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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모음/외부자료

건설현장 불공정 하도급계약, 일제 강점기때 시작됐다는데… - <하도급 솔루션>

by 더불어삶 2019. 1. 30.

 더불어삶의 서재    하도급 솔루션

 

불공정과 갑을 관계로 점철된 한국 건설현장. 정부가 나서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 이런 악습은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전 대한전문건설협회 본부장, 국토교통부 및 전문건설공제조합 기술교육원 강사인 이서구 씨의 책 ‘하도급 솔루션’에 따르면 이 역사는 일제강점기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저자는 한반도에서 하도급 방식의 건설 노동자 공급이 등장한 시기를 일제 강점기로 설명하고 있다. 일제가 조선을 병참기지화하는 과정에서 숙련공과 건설기능공 등이 필요했고, 이런 인력을 보유 한 업자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하면서 근대적 도급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당시의 군국주의적 분위기와 함께 ‘상명하복 절대복종’ 식의 현장 문화가 생겼고, 이것이 해방 뒤까지 이어지면서 하도급 현장의 불공정 행위가 만연하기 시작했다. 1984년 하도급법(하도급거래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지만 2019년에도 현장의 불공정 행위는 여전하다.

 

 책에는 불공정한 하도급 대금 지급 현장을 약 30년간 현장에서 지켜본 이 씨의 경험과 지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당연한 소리지만 하도급 구조는 공사를 발주한 사람(발주자) - 원도급자 - 하도급 업체의 계약으로 이뤄진다. 연간 150만 명 규모의 건설업 일용직 노동자(외국인 포함) 중 100만 명이 5만6000여 개의 하도급 업체에 고용돼 있다. 문제는 사실상 갑을 관계에 있는 이들 관계에서 항상 하도급업자와 노동자들에게 피해가 전가됐다는 것. 건설업체의 영업이익률이 줄어들면 하도급자 비용을 깎거나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다. 법을 만들어놔도 지키는 사람보다 지키지 않는 원도급자가 많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원도급 회사의 30대 대리를 ‘할배’라고 부른다고 한다. 50, 60대의 하도급 사장들이 그렇게 부른다. 20대 검사에게 ‘영감님’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자본주의의 하청 구조는 이렇듯 갑을 문제를 야기하는 일이 많다. 추가 공사비가 나와도 발주자에게 이를 청구하는 일도 드물다. 원도급자도 발주자의 눈치를 본다. 그렇다고 안전을 외면하고 추가공사를 벌이지 않을 수가 있을까. 공정위가 지난해 발표했던 불공정 하도급 사례를 보면 허탈한 마음마저 든다. 한 대형 건설사는 하도급업체에 임원 자녀의 축의금, 외제차 상납 등 수억 원을 갈취했다는 내용으로 고발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출처: 참여연대 (이미지는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누가 봐도 잘못된 이 구조가 왜 고쳐지지 않을까. 저자는 하도급법의 미비함을 예로 든다. 법에 따르면 시공능력평가액이 30억 원 이하인 건설업 원도급자는 ‘규모가 작아 법적으로는 우월적 관계의 성립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도급법에 따른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한다. 그러나 원도급자가 하도급자를 사실상 ‘마음대로’ 선택하는 한국에서 이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우월적 지위’는 원도급자의 기업 규모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사업 수주를 빌미로 가해지는 수많은 불법과 압박 행위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가 정리한 하도급 업자들의 ‘상생 방안’은 이렇다. 저장한 하도급 금액을 지급할 것, 추가 및 재공사 대금을 정산지급하고 제때에 달라는 것. 뻔하고 당연한 요구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 지금 한국 건설 시장의 현실인 것이다.

 

 이에 비해 원도급자들의 횡포는 다양하고 기발하다. 경쟁을 통한 입찰 과정에서 입찰 금액을 공개하지 않는 방식으로 하도급업체들의 자발적인 실행금액 후려치기를 강요하는 ‘저가 유도’ 관행, ‘대금을 현금으로 줄 경우 6%를 차감한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몰래 숨겨놓는 식의 ‘부당한 특약 강요’, 공사비 대신 아파트나 상가, 콘도 등을 지급하는 ‘대물 지급’ 관행 등….

 

 2015년 국토부가 한 의원실에 제출한 ‘불법 하도급대금 지급실태 및 적발현황’을 보면 5년간 적발된 불법 하도급 적발 건 1만3807건 중 대금 지급 위반 사례가 2697건이나 됐다고 한다. 이는 하도급 업자들의 노동자에 대한 임금 체불로 이어진다. 대한전문건설업협회의 임금체불 원인조사 결과를 보면 하도급자가 임금체불을 하게 되는 원인 중 94%가 원도급자의 공사대금 미지급 때문이라고 한다.

 

출처: pixabay (이미지는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자는 국가의 보다 큰 개입을 요구한다. 하도급 대금 지급 기한을 단축하고, 어음제도를 폐지하는 등 원도급자와 하도급업자의 진짜 상생을 이뤄내야 한다는 것. 저자는 서문에서 “불합리한 하도급 현장의 일부 귀퉁이라도 세상에 알리고자 한 것”이라며 “하도급 문제는 비단 건설업계만의 일이 아닌 국민의 아픔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도 지적하고 있다.

 

 이 책은 한국 사회의 건설현장 하도급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것 외에도 65가지의 다양한 분쟁 사례를 수록하고 있다. 현장의 불공정함에 분개해 소주잔을 기울여 본 적이 있는 노동자, 학생은 물론, ‘‘제대로 된 건설 현장’을 만들고 싶은 발주자나 건설업계 관계자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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