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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식

1월 책읽기 모임 - 재벌의 세제혜택 / 해외 재벌개혁 사례

by 더불어삶 2017. 1. 24.

더불어삶의 2017년 첫 책읽기 모임 진행했습니다. 사전 공지한 대로, 이번엔 재벌에 대한 세제 혜택과 해외의 경제력집중 해소(재벌개혁)을 다룬 논문 2편을 함께 발제하며 공부했습니다. 


자료 1) 강병구, <재벌의 세제혜택과 개혁 과제>, 《사회경제평론》 제44호, 2014.

자료 2) 홍명수, <경제력집중 해소에 관한 각국 사례의 검토> (《재벌의 경제력집중 규제》(홍명수, 경인문화사, 2006)의 제3장에 해당하는 부분)


 

 

첫번째 논문은 더불어삶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인 조세정의와 관련된 것입니다. 1960년대 이후 개발연대를 거치면서 한국의 재벌 대기업은 금융 및 세제상의 특혜를 받아 성장했지만, 성장의 결실은 사회구성원에게 공정하게 배분되지 못했죠. 


얼마 전 이재명과 전원책의 법인세 실효세율 '설전'을 계기로 법인세가 이슈로 떠올랐던 적이 있는데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 재벌 대기업이 납부하는 세금은 소득 규모에 비해 낮은 것이 맞습니다. 강병구 교수님의 논문에 인용된 수치를 몇 개 보여드리겠습니다. 





<표1>에서 보듯이 한국의 법인세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추세적으로 낮아지고 있습니다. 1982년의 경우 법인세 최고세율은 38%였고, 지방세와 방위세를 합한 명목법인세 최고세율은 50.35%를 기록했습니다. 현재는 2014년과 동일하게 과세표준 2억원 이하에 대해서는 10%, 2억원 초과 200억원 이하에 대해서는 20%, 200억원 초과 금액에 대해서는 22%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표2>는 OECD 주요국의 명목법인세 최고세율과 실효법인세율을 보여줍니다. 2013년 기준으로 한국의 명목법인세 최고세율(지방세 포함)은 24.2%로 OECD 평균에 비해 약간 낮지만, 일본(37%)과 미국(39.1%)에 비해서는 크게 낮은 수준입니다. 2012년 기준으로 실효법인세율 역시 낮은 편이고, 고용주의 사회보장세 부담이 낮기 때문에 기업의 실질적인 총조세부담률은 이윤 대비 27.9%로 6번째로 낮은 수준입니다. 프랑스의 경우 총조세부담률이 64.7%나 되네요.


※ 총조세부담률: 기업들이 실제로 부담하는 전체 세금(법인세·보험료·준조세 포함)이 전체 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



다음은 실효법인세율입니다. <표4>를 보면 매출액 기준 상위10대 기업의 실효법인세율이 중소기업의 실효법인세율보다 낮은 수준입니다. 2012년 매출액 상위10대 기업의 실효법인세율은 13.0%밖에 안 되는데, 대기업 평균은 17.3%이고 중소기업 평균은 13.3%입니다. 박근혜 정부 이전부터 추진된 대기업 위주 감세정책의 결과라 봐야겠지요. 


※ 실효법인세율: 세전 기업이윤 대비 법인세 납부액 비중



재벌 대기업의 이윤 대비 세부담 수준이 낮은 이유는 경제력집중이 심화되는 것과 함께 이들에게 각종 세제혜택이 집중되었기 때문입니다. 대기업들은 다양한 비과세 감면혜택을 받을 뿐만 아니라 최저한세율을 적용받지 않는 공제감면액의 규모가 큽니다. 특히 법인세 공제감면은 상위 대기업에 집중됩니다. <표7>에서 보듯이 2008~2012년의 기간에 전체 기업에게 제공된 40조 718억원의 공제감면액 중 상위10대와 100대 기업이 각각 23.6%와 43.2%를 차지했습니다. 이처럼 재벌 대기업에게 세제혜택이 집중되고 있는데도 증대된 여유자금은 투자 확대로 이어지지 않고 재벌의 곳간에 쌓이고만 있습니다. 


참고) <‘세금 할인혜택’도 부익부…삼성 세부담, 중소기업 수준> (14/02/10 한겨레) 


그밖에 논문에서는 재벌의 변칙적인 상속 및 증여행위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아래의 PPT 슬라이드를 참조하세요. 물론 논문을 직접 찾아보시거나, 더불어삶 정기모임에 합류하면 더욱 좋습니다^^




다음 주제는 해외의 재벌개혁(경제력집중 해소) 사례입니다. 홍명수님의 《재벌의 경제력집중 규제》라는 책에서 일부를 발췌하여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먼저 재벌에 의한 경제력집중을 규제하려면 일반집중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일반집중은 특정한 기업 내지 기업집단이 산업이나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나타나며, 이에 대한 규제는 이렇나 비중의 감소를 주된 내용으로 합니다. 


그러나 시장에 의한 자율적 조정메커니즘에 기초하는 경제질서에서 '정부 개입에 의한 인위적인 분산정책'은 극히 예외적인 조치입니다. 그래서 사례도 제한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독일, 일본, 미국의 3가지 사례를 살펴봤습니다. 먼저 미국 독점금지법의 전개과정에서 시행된 스탠더드오일(Standard Oil) 그룹의 해체를 살펴보고, 이어서 독일의 콘쩨른 해체와 일본의 재벌 해체를 다뤘습니다.



록펠러가 설립한 석유회사 스탠더드오일은 뇌물, 정경유착, 뒷거래 등 돈벌이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석유산업의 동맥인 철도를 장악하고, 경쟁사들을 파산시켜 헐값에 사들이는 방식으로 미국 전체 석유산업의 90%를 점유하는 거대한 재벌이 됐습니다. 


19세기 후반 산업의 독점화 경향이 심화하자 미국은 1890년 셔먼(Sherman)법을 제정합니다. 셔먼법은 독점과 독점화에 대응한 최초의 성문화된 규범입니다. 


Sherman법 제1조 “주간 또는 외국과의 거래 내지 통상을 제한하는 모든 계약(contract), 트러스트나 기타 형식에 의한 결합(combination) 또는 공모(conspiracy)는 위법이다.”

Sherman법 제2조 “주간 또는 외국과의 거래 내지 통상의 여하한 부분이라도 독점화하거나, 독점화를 기도하거나 혹은 독점화하기 위하여 타인과 결합이나 공모를 하는 자는 중죄를 범한 것이 된다.”


1906년 연방정부가 스탠더드오일을 셔먼법 위반으로 제소하고, 1911년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당시 지주회사 체제였던 스탠더드오일그룹은 해체됩니다. 연방대법원은 지주회사 형성 과정에서 상호 취득한 주식회사-자회사 주식을 원주주에게 이전하라고 명령하고, 향후 유사한 결합의 재형성을 금지했습니다. 


스탠더드오일 해체 이후 석유산업은 치열한 경쟁구조로 급속하게 재편됩니다. 이후 미국 석유산업은 경쟁을 통해 성장하면서 오히려 국제경쟁력이 강화되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나중에 20세기에 가서는 재결합 과정이 계속되면서 석유산업의 구조가 과점으로 다시 바뀝니다. 




다음 사례는 독일의 콘쩨른(원저자의 표기를 따라 '콘쩨른'으로 씁니다) 해체입니다. 


콘쩨른이란 “독립적인 사업자가 계열화(Eingliederung) 내지는 합병(Fusion) 등에 의하여 경제적 단일체에 이르게 되는 결합”을 의미합니다. 종속 콘쩨른과 동등 콘쩨른 등 종류가 많지만 핵심은 “단일한 지도 아래서 영업을 수행한다는 점"이라고 합니다. 


종전 이후 독일에서는 연합군 점령정책의 일환으로 콘쩨른 해체가 추진됩니다. 독일의 중앙집권체제를 해소한다는 포츠담선언 내용에 따라 1947년 ‘독일 경제력의 과도한 집중의 억제 및 금지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시장경제와 사회적 형평성 원칙을 결합하는 데 대한 독일 내부의 논의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논의의 결과 1957-1958년 경쟁제한방지법(GWB)이 제정됩니다.  그리하여 독일의 콘쩨른 문제 해결은 '해체'와 '분할'에 의해 해당 시장에서 경쟁질서를 확립하는 것으로 기본방향이 정립되었습니다.


전후 콘쩨른의 해체는 화학, 석탄·철강, 금융, 영화산업의 4개 분야에서 주로 진행되었습니다. 해체 작업은 전례 없이 특별법에 근거하여 이뤄졌는데, 주요 내용은 기업 소유구조의 재편과 콘쩨른 사업자간의 내부거래 과세 등입니다. 석탄·철강 산업의 경우 기업의 사회화를 요구하는 노동과의 타협으로 공동결정제도를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독일 콘쩨른 해체의 특징은 일부 산업에 국한되며 주주 등 이해관계자와의 협상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입니다. 각 산업별로 특수한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콘쩨른 해체는 다분히 제한적이었고, 이후에도 콘쩨른은 산업 전반에 걸쳐 사업자의 중요한 조직형태로서 기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종전 이전의 콘쩨른이 해당 산업을 지배하고 통제적인 방식으로 기능하던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봅니다. 




마지막 사례로 일본 자이바츠(財閥)의 해체에 관해 알아봤습니다. 

일본에서는 에도 막부 시대부터 형성된 가족 중심의 상업자본이 발전해 1900년대 지주회사로 발전(三井 미쓰이 등)했습니다. 재벌은 중공업 부문을 포함해 사업 부문을 확대하기 위해 운영체계를 정비했고, 1920년대에 이르면 산업의 대부분을 지배하게 됩니다. 쉽게 말하면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일본의 재벌은 지주회사 체제로 결합된 다수의 기업이 특정 가문에 의해통제되는 구조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미국과 독일에서의 집중이 개별 산업을 중심으로 이뤄진 반면 일본의 재벌은 일반집중적인 성격이 두드러집니다. 



일본의 경우에도 재벌의 해체는 2차 세계대전 후 연합국 점령정책에 의한 특별조치로서 이뤄집니다. "군국주의적 요소를 제거하고 일본을 정치적 · 경제적으로 민주적인 국가로 전환”한다는 미군 점령정책의 초기 목표에 따라 1946년 지주회사정리위원회가 설립됩니다. 

미군정이 일본에서 실시한 재벌 해체의 내용은 크게 인적 청산과 구조적 청산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인적 청산의 경우 10개 가문의 56인에 대해 강력한 조치를 단행하고 엄청난 재산세를 징수합니다. 동족은 재벌 내 모든 기업의 경영에서 배제됩니다. 구조적 청산의 경우 지주회사 28개사를 완전히 해체·분할하고 지주회사가 보유하던 유가증권은 위원회에 양도합니다. 주식보유의 제한과 분산 조치도 단행됩니다. 

하지만 국제적 냉전질서가 형성되면서 미국의 대일본정책의 목표 역시 초기와 달라지게 됩니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자국의 패권 유지를 위해 일본을 부활시키려 했기 때문에, 일본 경제의 성장을 우선시하면서 중장기적 관점의 재벌 개혁 정책은 후퇴시킵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지주회사 11개사만 해체되고, 이때 분할된 기업들도 1950-60년대 재결합에 성공합니다. 저자는 그래도 종전 이전의 수직적 지배구조가 해체되고 기업들의 수평적 결합 구조로 바뀐 것은 유의미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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