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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모음/더불어삶 시선

생각 17. 노조 파괴가 사람 죽였다

by 더불어삶 2016. 7. 23.

노동조합 파괴가 사람 죽였다
- 한광호 열사의 죽음을 불러온 현대차와 유성기업

 

  유성기업은 현대차에 피스톤링을 생산하여 납품하는 하청기업입니다. 현대차에 피스톤링을 납품하는 업체로 유성기업과 대한이연이 있는데, 한때는 납품 비율이 8:2 내지 7:3에 이를 정도로 유성기업은 잘나갔습니다. 유성기업은 또한 노사관계가 조화롭고 노동조합 활동이 잘 이뤄지고 있는 회사로 정평이 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성기업은 2011년을 전후로 노동조합을 혹독하게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2016년 3월 17일, 유성기업의 노동조합 대의원을 지냈던 한광호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태로 이어졌습니다. 지금부터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겪은 일들을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원했던 것은 단 하나, 인간적인 노동조건이었습니다.

 

  2007년 11월 24일 유성기업에서 3주 연속으로 장시간의 야간 노동을 하던 이 모씨가 29살의 나이로 과로사합니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는 이러한 사태가 재발하는 것을 막고자 2009년부터 사측과의 교섭에서 주간 2교대 근무를 안건으로 올렸습니다. 그러나 회사와의 교섭은 뜻대로 잘 이뤄지지 않으면서 2011년까지 이어졌고, 2011년부터 노동조합 파괴로 악명이 높은 창조컨설팅이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노동조합에 대한 조직적이고 악랄한 파괴행위가 시작되었습니다.

 

(2011년 유성기업 농성 진압. 출처: 노컷뉴스)

 

  우선 2011년 5월, 유성기업은 주간 2교대 근무에 대한 논의를 일방적으로 백지화합니다. 이에 반발하여 사측에 약속 이행을 요구하며 합법적인 파업을 실시한 유성기업지회를 상대로 사측은 직장 폐쇄로 대응합니다. 이어서 창조컨설팅의 사주를 받은 용역 경비업체(CJ시큐리티) 직원이 대포차를 끌고 난입하여 5월 19일 새벽에 공장에서 농성하던 노동조합원 13인을 뺑소니로 치고 도망가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노조원들은 인도 위에 있었고, 차량이 한 번에 13명을 들이받은 것이 아니라 두 차례에 걸쳐서 차로 들이받은 사실을 볼 때, 결코 일반인의 소행이라고 판단할 수 없는 잔인한 의도성이 있습니다). 후에 이 용역업체 직원은 자수했지만, 다분히 의도적으로 사람을 해칠 목적으로 범행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살인미수가 아닌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고소되었을 뿐입니다.

 

  또한 6월 22일에는 동업체가 22명의 조합원에게 중경상을 입히는 잔인한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훗날 발견된 CJ시큐리티 간부 수첩에는 노동부 근로감독관, 경찰 정보관의 생일 파악 후 떡케익을 맞춘다는 메모와 고객사 선물배송(양주) 현황에 지노위, 노동부, 강남경찰서 관계자 실명이 적시되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늑장 수사 및 봐주기식 수사를 위한 로비가 있었을 것입니다. 

 

(출처: 유성범대위)

 

  이후 유성기업은 금속노동조합원 27명을 해고하고, 재해고 11명, 출근정지 47명, 정직 71명 등의 중징계를 노동조합에 선고합니다. 이후 징계에 대한 부당해고 판결이 나왔지만, 2012년까지 2명이 추가해고를 당하고 85명이 징계를 추가적으로 당하는 등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은 계속 되었습니다.

 

  복수노조를 악용한 노동탄압도 행해졌습니다. 유성기업은 창조컨설팅의 조언을 받아 어용노조를 설립하여 기존 노동조합원들을 회유함과 동시에(기존 조합원들을 회유하고자 주점 등에서 향응을 제공하기도 하였으며, 현대차가 유성기업에 구체적인 목표치까지 제시했음), 기존 노동조합원들을 카메라 등으로 지속적으로 감시하여 자리에서 잠시 벗어나거나, 휴대전화를 잠시 확인하는 사소한 행위들을 가지고 감봉 등의 징계를 하는 등 정신적, 육체적으로 끊임없이 괴롭혔습니다. 

 

이 노조파괴 시나리오에 현대차가 구체적인 지시를 함으로써 깊숙히 개입했다는 사실은 이미 드러나 있습니다.

 

(현대차가 회사어용노조 목표 숫자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유성기업을 닥달하는 이메일 내용. 출처: 경향신문)

 

 

 (출처: 유성범대위)

 

  게다가 유성기업은 조합원들을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서 총 1080여 회의 고소 및 고발을 하여 심적으로 더욱 크게 압박감을 주었습니다. 사측에 고소 및 고발을 7회 당한 사람은 4명이고, 8번은 2명, 11번은 2명. 심지어 한 명은 91번의 고소 및 고발을 당한 사례도 있으며, 고 한광호 열사의 경우는 총 11회의 고소 및 고발을 당한 상태였습니다. 2015년 현재 유성기업이 노조측에 재기한 손배소는 총 10억원 규모입니다. 후에 발견된 문건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습니다.

 

“징계책임을 묻는 징계절차의 진행과 동시에 수천만원의 손해배상소송이 진행되면 소송의 당사자뿐만이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일반 조합원들의 압박감이 더욱 커질 것으로 판단됨.”

-2011.10.8.자 <유성노조 가입 확대 전략> 중-

 

노조 탄압의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조합원의 43%에 달하는 사람들이 우울증 고위험군 판정을 받았습니다. 고 한광호 열사의 죽음에 대해서 동료 직원 한 사람은 ‘올 것이 왔다’는 표현을 했다고 합니다. 유성기업 노동조합원들은 언제 사람이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의 극심한 탄압과 고통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4월 16일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에서 규탄대회를 진행중인 노동조합. 출처: 미디어스 )

 

  2016년 3월 23일, 유성기업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는 서울 시청 앞에 고 한광호 열사 추모분향소를 설치했습니다. 조합원들의 배나 많은 경찰 공권력이 투입되어 조합원들을 둘러싸고, 불법 미신고 집회라는 명목으로 천막과 담요등의 물품들을 압수해 갔습니다. 이러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여러 도움의 손길을 통해서 결국 천막이 세워졌습니다. 현재 조합원들은 현대차 사옥 앞에서 농성하며 진실을 알리고자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도 사측의 사주로 만들어져 독립성이 결여되었다는 판결을 받은 불법 어용노조는 뻔뻔스럽게도 간부 몇 명만 바꾼 제3의 노조를 등록하려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을 목격하고도 유성기업은 그저 노동조합 탄압에만 집중하고 있으며, 이를 바로잡아야 할 공권력과 법은 무책임하게 방조하고 있습니다. 그 어디에도 정의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 노동자 한광호씨의 죽음에 관심을 기울이고 주변에 알려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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