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8일 토요일, 대방역 여성플라자에서 <왜 지금 재벌개혁인가?>라는 제목으로 더불어삶 특별강연을 개최했습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의 박상인 교수께서 촛불개혁 직후에 내신 책 제목과 동일한데요. 저자가 직접 오셔서 재벌개혁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함과 동시에 이번 정부가 재벌개혁에 힘써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는 자리였습니다. 이번 강연회에는 20명이 넘는 시민 및 더불어삶 회원들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2016년 촛불의 힘으로 출범할 수 있었던 만큼 적폐 청산의 의무를 지니고 출발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출범 후 지금까지 정부가 보여준 모습은 촛불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이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좌절이 최근 들어 지지율 하락으로 표현되고 있지요. 특히 촛불 시민들이 직접 지적했던 문제들 중 하나인 재벌 문제와 관련해서 현 정부는 이른바 '셀프개혁'이라는 방법에 기대며 시간만 보내다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재용 부회장의 인도 단독회동을 기점으로 친재벌 정책으로 급격히 선회하는 양상입니다. 박상인 교수께서는 현 정부가 과연 재벌개혁의 의도와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표하며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청산해야 할 적폐: 재벌
과거 한국의 경제발전을 두고 흔히 기적이라고 많이 표현합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경제성장은 둔화를 넘어 정체 단계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박상인 교수님의 설명에 따르면 그것은 과거의 "정부 주도, 재벌 중심" 전략이 이제는 성장에 적합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국의 경제는 일본 등의 선진국 경제를 모방하여 발전하는 경제 모델에서 혁신형 성장으로 진화해야 할 단계이죠. 하지만 기존 체제의 기득권 세력이면서 IMF 이후 더 큰 영향력을 지니게 된 재벌의 저항 때문에 재벌 중심의 발전전략을 수정하기가 어려워진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재벌은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1. 기업차원의 문제가 있습니다. 황제경영이 발생하고, 재벌 일가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회사에 투자한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이죠. 기업을 위한 경영이 아닌 재벌 일가를 우선시하는 기업경영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2. 시장차원의 문제입니다. 시장에 새로운 경쟁자가 진입하고 퇴출하는데 있어 재벌은 거대한 장벽을 쳐버립니다. 사업기회는 박탈되고, 혁신에는 장애가 발생합니다.
3. 국가차원의 문제입니다. 산업위기가 금융위기로 전이되는 시스템 리스크가 발생합니다. 한국제조업의 진화가 차단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방해합니다.
4. 정치 민주주의가 무너집니다. 재벌이 정치적 영향력을 통해 국민의 의사와는 반대되는 정책을 마음껏 만들어나갑니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미국은 거대 기업체(신탁Trust)를 대공황 시기 이미 국가가 나서서 해체한 바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 사례로는 2013년에 이스라엘 정부가 단행한 재벌개혁이 있지요. 이후 강연은 이 중 3번, 국가차원의 문제에 집중하였습니다.
○한국경제의 현실
앞서 서술하였듯이 한국의 경제 성장은 정체 단계에 들어서고 있는데, 이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요인이 큽니다. 특히 제조업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제조업 비중은 GDP의 30%로 상당히 높은 편이고, 제조업 중에서도 7대 중화학공업이 주력산업입니다. 그런데 2010년 이후 7대 산업의 경쟁력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여태껏 한국 중화학공업은 가격경쟁력을 통해 성장해왔으나, 이제는 중국과 같은 후발주자들의 추격 때문에 한국의 가격 우위를 장담할 수 없는 것이죠. 한국 제조업에 핵심 제품과 기술은 존재하지 않으며, 기술 수준은 선진기업들에 비해 취약합니다. 예컨대 기술 비교우위 유형의 소재 수출은 22.1%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러면 한국의 제조업에서 혁신이 발생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혁신의 기회와 유인이 없다!
현대자동차는 부품단가 후려치기 및 기술 탈취를 통한 가격경쟁력으로 세계시장에서 승부해왔지만, 이제 중국 및 인도와 같은 후발주자들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저하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단가 후려치기와 기술탈취는 중소기업들의 혁신 동력을 현격하게 저하시키는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현대차가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같은 미래차 부문의 기술 혁신을 도모하려 해도, 그 혁신을 뒷받침할 부품업체가 국내에 없기 때문에 경쟁력을 더욱 빠르게 상실하고 있는 것입니다.
혁신을 위해서는 기회, 유인, 금융의 세 요소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한국 정부의 경우 이 가운데 금융만 제공하면서 혁신이 일어나길 바라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기회와 유인이 없습니다. 재벌의 과도한 수직계열화와 내부거래는 혁신적 기업이 시장에 진입할 기회를 없애고, 경쟁을 제한함으로써 기술혁신과 시장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품단가 후려치기 및 기술 탈취가 만연하기 때문에 중간재 산업 및 중소기업에서 혁신을 할 유인은 사라지게 됩니다. 지금 한국에는 기본적인 재산권 보호의 개념조차 없는 것입니다. 약자의 재산권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장치 마련이 시급합니다.
한 벤쳐기업 사업가에게 성공의 비결을 물으니, ‘하나님의 뜻’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도저히 발생할 수 없는 일들이 주르르 발생하여 아직까지 살아남았다는 거죠. 한국에서 벤쳐기업으로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있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
<재벌의 기술탈취 사례: 삼성 갑질>
○정부 역할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지금의 한국 경제는 시장경제가 아닌, ‘재벌경제’입니다. 시장경제를 정상화하려면 재벌개혁을 반드시 해야 하며, 여기서 정부가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재벌개혁은 총수의 사익 추구가 사회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유도, 즉 총수가 경영을 잘 하여 회사의 이익을 높여야만 사익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회적 약자의 재산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징벌적 배상(punitive damage)과 디스커버리(discovery) 제도를 도입해야 합니다. 그리고 혁신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해소되어야 합니다. 복지체계 및 사회안전망이 구축되어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지속할 수 있어야 하고, 노동개혁과 재정개혁을 동시에 추진하고, 이행기에 필요한 일자리 및 재정정책을 시행해야 합니다. 그런 방향으로 경제구조의 전환이 이뤄질 때 비로소 기업 구조조정이 성공하고, 소득주도성장이 효과를 내고, 저출산 문제의 해결이 가능해집니다.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 미국의 경우 가해자의 매출에 따라 엄청난 액수를 부과함 디스커버리(discovery)제도: 원고의 법률 대리인이 입증을 위한 증거물 확보를 위해 법원 허락 하에 압수수색도 가능 |
재벌개혁은 정치적인 어려움이 따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지금 재벌개혁이 실시되지 않으면 중남미형의 경제위기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이 박상인 교수님의 의견입니다. 내년에 총선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 연말까지가 개혁의 실질적인 골든타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의 명령과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돌려야 합니다. 인터넷 전문은행 특례법 추진을 중단해야 합니다. 일자리 창출을 재벌에게 당부할 것이 아니라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해소함으로써 한국 경제의 낡은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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