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4일 금요일 저녁, 합정역 인근 부엉이 곳간에서 더불어삶의 부동산 기획 강좌 1. <대한민국은 아직도 부동산 공화국이다> 강연이 열렸습니다. 김헌동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님이 강연을 해주셨습니다. 부동산 투기를 통해 얻는 불로소득이 불평등의 주요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가 이를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으로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단군 이래 최대 땅값 거품, 누가 만들었나
김헌동 본부장은 대한민국이 아직도 '부동산 공화국'인 데는 이유가 있다면서 선분양제 등의 제도적 측면을 먼저 설명했습니다.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집을 미리 거래하는 선분양 제도는 다른 나라의 시장경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구조라고 합니다. 그 기원은 70년대 개발독재 시대입니다. 건설업체에게 이런 특혜를 준 대신 정부가 소비자 보호를 위해 분양 가격을 규제했죠. 그것이 2000년에 경기부양을 위해 일시적으로 폐지되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초반에 치솟는 부동산값을 잡기 위한 방책으로서 분양원가 공개가 국민적 관심을 모으며 진지하게 논의됩니다. 그런데 2004년 6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기업도 장사다”라는 발언과 함께, 분양원가 공개와 분양가상한제 부활은 무산됩니다. 그리고 이후 투기과열지구, 투기지역, 조정대상지역 등 수많은 대책을 쏟아냈으나,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아파트값은 폭등하고 IMF 이후 심화하던 양극화 현상이 본격적인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는 것이 객관적인 사실입니다. 참고로 2015년 경실련 조사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 5년간 오른 부동산총액이 50년간 오른 금액의 46%를 차지합니다.
▶▶ [지주의 나라]②50년간 쌀값 45배 올랐는데, 땅값은 400배
각종 규제가 풀리면서 부동산 가격이 마구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판교에 신도시를 개발하자 판교는 물론, 그 주변의 땅값과 강남의 땅값까지 동반상승하였습니다. 그 결과 노무현 정권 시절 역대 최고로 땅값이 많이 상승하고 말았습니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노무현 정부의 땅값 상승액이 너무 커서 막대를 중간에 잘랐는데도 저렇게 길게 표현됩니다.
재벌과 상류층의 부동산 투기
과거 정부가 대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중과세 및 비업무용 토지 강제 매각 등 재벌의 땅 투기를 강력하게 규제하던 시절이 있습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2기 내각의 경제부총리였던 이헌재가 기업도시 특별법과 골프장 인허가 간소화 조치를 통해 경기부양을 꾀하면서, 재벌의 부동산 투기가 한층 용이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재벌은 토지를 사고 골프장 등의 비업무용 토지를 늘려 나갑니다.
거기에 더해 재벌들에게 부동산 세금도 낮춰주는 특혜를 줍니다. 노무현-이명박 정권을 거치는 동안 종합토지세가 종합부동산세로 바뀌고, 법인의 경우 세율이 2%에서 0.7%로 인하됩니다. 재벌들이 땅 투기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된 것입니다. 한국 사회가 이런 식으로 재벌에게 부동산 특혜를 제공하고 있는데도 정치권과 언론은 이런 문제를 제대로 지적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부동산 공화국'에서 엄청난 불로소득을 올리는 다주택자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한국의 다주택자가 보유한 주택 비율이 높다는 것이야 기정사실이지만, 다주택자가 점점 더 많은 주택을 사모으고 있다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2007년 상위 1%가 평균적으로 3.2채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10년이 지난 2017년에는 평균 6.7채로 뛰어올랐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2016년부터 주택임대사업자 등록을 하면 세금을 낮춰주는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이 제도는 서민 주거 안정에 기여하지 못하고 다주택자들에게만 좋은 제도가 되었지요.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시장 '안정'을 이야기하면서 주택임대사업자에 대한 혜택을 대폭 늘리는 사실상 모순된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100채를 가진 다주택자라도 주택임대사업자 등록만 하면 재산세와 양도소득를 면제받고 종부세 합산 과세도 하지 않도록 만든 것입니다. 이에 대해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는 임대주택등록제가 "부동산 투기에 꽃길을 깔아주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임대사업자에게 돌아가는 과도한 세제혜택 탓에 "주택가격을 안정시키려는 정부의 노력은 구멍 뚫린 바가지로 물을 푸는 격"이 된다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 이준구 교수 "임대주택등록제, 부동산투기 꽃길 깔아주고 있지 않은가"
문재인 정부 2년, 부동산 불로소득 1천조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1년에 10조씩, 5년간 총 50조원을 투입하여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습니다. 재개발에 대한 기대감은 집값을 수직 상승시켰습니다. 서울에서 상대적으로 집값이 낮았던 은평구 같은 지역도 문재인 정부 초기에 한 채당 5천만원에서 1억원가량 집값이 폭등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 23조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도시재생 뉴딜에 투입되는 돈은 실로 어마어마한 액수입니다. 규모도 규모지만 국고를 투입해 집 가진 사람들의 집값을 더 올려주는 사업을 한다는 것이 도시재생 뉴딜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또 문재인 정부는 주택 공급을 늘려 부동산 가격을 잡는다는 논리로 3기 신도시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시스템에서 공급 확대는 주택 문제의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입니다. 과거의 판교나 위례 신도시가 이미 보여준 것처럼 3기 신도시는 오히려 주변 지역의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헌동 본부장님은 "서울 부동산 가격 상승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책임도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박원순 시장은 2018년 6월 지방선거 이후 서울역에서 용산 방향 철도 지하화를 발표하고, 용산과 여의도를 통째로 개발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용산과 여의도, 영등포를 비롯해 서울 전체의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습니다. 작년 8월에 강북의 옥탑방에서 한 달간 체류하고 나온 직후에도 박원순 시장은 강북 경전철 등의 토건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18개월 동안 서울시 아파트의 총 평균 가격이 2억원 씩 올랐다고 합니다. 서울시의 아파트가 약 200만 채 있으니 서울에서만 집값이 총 400조원 뛴 셈입니다. 전국적으로 따져볼 때 문재인 정부 18개월간 1천조원의 불로소득이 발생했습니다.
대안은 있다
역대 정권의 부동산 경기부양과 현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한숨이 나옵니다. 하지만 희망은 있습니다.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올바른 정책을 수행하면 부동산 가격을 얼마든지 잡을 수 있다고 합니다. 김헌동 본부장은 강연에서 다음의 세 가지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1) 후분양제 도입: 먼저 주택을 멀쩡하게 짓고 나서 팔도록 법으로 규제합니다.
2) 분양원가 공개: 주택 만드는데 쓰이는 돈인 분양원가에 설계비, 감리비, 광고비 따위를 더한 것이 분양가입니다. 분양원가를 공개하면 건설회사가 터무니없이 높은 분양가를 함부로 책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3) 분양가상한제 실시: 집은 삶의 터전이고,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국가가 이를 정상적인 가격으로 규제하는 것은 복지이고, 국가의 정당한 역할입니다.
김헌동 본부장님이 소개한 또 하나의 대안은 ‘반값주택’입니다. 분양가는 토지가격 + 건물가격입니다. 토지를 정부가 소유하고 건물만 분양한다면 서민들의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시절 강남과 서초에 이런 방식으로 평당 550만원의 아파트를 공급한 바 있습니다.
부동산 문제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불평등을 해소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며 국민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더 이상 해결을 미뤄서는 안 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흔히들 이야기하는 '경제 살리기'를 위해서라도 부동산 투기는 강력하게 억제되어야 합니다. 비생산적인 투기에 몰려 있는 자본이 생산적인 영역으로 이동해야 경제 전반에 활력이 돌게 됩니다. 문재인 정부가 아직 촛불의 명령을 잊지 않았다면 재벌과 다주택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정책들을 당장 폐기해야 합니다.
아래는 김헌동 본부장님의 강연 슬라이드 맨 마지막에 있었던 사진입니다. 사진 속의 청년처럼 지금도 좁디좁은 고시원이나 반지하 방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청년층과 저소득층, 무주택자들의 입장에서 더 깊이 고민하고 실천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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