 여러 기관과 전문가들의 지적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2021년 들어서도 통화정책 방향에 대한 진지한 검토는 없었다. 2021년도 제4차 한은 금통위(2월 25일자) 의사록을 보면 금통위원들은 “물가상승률이 아직 목표치 2%에 도달하지 않았으므로 기준금리를 동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논리로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했다. 가장 최근에 공개된 2021년도 제7차 한은 금통위(4월 15일) 의사록에서도 금통위원들은 국내 경제의 회복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했다. 두 번 다 치열한 토론은 없었고 결정은 만장일치로 이뤄졌다.

 

물가상승률이 몇 퍼센트건 간에 부동산값 폭등과 양극화로 인한 국민의 고통은 숫자로 표현되는 것보다 훨씬 크고 심각하다. 금통위원들은 이런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있다. 거시경제지표 몇 가지만 보고 안일한 결정을 반복한다. 한국 경제의 구조에 대한 장기적인 고민도 없어 보인다. 돈을 풀었으면 그 돈이 어디로 갔는지도 신경을 써야 하는 것 아닐까?

 

국회 예산정책처의 지적대로 이제는 새로운 통화정책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저금리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을 인정하고, 필요한 곳에 금융 규제도 강하게 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무분별한 금융완화 정책에 책임이 있는 당국자들은 당연히 교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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