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유학생이었던 최은주 씨는 박사과정 준비 중 OECD 한국 대표부에 채용되어 7년간 근무합니다. 그런데 사내 폭력을 당하고 이를 외교본부에 보고한 것이 빌미가 되어 2012년 해고당합니다. 여기서 반전은 그녀가 프랑스 '체류증'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프랑스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파리 노동재판소에 부당해고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민원과 항의 끝에 2016년 9월 한국 대표부의 법원 판결문 이행을 이끌어 냅니다. 이 책은 재판을 진행하고 마침내 합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에세이 형식으로 소개하는 한편으로, 그녀가 프랑스 체류 중에 느낀 점들을 마치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들려줍니다.
바로 그 비정규직 중 한 명이 프랑스 노동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서울에서 파견된 외교부의 정규직들, 즉 외교관들은 프랑스 노동법이 노동자와 고용주를 나란히 갑의 위치에 세워 준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노동 조건에 예민한 프랑스 행정원들에게 수시로 소송을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표부 관료들은 주재국의 노동법을 제대로 숙지하고 문제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매번 사건이 터질 때마다 당장 그 끄려 할 뿐 문제의 근원을 치료하는 것은 몹시 귀찮아 했다. 그러다 보니 때가 되면 비슷한 모양의 문제들이 주기적으로 싹을 틔우며 올라오곤 했다. (p.27)
도대체 프랑스 국민들은 왜 이런 갑작스러운 파업에 대하여, 또 그 잦은 빈도수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불만을 표출하지 않는 것일까? 더군다나 이 나라 사람들은 잘난 척에 불평 많기로 유명한 사람들이 아닌가?
(...) 프랑스 사람들은 '파업으로 인해 파생되는 불편함'보다는 '파업의 동기'에 초점을 맞춘다. 파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와 복지를 주장하기 위해 마지막 표현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지금 파업 중인 노동자들이 우리의 아버지나 자녀 또는 친구일 수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당장 어떤 각도로 그것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답은 달라진다. 파업으로 인해 파생되는 눈앞의 불편에 더 중점을 둘 것인지 아니면 파업 중인 노동자들이 부르짖는 권리와 복지에 더 중점을 둘 것인지는 대중이 결정할 일이다. 프랑스인들은 항상 후자를 선택한다. 따라서 이들은 갑작스런 열차 파업을 알리는 역무원을 향해 화를 내거나 삿대질을 하는 행동 따위는 하지 않는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이 땅의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내가 내 노동권을 주장하듯 그들도 그들의 노동권을 부르짖을 권리가 있다. 이런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이 땅의 노동자들 즉 국민들은 파업을 관대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p.48~49)
나의 합의퇴직 제안은 거절당했다. 김철희로부터 한국 대표부는 나와 고용 계약을 종료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일반적으로 프랑스 회사들은 이런 상황이 되면 직원의 합의퇴직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오히려 회사가 먼저 제안하기도 한다. 쌍방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며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한 상태로 계약을 종결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제도이므로 고용주와 고용인 모두에게 최선의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만일 회사와 고용인 사이의 갈등이 지속될 경우 문제 해결을 위해 법정까지 가야 하는데, 프랑스처럼 노동자를 단단하게 지켜주는 나라에서는 고용주가 승소하는 것이 쉽지 않다. 고용 원칙을 철저하게 지켜온 고용주라면 걱정 없지만 작은 틈이라도 보이는 경우 영락없이 패소하고 만다. 그러나 고용주 입장에서는 이런 악재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합의퇴직 제안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p.90)
프랑스인들은 재테크에 신경을 곤두세우지도 않는다. 이 나라 시스템이 요령을 피워서 쉽게 큰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경우 부동산 투자가 인기 종목인데 프랑스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월세와 같은 불로소득에는 세금이 가중되는 것은 물론이고 건물들이 모두 오래되었기 때문에 수시로 보수공사를 해야 하는데 인건비가 워낙 비싸서 그 유지비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운이 없어서 뻔뻔한 세입자라도 만나면 집주인은 월세는커녕 오히려 금전적인 피해까지 입는다. 프랑스에서는 세입자가 월세를 안내도 집주인 마음대로 쫓아낼 수 없다. 덜 가진 자를 더 보호하겠다는 프랑스 사회의 이념 때문이다. 이럴 땐 집주인이 세입자를 고소해서 법적 절차를 밟아 내보내야 하는데 그 과정이 1년씩 걸리기도 한다. (p.94)
그러나 일단 프랑스 노동자가 된 이상 고용주가 나에게 프랑스 노동법에 어긋나는 일을 강요한다거나 함부로 해고하는 등의 일은 저지를 수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그와 동시에 이제 나는 '프랑스 노동자'라는 자부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법이 노동자를 존중해 주고 그 권리를 지켜 줄 때, 노동자는 비로소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자각한다. 그럴 때 일할 맛이 나는 것이다. 나는 비록 외국 국적의 프랑스 노동자에 불과했지만 동등한 노동권으로 존중과 보호를 받았고, 그렇게 나를 인정해 주는 프랑스라는 국가에 대해 일종의 애국심 같은 것이 싹트기 시작했다. (p.100)
대한민국이 노동자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눈다면 프랑스는 이들을 CDI(종신직)와 CDD(계약직)로 나눈다. 말 그대로 전자는 일단 고용이 되면 노동자가 스스로 사직서를 제출할 때까지 고용이 보장되는 평생 계약인 셈이고 후자는 1년 또는 그 미만의 단위로 고용 기간을 제한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계약직과 비정규직이 서로 비슷한 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프랑스의 경우 이것은 말 그대로 계약 기간 상의 차이일 뿐이지 노동 조건이나 혜택 면의 부당함은 없다.
무엇보다도 프랑스에서는 계약직으로 고용된 노동자도 1년 6개월이 지나면 종신직으로 자동 전환이 된다. 이 자동 전환 제도 덕분에 한국에서처럼 한 직장에 오래 다니면서도 평생 계약직으로 남는 서글픈 일은 없다.
나는 이 자동 전환 시스템이 아주 마음에 든다. 이것은 마치 국가가 회사에게 '이 직원의 능력이 필요하다면 그에 걸맞는 대우로 고용하시오'라고 명령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매우 윤리적인 제도다. 회사가 필요로 하는 일꾼이라면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는 것이 정상이다. 물론 고용주가 갑이 되는 사회에서는 이것을 비생산적인 제도라고 불평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도 함께 갑이 되는 사회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제도다. (p.107~108)
프랑스 노동자에게 휴가란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인 반면 한국 노동문화에서는 그것을 옵션 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 그 실질적인 예로 '휴가 반납'이라는 표현을 들 수 있다. 이 말이 우리에게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 휴가를 반납한다는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응, 그렇구나' 정도의 아무렇지도 않은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프랑스 노동자들에게 이 말을 하면 마치 머리 위로 커다란 물음표 하나가 튕겨 오르는 듯한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라고 반문할 것이다. 이들에게는 '휴가 반납'이라는 설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받은 월급을 다시 반납하라는 것처럼 비상식적인 일이다. 만약 사장이 '회사가 바쁘니까 이번 휴가는 반납하도록 하세요'라고 권고한다면 그 말이 프랑스 노동자의 귀에는 '이번 월급은 회사에 반납하도록 하세요'처럼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리는 것이다. (p.209)
"앗따, 이놈의 나라는 무슨 피자를 시켜도 배달이 한 시간씩 걸려. 한국 같으면 전화만 하면 밤이든 낮이든 총알같이 갖다 주는데 말이야. 여기는 피자 배달도 무슨 예약을 해야 되고 기다려야 되고 밤에는 안 된다 그러고. 아니 배달도 느리면서 무슨 조건은 또 그리 많은지 차라리 내가 그 놈의 피자를 안 먹고 말지."
피자 때문에 심기가 불편해진 이정호에게 김영규가 허허 웃으며 한 마디 건넸다.
"그게 더 좋은 거 아니겠어요? 야밤에 피자 시켜 먹는 사람은 편하겠지만 그걸 배달하는 사람을 한 번 생각해 봐요. 시급 몇 천 원 벌려고 한밤에 오토바이 타고 날라야 하는 그 사람은 죽어나는 거지."
"시급이야 어떻든 그것도 다 돈 받고 하는 일 아니오. 편하게 시켜 먹는 사람이 있어야 배달원도 돈을 벌지. 우리가 피자 안 시켜 먹으면 그 사람들 다 실업자 돼요."
기획재정부의 유망주 이정호는 철저하게 물질적인 철학을 바탕으로 반박했다.
"그러니까 이 나라가 선진국이지요. 그렇게 절박하게 피자 배달을 해야 하는 사람이 적다는 거 아니겠어요? 우리나라는 생활이 절박한 사람이 많다는 거죠. 이제 불평 그만 하시고 그냥 좋은 나라에 살다 보니 이런 좋은 불편함도 있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얼마나 좋아요. 사람이 사느라고 고생을 많이 안 해도 된다는 게...."
김영규의 답변은 그 중심이 물질에서 사람으로 옮겨져 있었다. (p.248~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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