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삶의 6월 책읽기 모임은, 지난번 민생토크에서 만난 KTX 해고 승무원들의 이야기와 연결되는 내용으로 진행했습니다. 조순경 교수님의 <노동의 유연화와 가부장제> 1~3장입니다.
이번 모임은 철도노조 KTX 열차승무지부의 김승하 지부장님이 특별히 장소를 대여해 주셨습니다(감사~).
이날은 더불어삶 회원들의 참석률도 높아서 모임이 활기차게 진행된 것 같습니다.
준비된 발제를 먼저 들어봤습니다. 1장은 '노동 유연화 담론의 허와 실'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노동유연화 논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1980년대 중반 영국의 앗킨슨(J. Atkinson)에 의해 수행된 유연기업(flexible firm) 모델이라고 합니다. 유연 기업 모델이란 기업의 내부 노동시장에서 핵심적인 부분은 기능적 유연성을 추구하고, 주변적 부분에 대해서는 수량적 유연성과 외부화를 추진한다는 것입니다.
노동유연성에 대한 이런 담론은 지난 20여 년간 우리 사회를 지배해 왔고, 기업의 인사전략뿐 아니라 정부의 노동정책에도 이런 생각이 깊이 스며들어갔습니다. 1990년대 초반 신인력 정책이라는 이름 아래 정부가 추진해 온 여성 노동의 유연화 정책은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어수봉, 1993;1994)를 통해 처음으로 공론화되었습니다. 이 연구에서 말하는 '신인력 정책'이란 산업 구조 및 노동시장의 변화에 따라 기업들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주변적 업무에 대해서는 외부화, 임시직화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반박이 가능합니다.
"우리나라 비정규직은 경제 환경 변화나 노동시장적 변수라기보다는 기업의 인사관리 전략이나 노동조합 조직력 약화로 인한 힘의 관계 약화, 노동 유연화를 정책적 기조로 삼는 정부 정책의 문제" (김유선, 2003)
"이것은 87-88년 이후 성장한 노동조합 운동에 대한 기업의 대응 전략이자 여성 노동자들을 단기 저임금 노동으로 활용하기 위한 인사전략의 측면이 더 강하다." (송다영, 1991)
또한 '핵심' 업무와 '주변' 업무의 구분은 그 자체로 모호하고 상황에 의존합니다. 실제 기업들은 객관적인 직무 분석을 통해서 주변 업무와 핵심 업무로 나누어 그 가운데 주변 업무를 비정규직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기업들은 많은 경우 성차별적 통념에 의존해 주변 업무라고 '간주되는' 업무를 비정규직화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여성 직종의 일 역시 상당히 고도의 숙련성을 요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단순 직무로 간주되어 아웃소싱"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현대자동차에서 식당 업무의 외주화, 백화점에서 여성 판매직의 비정규직화, 그리고 KTX 여승무원 업무의 외주화가 그 예입니다.
법적 책임의 문제도 살펴봤습니다. 사용관계와 고용관계가 일치하는 전통적 고용형태(직접 고용)와는 달리 파견직 및 여러 유형의 특수 고용직과 같은 간접 고용에서 고용 관계는 매우 모호하거나 혼란스럽게 인식됩니다.
고용관계와 사용관계가 분리된 고용형태에서는 두 관계의 일치를 전제로 하고 있는 현행 노동관계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여러 가지 사용자 책임을 피해갈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노동관계법이 정하는 근로자 보호와 사용자 책임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간접 고용형태의 비정규직화를 꾀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는 기업이나 정부의 노동유연화 정책이 단순히 경제적 비용 절감 차원에서 이해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p.54)
즉 특수고용, 위장도급, 불법파견 등의 간접 고용은 기업이 노동을 활용하면서 법적 책임은 회피하려는 극도의 반사회적인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고용형태에서 노동자는 노동3권을 포함한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당하며, 특히 여성 노동자는 중층적인 차별을 당합니다.
2장은 '노동시장 유연화와 기회의 평등의 한계'입니다.
우리 사회의 성별 고용형태별 임금 격차는 매우 심각하며 지난 수년간 별다른 개선의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법정 최저 임금에도 미달하는 수준의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노동자들이 여성 비정규직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성별과 고용형태에 의한 중층적 차별이 현재 우리 사회 노동시장에서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러한 차별은 직접적인 차별보다는 노동시장 진입 이전에 존재하는 불평등으로 인한 간접 차별의 결과일 수도 있다. 기회의 평등만으로는 실질적인 평등에 가까이 갈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pp.67~68)
다음으로 '간접 차별'이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합니다.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의 제정으로 직접적이고 가시적인 차별 관행은 일정하게 줄어들었지만 동시에 우회적 방법을 통한 차별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외국의 여러 나라에서도 유사하게 발견된다고 하네요. 여성에 대한 간접 차별이란 성 중립적인 기준을 적용했으나 그러한 중립적 기준이 여성에게 불이익한 결과를 야기하는 경우 차별로 보는 개념입니다.
<고용형태에 의한 간접 차별>
- 농협: 사내 부부 우선 정리해고
- KTX: 여성 승무원 업무 외주화
- 현대차: 100% 여성인 식당 업무 외주 위탁
- 한국전기공사협회: 직급 정년제 통해 여성 단기 노동력화 시도...
-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간에 여성에게 불이익!
다음으로 3장에서는 KTX 승무원 문제를 다시 한 번, 보다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먼저 당연한 사실. KTX 열차 사업의 핵심 내용 가운데 하나가 승객의 안전한 수송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승무원 업무 자체는 그 업무의 성격상 외주화해서는 안 되는 업무입니다.
비용 절감 논리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철도공사는 운영 적자 개선을 위해 승무 업무의 외주화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실제 승무 업무의 외주화는 철도공사 직접 고용에 비해 비용 절감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오히려 더 많은 비용을 들이면서까지 승무 업무는 외주화한 반면, 다른 영역에서는 철도공사의 예산이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p.127)
그리고 1심과 2심 판결 내용을 소개합니다. 철도공사가 2004년 KTX 승무 업무를 자회사인 철도유통과 위탁협약을 맺고 외주화한 것은 불법 파견, 위장도급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설사 외주화로 인한 비용 절감 효과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법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것입니다. 즉 KTX 승무업무의 외주화는 경제적 비효율성의 문제를 떠나서 법적으로도 위법합니다(이 당연한 판결을 나중에 대법원이 뒤집어 버립니다).
3장의 내용에 대해서는 당사자이신 김승하 지부장님이 보충설명을 알차게 해주셨습니다. KTX 해고 승무원 여러분들의 근황과 계획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현안이 되고 있는 인천공항 비정규직 이야기도 잠시 나눴습니다.
발제에, 토론에, 질의응답까지...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다음번에도 알찬 책읽기 모임을 만들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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