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23. '촛불 정부'에서도 삼성 불패는 여전하다

더불어삶의 생각 2021. 3. 12. 10:32

'촛불 정부'에서도 삼성 불패는 여전하다
- 삼성의 2인자 이상훈 무죄 확정판결을 바라보며

 

지난 4일, 대법원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공작을 진두지휘한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의 무죄를 확정했다. 2019년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던 이 전 의장이 2심에 이어 상고심에서도 무죄를 받은 것이다.

 

'삼성의 2인자'로 불리는 이 전 의장에게 무죄가 선고된 것은 노조와해 전략 문건 등의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는 2심의 판단이 대법원에서도 인정됐기 때문이다. 또 대법원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여부에 대해서도 파견법 위반이 아니라는 2심 판결이 정당하다고 판단해 별도 심리를 하지 않았다.

 

이제부터 이 재판의 1심, 2심(항소심), 3심(상고심)을 비교하면서 '법 위의 삼성' 또는 '삼성 불패'라는 공식을 현실에 대입해 보자.

 

[1심 이전]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의 탄생과 조직적 노조파괴

삼성전자서비스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이유는 간단하다. 노동자들이 "먹고 살게는 해 줘야 할 것 아닌가"라고 토로할 정도로 노동환경이 열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동환경이 열악했던 이유는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를 통해 수리기사들을 간접고용하는 고용 형태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노동자들은 삼성 로고가 새겨진 옷을 입고 삼성 제품을 수리하지만 삼성 소속이 아니고 삼성전자서비스 소속도 아니었다. 이들은 삼성전자서비스의 각기 다른 협력업체에 소속되어 있었다. 노동자들은 협력업체 사장이 아무런 권한을 행사할 수 없는 '바지사장'이며 자신들이 삼성 직원으로부터 문자 업무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정부와 법원은 현장 노동자들의 의견을 외면했다. 2013년 고용노동부는 삼성전자서비스에 대한 노동관계법 위반에 대한 근로감독을 실시했으나 위장도급이나 불법파견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결했다.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경기지청에서 삼성전자서비스의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검찰 수사로 전환하자는 의견을 냈으나 고용노동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2017년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수리기사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에서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불법파견 여부에 대해 노사 간의 다툼이 이어지던 중, 2013년 10월(최종범 열사)과 2014년 5월(염호석 열사)에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파괴'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이때 드러난 정황에 따르면, 삼성전자서비스는 협력업체에 노조가 발생하면 그 업체와 계약을 해지하거나 협상 장기화를 통해 고사시키는 전략을 사용했다. 해운대와 아산의 협력업체를 폐업시킨 것이 대표적인 예다.

 

또 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이른바 '그린화 작전'이라는 노조 와해 작전을 실행했다. 마치 적을 상대로 군사작전을 수행하듯이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을 감시하고 노조 탈퇴를 종용했다. 사람이 두 명이나 죽고 나서도 삼성은 반성의 빛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유서에 노조장으로 치러 달라고 남긴 염호석 열사의 시신을 탈취하는 소동까지 벌였다.

 

[1심] 역사의 우연인가 필연인가? 진실을 확인받은 노동자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파괴 및 불법파견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데는 우연한 계기가 있었다.

 

2018년 2월, 검찰은 삼성전자가 이명박 전 대통령을 위해 자동차 부품업체인 다스의 미국 소송비를 대납해줬다는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삼성전자 수원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그러던 중 검찰은 한 인사팀 직원의 사내 메신저 대화 내용을 통해 사무실 컴퓨터와 외장하드디스크 등을 숨기고 자료를 파기한 정황을 확인했다.

 

검찰은 즉시 그 직원을 추궁, 지하주차장에 주차된 차량 트렁크와 회의실 등에 외장하드디스크와 공용 컴퓨터를 은닉한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렇게 획득한 자료에서 삼성그룹 차원의 자회사 노조와해 공작 관련 문건들이 무더기로 발견된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의혹 관련자 32명과 삼성 에버랜드 노조와해 의혹 관련자 13명을 무더기로 기소했다.

 

그리고 2019년 12월 17일, 삼성전자 서비스노조 와해 공작과 관련하여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32명 중 26명에게 유죄가 선고된다. 그 26명 중에 이상훈과 강경훈이 있었다.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삼성전자 경영지원실 사장으로 있으면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파괴에 대한 최종 보고를 받은 사람이었다. 강경훈 부사장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인사팀에서 노사업무를 총괄하면서 2011년 에버랜드 노조파괴에도 관여했음이 드러났다. 두 사람은 1심에서 각각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당시 삼성 측의 주장은 압수수색 과정에 위법성이 있으므로 관련 증거들이 효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압수수색 절차에 별다른 위법이 없다고 판단한다"며 "굳이 찾자면 첫 압수 수색 영장을 해당 당직 직원에게 제시하지 않은 정도의 과실이 있으나, 증거능력을 배제하는 데에는 족하지 않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그와 같이 중하지 않은 위법을 문제삼아" 노조파괴 증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실체적 진실 규명을 통한 형사 사법 정의 실현의 이념에 어긋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도 덧붙였다.

 

무엇보다 재판부는 "삼성전자나 삼성전자서비스 측에서 노조 세력 약화를 위해 기획 폐업을 지시한 점은 증거가 충분하고, 노조 와해와 고사화를 위한 구체적인 전략 문건이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불법파견에 항의하고 싸우기 시작한 지 6년 만에 비로소 법원이 삼성의 조직적인 노조파괴를 공식 인정한 것이다.

 

2019년 1심 판결의 또 다른 의미는 삼성전자서비스의 불법파견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 및 노동자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지휘 및 명령을 했다고 판단했다. 협력업체 직원들은 삼성전자서비스 로고가 붙은 근무복을 입었고, 삼성전자서비스로부터 전산시스템을 통해 업무 배치되고 수리 결과를 보고했으며, 삼성전자서비스가 정한 업무매뉴얼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또 삼성전자서비스는 전국의 협력업체에 새로 뽑을 인원을 정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재판부는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의 수리기사들이 직영센터의 수리기사들과 같은 곳에서 일하지는 않지만 서로 크게 차이나는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며, 이를 가지고 근로자파견 관계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로써 실제로는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을 직접 사용하면서도 형식적인 도급계약을 내세워 책임을 회피하던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 서비스업 부문에서 불법파견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세웠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판결이었다.

 

 

[2심] 절차적 원칙이 정의를 뒤집어버리다

 

그러나 2020년 8월 10일, 2심 판결에서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에 대한 무죄가 선고되었다. 판결이 뒤집힌 근거는 사건의 본질보다는 압수수색 과정 그 자체의 적법성에 있었다.

 

우선 2심 판결에서는 검찰이 삼성전자 본사를 수사할 당시 압수‧수색영장에 기재된 장소에 삼성전자 본사 인사팀 사무실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중요한 것으로 간주했다. 또한 2심 재판부는 '영장주의 원칙'을 강조하면서 당시 검찰이 인사팀 직원에게 영장을 제시하지 않았으므로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사소한 위법성보다 사법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는 1심의 판단은 이렇게 해서 뒤집혔다(영장주의 원칙은 본래 인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영장주의는 압수수색에 대응할 자원과 시스템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재벌 대기업을 비호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고 본다).

 

불법파견 판결 역시 뒤집혔다. 삼성전자서비스는 구체적인 업무 배정에 관여하지 않았고, 같은 공간에서 일하지 않았고, 업무도 구별되었으므로 협력업체의 사업이 삼성전자서비스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볼 수 없다는 논리였다.

 

예컨대 2심 재판부는 삼성전자서비스가 제공하는 전산시스템을 통해 업무 분담 및 보고가 관리되었다고 해서 이것이 꼭 본청의 지휘 및 명령이라고 볼 수는 없으며, 시스템 제공은 단순히 협력업체에 대한 지원일 뿐이었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노조 측은 "구두로 지휘‧명령하던 것을 전산시스템으로 옮긴 것"이며 "실질적인 지휘‧명령 여부를 봐야 한다"고 강력하게 항의했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지 않았다"는 재판부 논거에 대해서도 노조 측은 "제조업 불법파견을 심사하던 기준을 서비스업에 기계적으로 잘못 적용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2심 재판부는 삼성전자서비스 지사에서 협력업체 수리기사에 대해 업무 신속 처리, 실적 독려의 내용이 담긴 문자를 보낸 일도 '일부의 사례'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삼성전자서비스가 계약 해지라는 방식으로 언제든지 협력업체를 폐업시킬 수 있었다는 점은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2심 재판부도 삼성전자서비스가 노조법(구 노조법 제81조)에 규정된 부당노동행위의 주체가 된다는 '사용자성'만은 인정했다. 2심 재판부는 노조법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면서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 수리기사들의 기본적인 노동조건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력을 행사했다"고 밝혔다. 판결문을 읽어보면 사용자성을 인정하면서 근거로 든 내용들과 앞에서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판단한 근거들이 겹치는 모순이 발견된다.

 

즉 2심 판결은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외면하고 절차적 원칙과 지엽적인 사실들을 끌어와서 1심 판결을 뒤집고 삼성의 2인자를 풀어준 판결이었다. 이에 노동조합 측은 "(재판부가) 억지 논리를 만든 데다 파견법 위반을 뒤집어 간접고용 근절에도 역행"했다고 비판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파괴 사건의 1심, 2심, 3심 판결 내용을 표로 정리했다 (제작 - 더불어삶)

 

 

[3심] 뒤집힌 정의가 '정의'라는 대법원

 

여러 사안에서 1심과 2심의 판단이 극명하게 엇갈린 삼성전자서비스 노조파괴 및 불법파견 재판에 대해 대법원은 2심의 손을 들어주었다. 2심 판결로 풀려난 이상훈 전 의장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까, 통쾌한 웃음을 터뜨렸을까?

 

일반적으로 대기업이 그룹 차원에서 노조파괴 공작을 진행하더라도 그 피해자인 노동자들이 관련 자료를 입수해 책임 소재를 증명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대기업이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자료를 순순히 내놓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서비스 사건의 경우에도 검찰의 수색 도중 우연히 발견된 자료가 아니었다면 재벌 고위관계자들의 노조파괴 공작에 대한 처벌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우연히 발견된 그 희귀한 증거마저 '영장주의'라는 이름으로 무력화하는 재판부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삼성 불패의 공식을 재확인한다.

 

재벌의 노조파괴에 대한 처벌은 여전히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사법부는 여전히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권리에 무관심하다. 사회적 약자가 목소리를 내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모든 것이 촛불 이전으로 빠르게 회귀하는 느낌이다. 우리의 착각이기를 바란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18636&CMPT_CD=RPORT

 

'촛불 정부'에서도 삼성 불패는 여전하다

[주장] 삼성의 2인자 이상훈 무죄 확정판결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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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더불어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