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약속하고 박수갈채를 받았다. 2년 5개월이 지난 지금, 그 약속은 얼마나 지켜졌을까? 지난 9월 28일 토요일, 시민단체 더불어삶에서는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의 한재영 조직국장과 오순옥 수석부지부장을 모시고 인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 현황에 대해 들어봤다. 이어서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응원 메시지가 담긴 그림카드를 만들어보고, 농성 중인 인천공항 노동자들와 톨게이트 노동자들에게 전달했다. 이하는 인천공항지역지부와 더불어삶 회원들이 행사 당일 주고받은 대화 내용을 재정리한 것임을 밝힌다. |
세계공항서비스 평가 1위 인천공항의 민낯 - 관리직 빼고 다 비정규직
2017년 5월 12일, 인천공항은 IMF이후 '노동유연성 확보'와 전문성이라는 명분으로 관리직(공사 소속 정규직)을 제외한 모든 인력을 아웃소싱했습니다. 인천공항이 흑자 전환에 성공한 후로도 비정규직 비율은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놀랍게도 우리가 영종대교를 건넌 뒤 보게 되는 노동자들의 대다수가 비정규직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고용불안입니다. 인천공항 하청업체의 계약기간은 3년에 불과하고, 계약을 연장한다 해도 최대 5년까지만 계약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업체가 바뀔 때마다 새로 계약서를 써야 합니다. 단체행동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보안 경비 근무자들의 경우 3년에 한 번씩 하청업체와 재계약하는 등 불안정한 업무 환경에 상시 노출되어 있지요. 고용구조의 문제는 당연히 사건사고 발생시 대처가 늦어지는 등 공항 운영상의 문제로도 이어집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비정규직들이 모여 어렵게 노조를 만들었을 때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노동자들이 속해있는 하청업체를 두 개, 세 개로 쪼개서 입찰 계약을 새로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노동자들의 결속은 약해지고 고용불안은 계속될 수밖에 없지요.
3분의 1만 직접고용, 제2터미널은 경쟁채용?
2017년 5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국제공항에 방문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로하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포했던 일은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그 무렵 인천국제공항공사는 공공기관 중에서 비정규직 노조 가입률이 가장 높은 곳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노동자가 애초부터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입니다. 정규직화에 대한 요구는 계속 제기되고 있었던 것이지만, 촛불 이후 새로 들어선 정부에서 대통령이 직접 방문해 연내 정규직화를 약속했다는 소식에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대감도 무척 컸다고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방문 이후 인천공항공사와 노조 사이에는 정규직 전환과 관련하여 두 번의 중요한 합의가 있었습니다. 1차 합의는 인천국제공항공사와 민주노총 사이의 합의였고, 2차 합의는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노총 사이의 합의였습니다. 주체가 다른 만큼 합의 내용도 달랐습니다.
공항공사와 민주노총은 2017년 12월 26일에 1차 합의를 발표합니다. 합의 내용은 채용 대상과 채용 방식에 관한 것이었어요. 인천공항 비정규직 약 1만 명 중 1/3은 공사가 직접고용하고, 나머지는 자회사 두 곳을 설립해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전환 방식은 사실상 100% 전환 채용에 양측이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1년 후인 2018년 12월 26일, 사측은 1차 합의를 뒤집고 경쟁채용 도입을 표명했습니다. 2017년 5월 12일 이후 인천공항 제2 여객터미널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인원 3천여 명은 경쟁 방식으로 채용한다는 것이죠.
최저임금 받는 곳에 채용 비리는 무슨...
경쟁채용이란 기존에 근무하고 있던 비정규직들에게도 공개채용에 지원하게 해서 경쟁을 거치도록 하는 방식입니다(기존 근무자에게 가산점을 부여). 애초에 대통령이 약속한 '정규직 전환'이 왜 '경쟁채용'으로 변질된 것일깡요? 표면적 이유는 정부가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선언한 이후에 입사한 사람들은 채용비리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업무 환경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예컨대 부정한 청탁을 통해 인천공항 청소 용역업체에 입사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인천공항지역지부 오순옥 수석부지부장의 증언에 따르면, 2017년 5월 이후 입사자가 늘긴 했지만 많은 이들이 1년 뒤 퇴직금을 받고 나가버리는 실정입니다. 일이 너무 힘들다는 것이죠. 오순옥 수석부지부장은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문재인 대통령 방문 1호 사업장이 되면서 인천공항이 전국에서 주목을 받는 사업장이 되고, 당연히 직접 고용이 될 것이란 희망이 생겼어요. 고용불안도 없어지고 처우가 좋아질 거라는 기대감 말이죠. 2017년 5월 이후 입사자들은 인천공항에서 정규직이 될 거란 기대를 안고 입사한 사람들인데, 사실 일이 너무 힘들고 현재 임금도 최저임금이라 1년 일하고 나가기도 해요. 제2터미널을 만들면서 제1터미널에 있는 직원 수를 줄였기 때문에 일은 더 힘들어졌죠. 지금도 구인이 어려워서 허덕이고 있는데, 채용비리라니 말도 안 되죠”
경쟁채용으로 업무 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환경미화직군에 속하는 노동자들의 업무 성격상 필기 시험으로 유/무능을 평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죠.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이 무임승차?
현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아야 합니다.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환경미화 노동자의 경우 주 6일(하루 7.5시간)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공항공사 산하 노동자들 중 유일한 사례라고 합니다. 하청업체에서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고 하고 원청에서는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인천공항 보안경비 분야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평균 시급이 7,100원대로 최저임금 8,350원에도 못 미칩니다. 시간 외 수당을 빼면 월 이백만 원이 안 되는 임금을 받습니다. 심지어 그 금액에는 인천공항까지 오가는 교통비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년 인천공항 공사 정규직들의 평균 임금은 8,100만원입니다.) 그럼에도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는 정규직만큼의 월급을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청업체가 중간에서 가져가는 관리비 등의 비용을 실제 노동자들에게 임금으로 지급하라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약속, 왜 지켜지지 않는가
3차 합의를 위한 노사정 실무협의는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그리고 인천공항지역지부 노동자들은 지난해 12월 27일부터 인천공항 제1터미널 3층에서 300일 넘게 천막농성 중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을 때 그 선언의 취지는 무엇이었을까요? 공공부문에서 그동안 비정규직 문제가 많았던 만큼 이제부터는 직접고용과 처우 개선을 통해 좋은 일자리를 만들겠다, 그리고 그 모델을 민간으로 확산시키겠다는 것이 아니었나요? 적어도 다수의 시민들과 현장 노동자들은 그렇게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뚜껑을 여러 보니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는 '자회사 정규직화'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방문했던 대표 사업장인 인천공항에서는 그마저도 경쟁채용 방식을 도입하겠다고 합니다. 노동조합과의 합의를 존중하지도 않고 처우개선 의지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 용역업체 계약기간이 끝나지 않아 '자회사'로도 가지 못한 노동자들은 마음이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수수방관하는 태도를 버리고 '자회사 정규직화'로 변질된 공공부문 정규직화의 현실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공공부문 정규직화의 대표 사업장인 인천공항에서라도 제대로 된 정규직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벌써 2019년 11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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