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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모음/외부자료

한국 자본주의의 맨 얼굴 - <노동자, 쓰러지다>(희정, 오월의봄)

by 더불어삶 2015. 2. 20.

한국 자본주의의 맨 얼굴 - 쓰러져 죽어가는 노동자들의 이야기
<노동자, 쓰러지다>(희정 지음, 오월의봄 펴냄, 356쪽)

 

 

 

 

   자본의 목적은 자기 몸집을 더 불리는 데 있습니다.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무한한 자유가 주어진다면 자본은 더 많은 이윤을 위해서 무슨 짓이든 다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도 그렇게 해왔죠. 자본의 입장에서 제일 손쉽고 효율적으로 큰 이윤을 얻는 길은 힘없는 노동자들을 쥐어짜서 폭리를 취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함부로 하지 못할 끔찍한 짓들(예: 아동노동)도 더 큰 이윤 앞에서는 쉽사리 정당화됩니다. <노동자, 쓰러지다>는 이윤을 구실로 인간을 억압하는 자본과, 그 밑에 깔려서 쓰러져 죽어가는 노동자가 처한 무시무시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리고 그 현장이 결코 우리와 멀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켜줍니다.

 

노동자들은 왜?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해서 충실하게 대답해줍니다.

 

왜 한국에서 노동자들은 일하다가 죽을까? 왜 전과 같은 시간동안 전과 똑같은 일을 하면서 임금은 전보다 반도 못 받을까? 어째서 두 사람이 해야할 일을 한 사람만 하고 있을까? 그러다 벌어진 사고의 책임은 어떻게 해서 노동자 본인에게만 모조리 전가될까? 무슨 이유로 오토바이를 탄 청소년들은 폭주해야만 할까? 왜 한국 노동자들은 오래 일해야만 할까? 사람에게 유해한 화학물질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노동자를 죽이고 지역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게 되나? 어떻게 손님은 왕이 되었나?…

 

   책을 읽고 나면 이 모든 질문들과 관련된 몇 가지 패턴을 알 수 있습니다. 자본이 비인간적으로 이윤을 추구하고, 그에 대해서 정부는 아예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이죠. 정부는 자본의 폭주에 대해서 눈감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그 폭주에 가담하기까지 합니다. 책에는 노동자의 현실과 상황, 그 원인과 결과가 6가지의 주제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코레일이 착실하게 민영화과정을 밟아나가는 과정과, 우편집배원들이 과거에 자전거로 배달할 때보다도 더 무거운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 이유가 잘 소개되어 있습니다.

 

한국 자본주의의 맨 얼굴: 책임지지 않기

 

  권리에 따른 의무, 권능에 따른 책임을 중요시하는 것을 '근대'에 들어 나타난 변화라 본다면, 뭔가가 의무와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은 전근대적, 혹은 봉건적인 상황을 의미합니다. 책을 읽어보면 우리 주변의 수많은 사용주들이 도무지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들이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더 약하고 만만한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지요.

  소위 '안전불감증'이라는 단어는 이런 상황을 정확하게 반영합니다. 안전불감증이라는 단어는 개개의 노동자 또는 불특정 다수의 대중이 안전의식이 없어서 각종 재해가 발생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지요. 그러나 한국에는 산업재해와 그로 인한 사망‧사고가 지나치게 많습니다. 본질적으로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환경적 요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째서 노동현장의 환경이 안전하지 못한 것일까요? 그렇게 해서 이윤을 늘리기 때문이라고 책은 설명합니다. 자본에게 있어서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보다 이윤이 우선인 것이죠.

   거기에 더해서 자본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노동자들이 산업재해 신청을 하는 것도 제재를 가합니다. 산업재해율이 낮은 기업은 어마어마한 액수의 보험금을 감면받기 때문이죠. 노동자들은 배를 만들다가 떨어져서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도 함부로 구급차를 부를 수 없습니다. 산재신청이 되기 때문이죠. 심각하게 부상당한 노동자는 트럭에 실려서 기업과 관계있는 먼 병원으로 후송됩니다. 그러다 제때 처치를 못 해서 죽기도 하죠. 노동자들의 안전과 목숨을 대가로 "삼성물산은... 5년간 보험료 622억... 삼성전자는 597억, 현대중공업은 852억, 현대자동차는 540억, 롯데건설은 410억"의 보험료 감면혜택을 받았다고 책에는 서술되어 있습니다.

   앞서 서술했듯이 국가는 이를 방조합니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줘야 할 국가가, 국민이 죽고 다치는 상황에서도 기업에 제재를 가하지 않고 오히려 혜택을 주는 격입니다.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과 기업들이 책임을 지지 않으니, 죽고 다치는 것은 힘없는 노동자들뿐입니다. 

 

간접고용: 죽음도 하청?

 

   만약 사람에게 똑같은 일을 똑같은 시간 동안 시키면서 임금은 절반도 안 줘도 된다면? 게다가 그 사람의 안전과 생계를 비롯한 총체적인 보호 및 책임은 일체 지지 않아도 된다면? 자본에게 있어서 이런 상황은 더할 나위 없는 꿈의 고용조건일 것입니다. 그게 바로 간접고용이죠. 간접고용이란 노동자의 노동력을 이용하지만 노동자 본인과 근로계약을 직접 체결하지 않고 타인에게 고용된 노동자를 이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고용행태를 뒷받침하는 것은 "글로벌 시대에 들어서 세계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고용유연성이 절실하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대표적인 간접고용 업체들인 우체국과 통신사가 해외와 경쟁할 일이 있는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간접고용을 통해서 고용된 노동자들은 약자 중의 약자들입니다. 이들은 함부로 해고당해도, 일하다 다치거나 죽어도 항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일하다 다치고 사망하는 노동자의 비율도 간접고용된 노동자들이 제일입니다. 작가는 이를 “죽음도 하청을 준다”고 표현했습니다.

 

한국 노동자가 오래 일하는 이유

 

   멕시코에 이어서 OECD 국가 중 2위.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입니다. 왜 한국인들은 오래 일할까요? 거기에는 각 회사의 문화, 회장님의 '근면성실' 정신, 상사의 눈치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겠습니다. 하지만 다수 노동자들의 경우 장시간 노동의 가장 큰 원인은 저임금입니다. 현재 한국의 최저임금은 전년도보다 370원 오른 5,580원입니다. 하루에 8시간씩, 주 5일 근무해서 한 달에 20일간 일한다고 가정할 때 버는 임금은 892,800원입니다. 2006년(!) 한국노총이 발표한 1인 가구 표준 생계비는 1,504,168원(참고로 4인 가구는 4,221,933원). 하루 8시간만 일해서는 결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책에는 “대기업 자동차 생산직 연봉이 높다 해도 5~10년차 기본급 200만원 남짓”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이 시급제이면서 시급도 적은 노동현실 때문에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오래 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에게 하루에 초과수당이 붙은 몇 만원의 돈은 큰 의미를 지닙니다. 바로 ‘생존이냐, 죽음이냐’죠.

   오랜 시간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건강이 악화되고, 여가생활과 가족과의 시간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책에서도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주간 2교대 근무를 투쟁으로 얻어낸 이유가 그저 좀 더 건강해서 오래 일하고자 했다는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도, 여가도, 가족과의 시간도, 우선 살아남아야 누릴 것이 아닙니까. 저임금은 노동자들의 인간답게 살 권리뿐 아니라 생계까지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타계할 최고의 방법이 바로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조적인 원인에 대하여

 

   사람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자본의 폭주를 누가 막을 수 있을까요? 앞서 서술했듯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져야 할 국가의 역할이 필수적입니다. 또한 당사자인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합니다. 그러나 국가는 책임을 방기하고 있고, 개개의 노동자는 약하죠. 약하기 때문에 뭉쳐서 대항해야 하지만, 한국 사회는 구조적으로 노동자들이 힘을 합쳐서 대항하기가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노동과 조합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정적이고 자본의 조직적인 탄압이 계속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사회 구성원의 극소수가 상상을 초월하는 부를 누리고 있는 동안에, 대다수의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조건에서 생계를 위해 날마다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노동자, 쓰러지다>는 이 아비규환을 꼼꼼하게 드러내줍니다. 책에 소개된 고통받는 사람들은 사실 우리의 아버지‧어머니이며, 형제‧자매이고, 친구이자, ‘우리’입니다. 우리가 처해 있는 생지옥 같은 상황을 개선하려면, 우선 이런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하고 이것이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 내 가족의 일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노동자, 쓰러지다>는 우리의 이성을 흔들고, 가슴을 일깨워서 그 시작점이 될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 서평에는 더불어삶 회원 개개인의 입장이 강하게 반영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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