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4. 건강해지려면 불평등과 싸워라

더불어삶의 생각 2014. 9. 19. 11:34

건강해지려면 불평등과 싸워라

- 서평: 리처드 윌킨슨의 <평등해야 건강하다>


건강을 결정짓는 요인은 크게 생물학적 요인과 사회적 요인으로 나뉜다. 흔히 ‘체질’이라고 이야기하는, 개인이 타고난 유전자나 면역력과 같은 생물학적 요인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소득, 교육정도, 직업적 지위와 같은 사회적 요인에 따라서 개개인의 건강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우리는 직관적 또는 경험적으로 저소득층에 비해 고소득층의 건강이 더 좋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실제로 선진국과 최빈국 사이에는 20년 이상의 평균수명 차이가 존재하며, 미국에서 부유한 백인 여성은 흑인빈민 여성에 비해 평균적으로 16년을 더 사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사회역학은 의료사회학의 한 분야로서 개인의 건강과 질병이 생물학적 요인보다 집단, 사회정책 등과 같은 사회적 요인에 의해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평등해야 건강하다>의 저자인 리처드 윌킨슨은 오랜 기간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을 연구한 학자로서, 평등과 건강의 관계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 왔다. 이 책에서 그는 불평등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해 사회적 환경이 나빠지면 개인의 건강도 나빠지는 메커니즘을 치밀하고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저자는 사회의 소득이나 재산수준이 절대적으로 높고 낮음이 건강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소득의 상대적 차이가 건강을 결정하는 핵심요인이라고 주장한다. 또 불평등 때문에 사회의 모든 계층이 고통을 받는다는 점을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보건의료비로 엄청난 돈을 쓰고 있지만 불평등이 심한 나라인 미국은 놀랍게도 평균 기대수명이 그리스보다 낮다. 그리스의 GDP 수준이 미국의 절반에 불과한데도 그렇다. 또 미국의 극빈지역(뉴욕의 할렘이나 시카고의 남부 등)에 사는 사람들의 사망률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방글라데시에 사는 사람들보다 높다. 나아가 과거 평등주의를 내세웠던 사회주의․공산주의 체제 하의 동유럽 국가들이 더 부유했던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 평균수명이 더 높았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이 저자로 하여금 ‘평등해야 건강하다’라고 주장하게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소득 불평등이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저자의 주장을 따라가보자.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면 사회적 지위격차가 확대되고, 권위주의적 인간관계가 증가하며, 공동체 생활에 대한 참여도가 저하된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이 스트레스, 공격성, 우울증, 수치심 등 심리적인 악화로 이어지며 결과적으로 폭력, 약물남용, 알코올의존, 건강악화를 유발하게 된다. 특히 스트레스나 심리 사회적 요인이야말로 불평등이 건강악화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설명요인이라 한다.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은 사람이라면 의사로부터 흡연이나 음주여부 및 주기적인 운동 실시 여부를 질문 받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굳이 의사가 설명해주지 않더라도 흡연, 음주, 운동 부족이 건강을 악화시킨다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다. 하지만 왜 가난한 사람들이 더 과음하고, 이들의 흡연율이 더 높으며, 여가가 있을 때도 이들은 운동하기 어려운지 생각해봐야 한다.

 

일반적으로 건강을 지키기 위한 결단이나 이러한 결단에 따른 실천은 만족스럽고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을 때 더 잘 발휘된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기분이 침체되어 술이나 담배처럼 위로를 주는 대체물이 필요할 때 음주, 금연의 결단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처한 사람들이 자신을 위로하거나 괴로운 일상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술을 많이 마시게 되고,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된다. 이와 같이 건강을 해치는 심리사회적 요인들은 대부분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다. 이 심리사회적 요인들은 현대인들이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큰 물질적 성공을 거두었으면서도 사회 전체적으로 삶의 질이 그에 상응하게 개선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스트레스가 건강에 미치는 효과는 선진국에서 더욱 확연하게 나타난다. 생활수준이 개선되면서 물질적 궁핍과 열악한 생활수준, 필수품 부족이 건강에 미치는 효과가 과거에 비해 약화된 대신, 물질적 요건에 가려져 있던 건강에 대한 스트레스 효과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된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평균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만성적으로 스트레스에 노출되고, 이러한 스트레스의 누적효과가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지나친 경쟁으로 인해 사회적 지위가 불안정해짐에 따라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과거에 비해 더 증가하였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저자는 전사회적으로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사람들 간의 수평적이고 호혜적인 연대 관계를 확장시키는 것이 건강 증진에 효과적이라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스웨덴의 소득재분배 사례, 인도와 스페인의 협동조합 사례, 기업의 종업원 지주제 같은 대안을 제시한다. 시장에서의 무한경쟁으로 감소된 사회적 연대와 구성원들 간의 신뢰는 호혜적 연대에 기반한 사회적 자본 축적으로 회복할 수 있으며, 호혜적 연대가 강화되면 빈민이나 사회적 약자들도 스트레스에 대응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다.

 

<평등해야 건강하다>는 사회학, 심리학, 의학, 생물학, 보건학 등 여러 학문 분야의 다양한 이론에 기반을 두고 불평등과 건강에 관한 다양한 사례를 보여준다. 가볍게 읽기엔 다소 부담스럽지만 사회 불평등이나 건강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하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제시하는 대안을 우리 현실에 바로 적용해도 될까? 유의할 점은 이 책이 기본적으로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의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전사회적으로 일정한 경제적, 물적 토대를 갖춘 상태에서 불평등으로 인한 사회심리적 요인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커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에는 사회의 물적 토대가 충분히 구축되기 이전인 1990년대 중반 이후, 특히 IMF 경제위기 이후부터 소득 불평등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따라서 상대적 불평등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건강을 악화시킨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며, 하루하루의 생계마저 위태로운 절대적 빈곤층이 많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06년에서 2009년 사이 소득 수준이 최저생계비 이하로 떨어졌던 절대 빈곤을 경험한 가구가 26.7%에 달한다. 또한 한국 사회는 한번 빈곤에 늪에 빠지면 빈곤에서 벗어나기가 힘든 곳이다. 한국의 평균 빈곤 탈출률은 OECD 국가 평균 39.2%보다 낮은 31.2%(2009년)이다. 즉 빈곤에 진입하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고 빈곤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있다. 노동자 3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이고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200여만 명에 달한다. 의료 이용에 있어서는 소득 상위 20%에서 의료비 부담이 2.36%에 불과하지만 하위 20%에서 의료비 부담률은 25%로 저소득층의 의료비 부담은 고소득층의 10배 이상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상황이 이러니 한국의 자살률은 매년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하며 출산율은 최저 수준이다. 따라서 현재의 한국 사회에는 절대적 빈곤에 의한 건강악화와 사회적 불평등에 의해 발생하는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악화 현상이 공존하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한국에서 소득불평등이 심화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건강불평등이 문제가 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다. 지금이라도 공공병원 폐쇄, 의료민영화 추진을 백지화하고 의료의 공공성을 더욱 확충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posted by 더불어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