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모음/더불어삶 시선

생각 16. 거품은 반드시 붕괴한다

by 더불어삶 2016. 4. 8.

생각 16. 거품은 반드시 붕괴한다
- 세계 경제의 예고된 위기


양적완화 → 마이너스 금리

 

1월 29일 일본 중앙은행은 일부 예치금에 -0.1% 금리를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다. 2월 11일에는 스웨덴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0.35%에서 -0.50%로 인하했다. 스위스, 덴마크는 이미 마이너스 금리를 채택하고 있었다. 3월 11일에는 유럽중앙은행(ECB)이 기준금리를 사상 처음으로 ‘0’으로 낮추고 예치금리도 -0.3%에서 -0.4%로 인하했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인하하는 이유는 정책금리가 이미 0%에 이른 상태라 더 이상 경기를 부양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긴축재정과 함께 대대적인 양적완화 조치를 시행했다. 제로 금리, 양적완화, 신용완화는 10년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용어지만 이제는 일상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8년간 제로에 가까운 금리를 유지하면서 풀려 나간 돈은 6조 달러(7200조원)에 이른다고 하니 실로 어마어마하다.


이론상으로는 마이너스 기준금리가 시행되면 시중 은행들은 중앙은행에 돈을 맡겨두지 않고 대출을 더 많이 할 것이다. 그러면 민간 경제주체들이 투자 자금을 구하기가 쉬워지기 때문에 투자, 고용, 소비가 늘어난다는 논리다. 또 각국은 기준금리를 낮출수록 자국의 통화가치가 떨어지고 그만큼 수출경쟁력이 높아질 것을 기대한다. 즉 마이너스 금리는 양적완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경기부양책이며, 환율전쟁의 성격도 함께 띠고 있다.

 

경기는 살아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론과 현실은 달랐다. 돈을 쏟아 부었는데도 경기는 살아나지 않았다.


미국의 경우 2014년 10월 말 양적완화 종료를 선언했지만 그것이 진정한 경기회복을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수치상으로는 경제가 성장하고 실업률이 감소했다고 하나, 미국 민중이 실생활에서 겪고 있는 고통은 줄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례로 미국의 실업률은 2016년 4월 1일 기준으로 5.0%인데,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노동시장에서 배제되거나 구직을 단념한 사람 등을 실업자 통계에 포함하지 않는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실업자 숫자는 2008년 금융위기 직후의 7920만 명보다 더 늘어나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그래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하 연준)도 금리를 쉽사리 올리지 못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다. 3월에 개최한 올해 두 번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도 기준금리를 동결하기로 정했다. 원래 연준은 2016년에 4차례의 금리 인상을 단행하겠다고 예고했으나 이 예고는 지켜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연준의 올해 금리 인상은 2차례 또는 1차례에 그치고, 금리 인상폭도 당초 예상치보다 크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2년째 마이너스 금리 제도를 시행해온 유로존도 대출 규모가 미세하게 늘어난 점을 빼면 경기가 크게 나아질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금리를 마이너스로 전환하고 시중 은행들에 대출을 독려하는데도 민간 경제주체들이 돈을 빌려 투자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유로존 나라들은 2008년 이후 대부분 긴축재정에 들어갔는데, 돈을 풀어도 효과가 미미하자 이번에는 재정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일본은 2013년부터 양적완화, 재정지출 확대, 성장전략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아베노믹스’를 시행했다. 2013년부터 3년간 양적완화로 풀린 돈만 220조엔에 이른다. 그러나 주가 상승으로 일부 계층이 이익을 봤을 뿐, 일본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다. 2015년 11월 기준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2010년 대비 84.1%로 크게 줄어들었다. 일자리가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정규직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마이너스 금리를 시행한 후로도 경기 둔화가 계속되자 일본 정부는 5월26~27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전에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한편 미국, 일본, 유럽의 양적완화 정책은 세계적 차원의 환율전쟁을 유발하고 있다. 환율전쟁의 본질은 불황을 다른 나라로 전가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각국이 동시에 돈을 풀고 자국 통화가치의 하락을 추구할 경우 수출 증대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반면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은 더 커진다.


중요한 것은 실물 경기가 좋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선진국과 신흥국들의 잠재성장률은 하락하고 있다. 저유가로 산유국들이 불황을 겪고 있으며 한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들의 조선, 해운, 건설 산업은 위기에 봉착했다. 8년간 저금리 또는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했는데 실물경제 강화에 기여하지 못했다면 풀린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시중에 풀린 돈은 단기 부동자금으로 변해 금융자산을 만들어내고 자산거품을 키우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지금 주식·채권·부동산 시장은 온통 거품이다.

 

다시 조성된 거품

 

그러면 2008년에 문제를 일으켰던 글로벌 자산거품은 얼마나 더 커졌을까. 주택 가격의 상승은 이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국제결제은행(BIS) 자료에 따르면 세계 22개 주요국의 주택 가격은 지난 10년간 평균 48.4%가량 치솟았다. 1월 기준으로 런던의 평균 집값은 55만1000파운드(약 9억712만원)를 돌파했는데, 영국 대학 졸업생이 런던에서 취직할 경우 초임 연봉은 4만파운드(약 6500만원) 정도다. 그래서 런던에서는 템스강에 보트를 정박시켜 놓고 숙식을 해결하는 ‘보트피플’이 늘어나고 있다. 캐나다 밴쿠버에서도 집값이 너무 올라 청년들이 인근 위성도시로 떠나고 있다고 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구글의 한 신입사원이 높은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서 개조한 트럭에서 사는 모습이 공개됐다. 금융 및 부동산거품이 커진 만큼 사회양극화가 심화하고 민중의 삶은 더욱 피폐해진 것이다. 그러는 동안 극소수 부자와 대규모 투자회사들은 집과 부동산을 사재기하고 증시에서 높은 수익을 올렸다.


노동자와 민중의 저항이 확산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집값 폭등으로 커진 서민들의 원성은 정치적 요구로 폭발하고 있다. 홍콩에서는 부동산 가격에 성난 시민들이 2014년 가두시위를 벌였고, 대만에서도 부동산 값에 대한 청년층의 불만이 정권 교체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투자회사 리먼브러더스가 무너졌다. ⓒ더스쿠프

 

그러나 거품 키우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소득증명을 완벽히 요구하지 않는 '알트-A'(ALT-A) 대출상품이 재등장했다. '알트-A'는 신용도가 서브 프라임보다는 높고 프라임보다는 낮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주택담보대출상품이다. 과거에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함께 글로벌 금융위기를 부른 상품으로 알려진 ‘알트-A’ 모기지가 다시 등장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하는가. 2008년 금융위기를 불러온 문제들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더 큰 위험을 부르고 있다는 뜻은 아닐까.

 

뾰족한 대안은 없다

 

금융 거품은 언젠가 반드시 붕괴한다. 그리고 거품 붕괴의 계기는 곳곳에 있다. 결론적으로 세계 경제는 언제 다시 위기가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지난 1월에는 ‘전세계 부자들의 잔치’라 불리는 다보스포럼에서도 “새로운 위기” 또는 “3차 경제위기”의 가능성을 경고하는 소리가 나왔다. 지난 2월26~27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도 “모든 정책 수단(all policy tools)”을 총동원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마이너스 금리를 확대하는 방안이나 정부가 가계에 ‘헬리콥터 머니’를 지급하는 방안도 거론된다고 한다. 하지만 세계경제 전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뾰족한 대안이 갑자기 나오기는 쉽지 않다. 1980년대부터 2008년까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짧은 호황을 누렸던 자본주의 체제는 지금 완전히 길을 잃은 모습이다.


‘제3의 위기’는 실물경제의 위기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2008년 금융위기와 다르다. 또 하나의 차이는 중국의 역할이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때는 중국이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시행하고 통화를 팽창시켜 세계 경제를 떠받쳤다. 당시 한국 경제가 충격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처럼 보였던 것도 중국 경제가 성장을 지속한 덕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그동안 생겨난 부동산 거품과 제조업의 과잉설비가 오히려 중국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중국발 위기의 가능성

 

중국 경제에 누적된 문제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 유령도시와 노동자들의 시위다. 유령도시란 집만 있고 거주자는 없어 슬럼화한 도시로서, 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개발의 결과물이다. 최근 중국의 유령도시는 1, 2선 도시(대도시)에서 현급 도시로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제조업 생산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철강과 시멘트 산업의 과잉설비가 문제되고 있다. 중국 당국이 과잉설비 해소에 나서자 헤이룽장(黑龍江)성 등에서 노동자들이 체불임금 지급과 고용 보장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에 들어선 신도시 캉바시.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인터넷한국일보


중국은 향후 경제 5개년 계획의 핵심을 ‘내수를 통한 성장’으로 설정하고 소득 증대와 분배를 국가적 과제로 삼고 있다고 하지만 전망은 밝지 않아 보인다. 지난 3월 5일 개막된 전인대에서 중국 정부는 그간 경제정책의 목표였던 성장률 7% 유지를 폐기하고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6.5~7%로 제시했다.


세계적 저성장 추세 속에서 중국의 제조업 생산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면 원자재 수요도 감소하게 된다. 그러면 중국에 원자재를 판매하는 신흥국들에서 경제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과거와 달리 신흥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40%에 달하기 때문에, 신흥국 경제위기는 선진국에까지 확산될 것이 자명하다.

 

폭탄을 안고 있는 한국

 

신흥국과 선진국이 위기를 맞이하면 수출지향 경제인 한국도 불황을 피할 수 없다. 수출시장의 25%를 중국에 의존하는 한국은 이미 불황형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2월 제조업 평균 가동률이 73.5%로 전월 대비 1.2%포인트 상승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IMF 외환위기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다. 인천 남동산단의 공장가동률은 6년 만에 처음으로 70%대로 떨어졌다. 제조업 재고율도 올해 1월 기준 128.4%로 2008년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8년 12월 129.5% 이후 8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주력산업으로 불리던 전자산업과 자동차산업의 재고율이 각각 170%, 154%로 가장 높다. 어떻게 보면 한국은 이미 위기 상황에 돌입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부동산 경기를 부양한다며 한껏 키워놓은 가계부채 폭탄이 있다. 한은이 발표한 2015년 말 가계신용 잔액은 1207조원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사실상 대부분이 가계대출과 같은 성격을 띠는 소규모 자영업자 부채가 빠져 있다. 국제기준대로 하자면 '일반 가계의 부채+소규모 자영업자 부채+가계를 돕는 민간비영리단체 부채'를 기준으로 가계부채를 집계해야 한다. 이 경우 가계가 짊어지고 있는 부채의 규모는 지난해 9월말 1385조 5000억원이며 지난해 말에는 1400조원대 중반을 넘어섰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지난해 기준 169.9%로 OECD 최고 수준이다. 한국의 가계가 1년 동안 가처분소득을 모두 모아 은행에 낸다 해도 빚의 69.9%가 남는다는 얘기다.

 

 

        국제 기준으로 계산한 가계부채와 가계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 ⓒ세계일보


빚을 갚기 어려운 ‘한계가구’도 지난 3년간 급증했다. 한계가구란 처분가능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 비중(DSR)이 40%가 넘고 금융부채가 금융자산보다 많은 가구를 의미하는데, 이 숫자가 작년 기준 158만 가구에 달한다고 한다. 그런데 정부는 저소득층의 가계부채 실태를 제대로 집계조차 못하고 있다. 저소득층은 제1·제2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기가 어려워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등록된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사람만 252만명 이상인데, 시중에는 등록되지 않은 대부업체가 훨씬 많으니 대출 규모 또한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런 가운데 세계 경제의 불안정에서 비롯된 외부 충격이 가해지면 한국의 가계부채나 부동산 문제는 곧바로 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금리가 대폭 인상되거나 집값이 폭락할 경우 빚을 갚을 여력이 부족한 저소득층부터 무너진다.


박근혜 정부는 여전히 가계부채가 고소득층에 집중되어서 괜찮다고 주장하며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뒤늦게 주택담보대출 기준을 강화한 것을 보면 정부도 부채의 심각성을 인지하고는 있는 모양이다.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입으로 경제를 외치면서 한편으로는 ‘코리아 리스크’를 키우는 것 또한 자가당착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개성공단 입주 기업 및 관련 기업의 5만이 넘는 노동자를 한순간에 실업자로 만들고도 모자라 테러 시나리오까지 내놓아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박근혜 리스크’라는 표현이 나올 만도 하다. 그러니 박근혜 정부에게 위기에 대한 대비나 관리를 어떻게 기대하겠는가. 어느 모로 보나 약자들이 삶을 영위하기가 참 힘든 대한민국이다.

 


 참고문헌

 

박승호, 《21세기 대공황의 시대》, 한울아카데미, 2015.
<다보스포럼 "3차 경제위기 가능"…中 양적완화 성공여부에 달려>, 《헤럴드경제》, 2016.01.20.
<빚갚기 턱없이 부족한 소득…가계부채가 소득의 1.5배>, 《연합뉴스》, 2016.3.26.
<중국 '유령도시', 3선 도시로 확산>, 《이데일리》, 2015.11.19.
<흔들리는 중국 경제 진원지는 ‘제조업’...‘중국리스크’로 금융시장 전반에 영향>, 《아시아투데이》, 2016.1.19.
<석탄 과잉설비 해소에 중국 노동자 뿔났다 "불황이라고 밥 굶기냐">, 《에너지경제》, 2016.3.31.
<소득증명 요구하지 않는 주택담보대출 미국서 재등장>, 《연합뉴스》, 2016.2.3.
<부채 취약계층 연착륙 가능할까>, 《주간경향》 1163호, 2016.2.16.
<남동산단 공장가동률 IMF 때로 회귀하나>, 《기호일보》, 2016.3.22.
<220조엔 풀고도 못 웃는 일본…엔고에 기업들마저 '휘청'>, 《한국경제》, 2016.4.3.
<실패한 ‘아베노믹스’ 등돌린 일본 국민>, 《경향신문》, 2016.2.16.
<가계부채 1200조원?… 실제는 1440조원>, 《세계일보》, 2016.2.2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