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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식/더불어삶이 만난 사람들

[인터뷰]화물연대 풀무원분회 윤종수 분회장(16.01.15) by 더불어삶

by 더불어삶 2016. 1. 22.

더불어삶이 풀무원 운수노동자들을 다시 찾았습니다!

 

 

지난 해 1219, 더불어삶은 풀무원 운수노동자 파업 및 고공농성 후원을 위한 김밥 만들기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이후 1230일 고공농성에 돌입하셨던 연제복, 유인종 두 분께서는 건강상의 문제로 인해 68일 만에 다시 땅을 밟게 되셨죠. 이후 더불어삶의 파릇파릇한 회원들 몇몇이 두 분의 건강상태 및 향후 계획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인터뷰는 지난 115일, 풀무원 운수노동자들이 불매 선전전을 진행 중인 성수동 이마트와 그 부근에서 이뤄졌습니다. 

 

 

 

 

풀무원 운수노동자들께서는 이마트 내부에서 카트를 끌며 풀무원 불매운동을 하고 계셨습니다. 저희는 안내를 받아 사전에 인터뷰하기로 이야기 된 윤종수 분회장님(화물연대 충북지부 풀무원분회장님)을 만났습니다. 이마트에서 혹시 제재를 가하지 않느냐고 여쭤보니, 회사에서는 무대응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이마트 노동자들이 좋게 봐주셔서 오히려 힘내라고 먹을 것도 나눠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풀무원 불매 운동 조끼를 입고 돌아다니다 보면 마트 손님들 역시 무슨 일인지 물어보기도 하고, 공감도 많이 해준다고 합니다. 본격적인 인터뷰를 위해서 윤종수 분회장님과 함께 조용한 찻집으로 장소를 옮겼습니다.

 

Q. 평소 일하실 때 하루 일과가 궁금합니다. 

A. 풀무원은 다른 곳의 두 배로 일을 시킵니다. 풀무원 공장에서 물품이 만들어지면 바로 전달되는 게 아니라 음성 물류 센터를 거쳐서 가거든요. 일을 두 번 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하루에 19시간 일하게 되는 거예요. 끝나고 잘 시간도 거의 없어요. 이런 것들을 조정하려고 회사에 요구를 많이 했었죠. 하루 운행 시간이나 거리를 정해달라고. 다른 곳도 알아봤어요. 다른 곳들은 하루에 300Km 정도 운행을 하더라고요. 300Km가 넘어가면 일당을 1.5배나 2배로 쳐줘요. 600킬로미터가 되면 하루를 쉬고요. 그런데 풀무원은 하루에 680Km를 뛰어요

 

 

제 하루 일과를 말씀드릴게요. 제가 집이 음성이에요. 음성 콩나물 공장에 오후 두시까지 출근을 해요. 거기서 물건을 싣고 센터를 옮겨요. 여기서 물건을 실어서 용인을 가서 물건 내리고 다시 양지로 가요. 이렇게 하면 오후 7시 정도 되요. 그리고 양지에서 경상남도 양산을 가요. 가서 물건을 다 하차하고 나면 약 새벽 1시나 2시 정도. 여기서 새벽 시간이니까 자야 됩니다. 자고 오전 11시까지 경상남도 의령에 있는 두부 공장에 가서 두부를 싣고 다시 음성으로 와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여기 모인 물품을 실어서 시화로 가서 거기 있는 두부 박스를 실어서 음성으로 다시 와서 센터에 하차를 해요. 그럼 새벽 2시나 3시 정도가 돼요. 그러고 집에 들어가면 새벽 4시가 되서 자요. 그러고 오후 2시에 다시 출근을 해요. 이게 이틀 일정이에요. 그러니까 실제로 집에 있는 시간이 이틀 동안 총 8시간 정도 되요. 양산에서는 휴게 공간도 없고 시간도 없어서 차에서 자요. 제 차에는 무시동 히터랑 가정용 에어컨을 달아놨어요. 이런 건 다 자비로 하는 거예요. 내가 이 일을 다 해야 474만원을 받는 거고 더 한다고 해서 더 주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지금 회사에서 `우리가 파업을 해서 용차를 써서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갔다. 그 비용이 얼마다. 너희가 물어내라.` 라고 말해요. 용차가 들어가면 우리 일을 다 못하니까 남은 일이 누적이 되는 거예요.

 

Q. 풀무원 자회사 엑소후레쉬에서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A. 실질적인 우리 월급은 엑소후레쉬에서 나오고, 그게 운수사를 거쳐서 우리한테 오는 건데 엑소후레쉬에서 얼마를 받는지는 우리는 모르는 거죠. 엑소후레쉬는 풀무원의 물류만 담당하는 물류 자회사에요. 엑소후레쉬는 실제로 돈이 오가는 곳이 아니에요. 그냥 수치상으로만 왔다 갔다 해요. 실제로 돈은 풀무원에서 나오는 거죠. 엑소후레쉬에서는 중간에서 돈 계산만 하는 거라서 일을 편하게 해줄 수가 없어요. 이 사람들도 성과가 있어야 승진을 하잖아요. 차를 100대를 쓰건 150대를 쓰건 수치만 맞추면 돼요. 만약에 콩나물을 팔면 풀무원으로 돈이 다 들어가는데 그래서 엑소후레쉬에는 운송비, 주유비 등만 주면 되는 거예요. 이런 비용들을 엑소후레쉬는 절감을 해야 하는 거죠. 20년 동안 월급이 안 올랐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아요? 20년 동안 474만원 그대로예요. 물가는 엄청 올랐는데. 차량유지비, 수리비, 지입료 등 다 포함된 가격입니다. 근데 회사에서는 20년 동안 월급이 안 올랐다는 게 근거 없는 얘기래요. 그래서 내가 회사에 자료가 있지 않냐고 하니까 자료를 보여주지 않아요.

 

Q. 작년 11월에 파업에 돌입한 경위를 설명해주세요. 

A. 운전하는 사람들은 다른 일을 거의 못해요. 힘든 소리도 잘 못하고요. 근데 저는 운전을 안 하고 다른 일을 하다가 여기 들어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상황이 너무 황당한 거예요. 국세청에서 환급이 나온 것도 쟤네들이 다 뺏어 가려고 해서 제가 세무서에 가서 물어봤어요. 그러니까 내 돈이 맞대요. 그래서 기사들한테 이거 우리 돈이니까 주지 말자고 했어요. 근데 다 운전하던 사람들이니까 그냥 어쩔 수 없다고 다 줘버린 거예요. 다들 주니까 저도 나중에는 어쩔 수 없이 줬는데, 일이 너무 힘든 거예요. 잠 자는 시간만 빼고 계속 일만 하니까 인간관계가 다 끊어지더라고요

 

 

제가 11톤 차량을 사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서 얼마 안 있다가 트레일러 7대가 들어오면서 1110대를 감차하겠다고, 연식 높은 순으로 감차 명단을 만들더라고요. 그런데 7년 밖에 안 된 차가 걸려요제 차가 부가세 10퍼센트 해서 2억이에요. 월급 474만원을 5년 동안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그 돈이 생겨요. 내가 할부로 매달 192만원을 내요. 근데 사람들이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예요. 이때 사람들이 화물연대 얘기를 하더라고요. 예전에도 한 번 일이 있었어요. 예전에 8톤 차가 있었는데 5톤 축차로 바꾸라고 풀무원측에서 그랬던 거예요. 차 바꾸는게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닌데, 사람들이 싫은 소리 못하고 바꿨어요. 이때도 화물연대 얘기가 나왔어요

 

게다가 음성물류센터가 5년 전에 600억을 들여서 지어졌는데, 이거 지으면서 비용절감을 해야 한다고 난리를 치는 거예요. 비용을 줄일 건 우리밖에 없겠죠. 우리 인원 줄이고 근무 강도 높이고. 근데 우리는 1년에 한번 씩 운수사랑 위탁계약서를 써요. 별 일 없으면 매년 연장하는데 사측에서 계약을 안 하겠다고 할까봐 아무 말 안 하고 그냥 일을 했던 거예요. 그래서 대화를 해서 풀어야겠다고 기사들이 얘기를 했어요. 근데 제품을 배송하는 것도 힘든데 요즘은 상하차까지 시키는 거예요. 인건비를 줄이려고 상하차 인원을 줄여서, 우리보고 상하차를 하라는 거죠. 우리의 산재사고는 운행하다 일어나는 게 아녜요. 상하차 하다가 많이들 다치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회사랑 대화를 하기 시작했죠. 힘들다고 말했어요. 처음에는 3개월에 한번씩 간담회를 열자고 했어요. 사측에서 자신만만하게 좋다, 하자고 하더라고요. 자료를 만들어서 타회사는 월급이 얼마다, 우리는 적으니까 바꾸자고 했죠. 만날 때마다 "우리 이렇게 일하다가는 사람 죽는다"고 그랬죠. 실제로 18천만원 주고 차를 산 사람이 졸다가 사고가 나서 폐차를 시켰어요. 운이 좋아서 목숨은 건졌어요. 그래서 어쩌다 제가 총무를 하다가 회장이 되고 나서 간담회를 하는데 담당자가 이제 간담회는 없다고 하는 거예요. 일방적으로. 운수사랑 얘기하라고 하더라고요

 

Q. 그 이후 파업에 들어가게 된 것인가요?

A. 화물연대 가입을 생각했지요. 알고 보니 집 근처더라고요. 그래서 가입하려고 찾아가 보니깐, 조금 더 생각 해 보고 다시 오라더라고요. 그 순간부터 가입할 때까지 1년을 생각했어요. 그리고 일단 간담회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건 답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1년 있다가 다시 화물연대 찾아가서 가입했어요. 저는 월급 올려 달라고도 안 했어요. "이렇게 힘들게 일하다가 죽을 거냐?" 하니깐 한 명씩 한 명씩 가입을 하는 거예요. 1년 단위의 계약직이다 보니 가입을 잘 못하더라고요. 그리고 위탁계약서 내용에 외부단체, 즉 화물연대에 가입하면 계약 해지하는 내용이 있어요. 그런데도 워낙 힘드니까 30명이 가입을 했어요. 그래서 201411월에 첫 번째 파업을 했어요. 화물연대 가입을 이유로 계약해지 통보를 했거든요

 

 

11월에는 요구사항이 많이 없어서 3일 만에 교섭이 타결되었어요. 첫 번째는 한 달에 한 번씩 간담회를 열어서 얘기로 풀자. 두 번째가 위탁계약서 바꾸자(노조가입 해고조항). 세 번째가 부가세 빼앗아간 것 다시 돌려 달라. 3가지였어요. 그러고 보니깐 회사에서 못 들어줄 게 없잖아요. 돈 나갈 것도 없고. 바로 타결되었죠. 회사에서 원하는 건 딱 한 가지였어요. 풀무원 분회를 엑소후레쉬 분회로 바꾸자는 것. 그래서 좋다 그랬어요. 이름은 별 상관 없으니까요. 이제 대화로 풀어나가면 되는 거잖아요. 근데 풀무원은 우리와 대화해서 풀기가 싫은 거예요. 나름 계산을 해 봤겠죠. 노조 들어와서 어쩌고 하면 얼마 손해가 난다... 그리고 풀무원이 어떤 곳이냐면, 2004년에 생겼던 두부공장 노조도 창조컨설팅한테 조언받아서 다 무너뜨린 곳이에요. 그러니까 우리 요구는 들어주기 싫고, 그냥 노조 없애고 싶은 거죠. 11월에는 계획이 안 서 있었을 뿐이죠. (노조파괴 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고, 그 기간이 필요했던 거예요.

 

Q. 11월 파업 후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A. 음성에만 우리 수송차가 한 110대 되거든요. 노조 가입 못 했던게 위탁계약서 때문이잖아요? 이거 싹 바꿔서 다시 계약하니깐, 다른 사람들도 다 가입했어요. 105명까지 늘었어요. 그런데 회사는 아무것도 해 줄 생각이 없어요. 노조 깰 생각밖에 없는 거예요. 11일에는 노선 줄여주겠다고 약속했거든요. 111일이 되도 안 바꿔 주는 거예요. 그래서 117일에 2차 파업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아무것도 들어준 게 없으니깐... 이때도 왜 하루 만에 끝났냐면, 우리가 전부 다 노조원이니깐 차들을 한 곳에 모으자고 1월 13일에 이야기했어요. 17일에 차가 다 서버리니깐 사측이 대응을 못 합니다. 화물차를 어디서 한 번에 그렇게 많이 구하겠어요? 그래서 그냥 바로 사인한 거예요. 우리도 회사가 있어야 먹고 사니까 이 쯤에서 양보했어요. 그런데 그걸 회사에서 모르더라고요.

 

Q. 회사가 계속 정신을 못 차렸군요노조 탄압은 어떤 식으로 이뤄졌습니까?

A. 회사가 그때부터 준비를 철저하게 했어요. 노조 깨는 창조 컨설팅은 어떻게 노조를 깨는지 정말 잘 아는 곳이에요. 일단 조합원을 분열시켜야 해요. 근데 운수노동자들은 전국에 흩어져 있어서 깨기도 쉬워요. 그리고 회사에 우호적인 기사들 열 사람을 엑소후레쉬 본부장, 부사장이 따로 불러서 회유했어요. 그 다음에 나온 게 엑소후레쉬 도색으로 바꾸기로 했잖아요? 근데 회사에서 백색 도색으로 가겠다고 선언을 한 거예요. 노조 깰 목적으로 한 거예요. 기사들도 왜 이러나 했어요. 제가 그래서 수송담당에게 가서 왜 백색도색으로 가냐고 물어봤어요. 그러니깐 회사 고유의 권한이고 경영권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도색 가지고 딱히 싸울 필요는 없잖아요? 그래서 알았다고 했어요. 그래서 열 대를 도색했죠. 그랬더니 기사들이 난리가 났어요. '왜 노조가 백색도장을 내버려뒀냐? 난 풀무원 것이 좋은데... 차 값 떨어진다...' 이런 얘기가 아까 그 열 사람한테서 나온 거예요. 여론 만드는 거죠.

 

Q. 언론 보도를 보니 백색도장이 차 값에 영향을 받는다는 내용이 있던데요?

A. 상관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물류센터 물량이 오버가 되면 항상 쓰는 용차들이 있어요. 그 차들이 백색이예요. 이 차들도 화물연대 가입을 했어요. 우리랑 일을 많이 하거든요. 노조 가입한 105대 중 10대가 이 차들이에요. 이 차들한테 회사가 일부러 1주일에 한 탕을 주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화물연대 탈퇴했다는 증명서를 가져와야만 일을 주겠다는 거예요. 용차들은 탈퇴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백색도장을 하라는 것은, 우리보고 언제든 잘릴 수 있다고 선언하는 거죠. 위탁계약서가 바뀌었어도 우린 여전히 1년짜리 계약이에요. 기사들은 그래서 이러다 용차가 되었다가 짤리면 어쩌지?’ 싶은 거예요

 

 

이 때 수송담당이 화물연대 로고만 제거하면 도색을 안 바꿀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는 거예요. 이 이야기를 아까 그 회사 측 10인이 퍼뜨린 거죠. 이러니 분란이 일어날 거 아녜요. 노조 때문에 차 값 떨어진다고... 그 와중에 회사가 도색유지서약서를 내놓고 이거 서명하면 도색 안 해도 된다고 하니깐, 그때 40명이 서명을 한 거예요. 이즈음에 그래서 용차 10대가 탈퇴하고, 끝까지 도색유지서약서에 서명 안 한 40명쯤이 남은 거예요. 이 문제를 어찌할까 총회를 열었어요. 결론은 도색유지서약서 써주고 다 같이 가자고 결정이 났어요. 그래서 도색유지서약서를 다 같이 써줬어요. 근데 이 먼저 서약서 쓴 40명이 도색유지서약서를 다 써줬는데도 다 단체로 탈퇴를 해버렸어요. 그리고 어용노조를 하나 만들려고 하는 거예요. 사측에서 이 사람들은 노선도 잘 주고, 우리한테는 117일 하루 파업한 걸 가지고 (운행 안 했다고) 80~120만원의 비용을 내라 그랬어요. 원래 한 달에 한 번씩 간담회는 계속하고 있었죠. 그런데 이제 40명 정도 남으니까 아무것도 안 들어주는 거예요.

 

Q. 우여곡절 끝에 94일 파업에 이른 거군요?

A. 그렇죠. 그리고 화물연대 스티커가 새로 나왔어요. 우리가 충북 강원지부에서 충북 지부로 바뀌면서 새로 나왔거든요. 그래서 우리 조합원들끼리 우리 새 로고가 나왔는데 붙일까 말까 논의해보니까 붙이자고 결론이 나거든요. 간담회에서도 얘기했어요. 차체는 우리 거니깐 여기에는 로고를 붙이겠다고. 그랬더니 로고가 풀무원이랑 안 어울린다는 거예요. 대화가 안 돼요. 이런 여러 가지 사정이 더해져서,201411월부터 계속 싸워온 거예요. 풀무원은 노조에 적대적인 기업이에요. 그래서 스티커도 못 붙이게 하는 겁니다. 우리는 노조 전임자도 없고, 사무실도 없잖아요. 스티커라도 붙여야 우리 노동조합이 있다고 하는 건데...

 

Q. 고공농성까지 하시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리고 고공농성 장소를 국회 근처로 하신 이유는요?

A. 우리는 대화로 풀고 싶었어요. 이제 40명 남았잖아요? 파업하면 용역 300명이 몰려와요. 연대해서 300명이 되면 경찰이 몰려와서 용역이랑 함께 600명이 돼요. 밀릴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600명을 모으면 경찰에서는 한 1,500명을 데리고 와요. 다른 곳으로 옮겨도 경찰 버스만 45대가 와요. 감당을 못 하죠. 50일째 되니, 가정들이 파탄 나기 시작했어요. 화물차 할부, 기름값, 월급도 못 받고... 일반 노조들은 파업하면 실업급여 3개월간 70% 나오잖아요. 우리는 개인사업자라 그런 것도 없고, 할부도 따로 나가는 거예요. 할부 못 내면 차 빼앗기니 무섭죠. 화물연대가 왜 거칠어지냐면, 한 달만 그렇게 되도 무리가 많이 가요. 그런데 50일이나 됐으니 얼마나 힘들어요? 대화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대화를 하려면 이목을 끌어야 될 거 아니에요? 그래서 거기까지 올라간 거죠. 풀무원이 인간존중 등의 이미지가 있으니깐... 사실 우린 빨리 끝날 줄 알았어요. 근데 회사는, 그때가 1024일이었는데옷 단단히 입고 올라가라그러더라고요. 그 이후로도 회사는 무대응으로 일관했어요. 얼마 전에는 회사가 노조원들한테 ‘1인당 손실난 거 3000만원씩 물어내고 복귀해라’ 고 하더라고요. 그 시점에 9명이 복귀했어요. 가정이 파탄이 나서... 어쩔 수가 없었어요.

원혜영 의원이 풀무원 창업주고, 지금 풀무원 사장이랑 절친한 사이에요. 고공농성을 국회에서 했던 건 그런 걸 염두에 뒀던 거죠. 근데 별로 안 움직이더라고요. 솔직히 중진의원이 가서 중재를 하면 거의 되는데... 제가 원혜영 의원을 두 번 만났거든요. 가서 문제 해결해달라고도 안 했거든요. 만나서 교섭만 성사시켜 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게 뭐 어려운 거라고... 안 되네요.

 

Q. 결국 고공농성 이후에도 사측의 태도는 변화가 없는 것이군요. 연대의 손길은 많이 있었습니까?

A. 회사의 태도는 전혀 변함이 없어요. ‘너희 3개월만 굶기면 다 손들고 들어온다. 말려 죽이겠다.’ 이거죠.

그래도 우리가 계속 선전전을 했잖아요? 화물연대 16개 지부에서 내일도 마트에서 집회를 해요. 그렇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게 좀 더 확산이 돼서 전국 큰 마트는 다 갔으면 좋겠어요. 화물연대가 이렇게 오래 싸운 것은 우리가 처음이에요. 우리가 얼마나 힘든지 다 아시는지 계속 연대해주고 있고, 투쟁기금도 들어오고 있어요. 생활비가 문제긴 한데... 빨리 해결 되어야죠.

 

Q. 고공농성 하셨던 두 분의 건강은 어떠한가요?

A. 연제복 동지는 장협착증이 생겨서 계속 설사를 하고, 담석도 생겼어요. 장협착증은 아기들의 경우 잘못하면 죽기도 하잖아요... 유인종 동지는 혈압이 210에서 안 떨어져서 링겔도 못 맞고 있다가 약물로 좀 나아지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 위에가요, 너무 좁아서 저 같은 사람은 못 올라간다고 그러더라고요. 진짜로 똑바로 몸을 펼 수가 없어요. 의사선생님도 이렇게 열악한 데는 처음이래요. 고공농성 많이 가보신 선생님이었는데... 그래서 안 좋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연제복 동지는 원래 지병이 있었고 유인종 동지는 선천적으로 심장이 안 좋은데 숨기고 본인들의 의지로 올라갔어요. 현재도 입원해있어요. 의지력 때문인지... 차도는 있는 것 같습니다.

 

 

Q. 그럼 일단 회사랑 교섭이 되는 것이 제일 중요할 것 같긴 하네요. 향후 계획은 어떻게 잡고 계신가요? 불매운동을 계속 하시나요?

A. 앞으로 불매운동은 더 확대할 것 같아요. 이제는 회사로 복귀 못하더라도 계속해야겠다는 심정입니다. 더 열심히 싸울 거예요. 화물연대에서는 풀무원분회 조합원 1명만 남아도 불매운동은 계속된다고 선언했고, 설사 1명도 없더라도 풀무원과 계속 싸울 것이라고 했어요. 될 때까지 해야죠.

 

Q. 투쟁하는 노동자로서 동시대의 시민,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A. 나도 사회가 이 정도인 줄을 몰랐습니다. 노동이라는 과목을 어렸을 때부터 잘 가르쳐줘야 바뀔 수 있을 것 같아요. T

V조선도 우리 인터뷰하러 왔는데 나중에 보니 폭도처럼 왜곡해서 보도했더군요. 이러니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를 거 아녜요? 공권력, 자본, 언론의 유착이 너무 강고해서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 같아요. 주변에 현실을 열심히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정권교체도 되어야 할 것 같고... 어린 세대랑 나이 많은 세대랑 같이 해야 바뀔 것 같습니다. 같이 함께 해주세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더불어삶 회원들과 풀무원 운수노동자들이 함께 결의를 다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싸워주시는 동안, 더불어삶은 이런 현실을 계속해서 알려나갈 것입니다. 끝까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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