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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모음/외부자료

故김용균 사망사건 결심공판 - 김미숙 어머님 유가족 의견 진술 전문

by 더불어삶 2022. 1. 10.

 

 

2021.12.21

한국서부발전 법인과 임직원 9명, 하청 한국발전기술 법인과 임직원 6명에 대한 결심공판

피해자 유가족 의견진술 – 김미숙님

이 사고로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자녀를 잃었습니다. 
 
경북 구미에서 외아들로 태어난 용균이는 자라면서 지금까지 착하고 성실했고 책임감도 있어서 내신 성적으로 대학에 입학해 장학금도 타가며 말썽 한번 없이 건강하게 잘 커주었고, 아들 바라기였던 저희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런 아들은 저희들 목숨보다 더 소중했고 삶의 희망이었습니다.  
  
그럼 아들을 회사에 보냈더니 인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본 안전교육도 없이 안전장비도 지급받지 못한 상태에서 사고를 당했습니다. 아무리 소리쳐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큰 굉음에 현장에서 구해줄 동료조차 없이 인생 막장 같은 더럽고 힘들게 일한 것도 이제야 알게 된 것도 미치겠는데 용균이가 사고 당시 얼마나 무서웠을까. 
살려고 소리치며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큰 고통을 겪으며 얼마나 발버둥 쳤을까. 


얼마나 현장이 어둡고 분진이 많이 날렸으면 사고 당하고 여러 차례 찾았는데도 5시간 만에 발견되었을까. 발견되고도 4시간이 지난, 아침7시까지 지체하면서 사고처리가 되었다고 하는데 내 소중한 자식이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당했고 시신도 만신창이가 되어 우리에게 인계되었습니다. 


시신 수습도 안 된 상황에서 바로 옆 라인을 가동하는 것이 급급했던 원하청 임직원들이 인간 같지 않아보였고 그런 가해자들이 노동자들 위에 군림하는 현실이 더욱 끔찍했습니다.  
 
저의 아들은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으로 죽어갔을 것이고, 아들은 저의 분신과 같기에 저 자신도 같은 취급을 당해 죽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 어느 누가 돈 벌려고 직장에 나가 죽어 돌아 올 거라고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아들 예수가 못 박혀 죽었을 때 하느님의 아픔이 저의 아픔보다 더 심했을까요?  

재판장님.  
저는 아들을 지켜내지 못한 죄로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으로 평생을 아파하며 힘들게 살 수밖에 없는 심각한 피해자입니다. 아무리 큰 보상도 그 어떤 트라우마 치료도 저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음에 한없이 절망합니다. 
 
용균이 아빠가 건강이 좋지 않아 이 사고 전까지 계속 제가 가장으로 일을 하며 가정을 돌보았습니다. 용균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취업에 유리한 공부를 한다고 전문대를 갔는데, 그게 아니라 4년제를 보냈으면 그 위험한 직장에 가지 않았을 거라는 자책을 합니다. 좀 더 가정형편이 나은 건실한 부모가 되었더라면 취업난에 휩쓸리지 않도록 뒷받침 해주지 않았을까? 4년제를 갔다면 설령 대학 나와서 취업이 안 되더라도 엄마 아빠와 같이 살면서 취업준비 하면서 이전과 같이 별탈없이 얼굴 보며 살고 있지 않았을까? 매번 이런저런 자책에 힘들고 괴롭습니다.  
 
한국발전기술 입사 후 용균이는 쉬는 날에도 먼 거리라 집에 오고 싶어도 올 수도 없었고 입사 이후 한달 반 만에 예비군훈련 받으러 집에 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 보니 살이 홀쭉하게 빠져있어서 아이 아빠한테 목욕탕에 가서 몸에 이상이 있는지 보라고 했는데 아들이 극구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상해서 아들을 앉혀놓고 힘드냐고 물어보니까 힘들다고 해서, 힘들면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용균이는 힘들지만 더 버텨보겠다고, 그래도 아니다 싶으면 그만 두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들 사망 후 알고 보니 3개월 만에 10키로가 넘게 빠졌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애를 쓰고 끙끙대며 일을 했는지, 일하면서 비쩍 마른 아이가 기계에 끼어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24살 꽃다운 나이에 그렇게 짧은 생을 마감함에 억장이 무너집니다. 부모가 된 입장에서 어떻게 미치지 않고 살 수 있겠습니까?  
 
아들을 잃은 것만으로도 너무나 큰 고통인데 회사의 반성없는 태도로 인해 아들을 두 번 죽이는 것 같은 모욕과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새벽 6시에 경찰에서 연락을 받고 급히 태안의료원으로 갔습니다. 영안실에서 시신을 보여주는데, 탄가루로 얼굴이 까맣게 되어있어서 처음에는 아들이 맞는지 모르겠더라구요. 머리결이랑 피부랑 자세히 보니 내 아들 같았고, 계속 부정하고 싶지만 용균이가 맞았습니다. 겁은 났지만 몸을 만지려고 몸이 덮여져있는 비닐을 제끼려고 하니까 몸과 머리가 분리되어 있다고 하면서 바로 담당자가 제지를 했습니다. 그게 아들을 본 마지막입니다. 
 
그렇게 용균이 시신을 확인하고 울고 있는데 하청 이사가 죄송하다고 하면서도 첫마디가 “애가 일은 열심히 했는데 고집이 있어서 가지 말라는 곳에 가서 하지 말라는 일을 해서 사고가 났다”는 말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경황이 없어서 그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말인지 몰랐는데 정신을 차리고 장례식장에 온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하청이사의 말은 사실과는 정 반대였습니다. 


처참히 죽게 만든 것도 모자라 아들에게 사고 책임까지 뒤집어씌우는 짓은 절대로 용납도 용서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고 3일째 되던 날 사고 현장에 들어갔습니다. 내 아들이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 들어갔는데 현장 안이 너무 어둡고 더러워 내 아들이 이렇게 험한 곳에서 일한 것을 보고 있자니 그동안 3개월 동안 엄마로서 그것도 모르고 편안히 먹고 산 것을 다 토해내고 싶을 만큼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들 사고 장소를 갔는데 사고 흔적은 간데없이 사측은 이미 물청소로 현장을 훼손했음을 목격했습니다. 지극히 상식적으로 당연히 폴리스라인이 처져 있을 것을 예상했고 아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뭔가 숨기려는 사측의 태도에 악을 쓰며 울부짖었습니다. 


꼭 진상규명해서 아들의 죽음을 제대로 밝혀야겠다는 마음을 다졌습니다.  
 
그래서 총리훈령으로 진상규명을 했고 아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아들은 업무수칙 다 지켜서 사고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원청은 하청을 주었으니 사고 책임이 없고 하청은 내 사업장이 아니니 설비를 건들 권한이 없다고만 합니다. 
원 하청 모두 안전의 사각지대를 만들어 사고 당사자한테 책임전가를 한 것입니다. 
 
회사측의 기만적인 태도는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론 눈치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사과하는 척 했지만, 사고 직후부터 재판까지 일관되게 용균이가 잘못해서 사고가 났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사고를 은폐하려고 했고, 마치 사고가 없었던 것인 것 마냥, 남은 동료들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도 무시하고 쉽게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 재판도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이 아니라 아이를 두 번 죽이고 모욕하는 과정이 되고 있어 2차 가해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회사측은 사고 현장은 안전한데 아들이 죽었다고, 공항에서 캐리어 운반하는 안전한 컨베이어 벨트라고 빗대서 말하는데 너무 기가 막혔습니다. 그렇게 안전하다 여기는 사측 모두 직접 들어가서 일하도록 밀어 넣고 싶었고, 그들 자식들까지 일 시킬 수 있는지 되묻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습니다.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고 생각하려고 노력했는데 재판에서의 태도를 보니까 일말의 양심도, 반성도 없는 모습에서 정말 내가 죽을 때까지 이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우리 아들 살려내라고 소리 지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깊은 한이 맺힙니다. 
  
우리는 용균이가 없는 세상에서 평생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재판장님. 저는 3년이 흐른 지금 아직도 용균이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멀리 군대 보낸 듯 언제라도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습니다. 
 
사고 이후 우리 가족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이 살기가 어렵습니다. 가해자들은 시간이 지나면 발 뻗고 지내겠지만 피해자들은 평생 이 고통 속에 살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 아빠는 건강이 악화되었고 저는 도저히 이전처럼 살 수가 없어 그때 하던 일을 그만뒀습니다. 아들 사고 이후 저희 집은 사람의 온기가 없어졌습니다. 아이 아빠는 매일 방구석에 박혀 고통으로 허덕이며 빨리 죽어서 용균이 뼛가루와 섞이면 좋겠다, 그렇게라도 아이와 함께하고 싶다고 살기 힘들어합니다. 저도 아무리 정신없이 일정을 쫒아 다녀도 퇴근 할 때는 허망한 마음으로 마치 꿈꾸는 듯 구름 위를 걷는 듯 집을 향해 갑니다. 
 
이 재판을 통해 아들 죽음의 진실이 확인되길 원합니다. 
 
얼마 전 아들 생일이었습니다. 꿈에 아들이 나와서 삼겹살과 스팸을 구워 상추랑 싸 먹이는 꿈을 꿨습니다.

아들이 죽고 난 후에는 아이 살리는 꿈만 꿨었는데 모처럼 아이 밥 먹이는 꿈을 꿔서 좋았지만 이내 사라지고 부재의 아픔이 고스란히 가슴에 생체기를 냅니다. 용균이가 없는 세상은 저한테는 아무런 꿈도 행복도 없습니다. 비정규직이었던 아들은 안전을 위한 기본 장비도 지급받지 못한 채 위험천만한 현장에서 마지막으로 피켓을 들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아들의 뜻을 헤아려 이어갈 것입니다.  


언제라도 해고될 수 밖에 없는 비정규직 아들과 동료들이 했다는 28번의 위험시정 요구를 묵살시킨 원하청은 결국 용균이의 죽음을 만들었습니다. 아들 사고 10년 전부터 아들 사고까지 8년 동안 12명의 사망사고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있었다고 합니다. 그 중 1년 전에도 3호기에서 사망사고가 있었고 그해 동료들 중 시야확보가 어려워 배수관에 빠져서 크게 다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동료는 분탄을 삽으로 퍼내다 빨려 들어갈 뻔했던 위험을 경험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현장의 안전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아들 사고 이후에도 컨베이어 벨트 사고가 있었는데 2인1조로 다행히 살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잦은 부상과 사고가 있었다는 것만 봐도 위험은 미리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용균이 사고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사고 였습니다. 그러니 회사 측은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용균이의 죽음의 진실과 책임소재를 밝히고 안전한 현장을 만들어 다시는 용균이 같은 죽음이 없게 하는 것이 남겨진 저에게 유일한 숙제입니다. 
 
저도 제 생활이 바빠서 쫓겨 살다가 아들의 사고이후에야 사회를 제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산안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졌지만 작년 대비 올해 더 많은 죽음이 통계에 나와 있습니다. 수많은 어이없는 죽음이 마치 전쟁터 같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아들 같은 다른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 기업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 가족들도 저희같이 삶이 망가지고 있어 가슴이 아픕니다. 왜 이렇게까지 우리 사회가 망가지게 되었을까요? 왜 우리 사회는 이런 죽음을 막지 못하고 있을까요? 그동안 유족들이 그렇게나 많이 발생했음에도 왜 안 싸웠을까요? 왜 법정에서는 죽음의 진실과 책임을 가려주지 못했을까요? 다른 산재노동자들의 재판에서 제대로 판결이 되었더라면, 내 자식을 잃는 아픔은 겪지 않았을 텐데 하는 원망이 큽니다. 


그렇게 위험하게 일하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것도 원하청이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재판장님. 이 재판을 통해 아들의 죽음의 진실이 확인되길 원합니다. 정의로운 판단으로 아들의 죽음에 책임 있는 자들이 그에 마땅한 처벌로 책임을 지길 원합니다.  


이 재판의 결과가 아들의 죽음에만 그치지 않고 다른 노동자들의 목숨도 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죽어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고 빠져나가는 일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도록, 엄중처벌해주시기 바랍니다. 용균이가 평안히 잠들 수 있도록, 아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시기 바랍니다. <끝>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2421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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