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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모음/더불어삶 시선

생각 6. 무식국가 대한민국 - 한국 중위소득 연구결과를 보고

by 더불어삶 2014. 12. 26.

『지식국가론』이라는 책이 있다. 서울대 외교학과 최정운 교수의 미국 시카고대 박사학위논문을 한글로 번역 출간한 것인데, 부제는 ‘영국, 프랑스, 미국에서의 노동통계 발달의 정치적 의미’이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국가가 생산해낸 노동통계가 정치적 차원, 특히 계급갈등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다룬 책이다.

 

지식국가론이 국가가 생산해낸 통계가 정치적 차원에서 어떠한 영향력을 미치는가를 다루는 것이라면, 이와 반대로 국가가 통계를 제대로 생산하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왜곡시키는 경우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한국의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인데, 이러한 경우를 ‘무식국가’라 지칭하고자 한다(‘무식국가’라는 표현은 『지식국가론』 출간 이후 같은 학과의 하영선 교수가 최정운 교수에게 “다음에는 ‘무식국가론’을 내면 어떨까”하고 충고했다는 이야기에서 따왔다).

 

지난 12월 11일 각 언론사들은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의 연구 결과를 <“개인소득자 48%는 1년에 천만원 못 벌어”>(연합뉴스), <상위10%, 전체 소득의 절반 육박>(세계일보), <개인소득자 중위소득은 연 1074만원…“믿기지 않는 현실”>(한겨레) 등의 제목으로 일제히 보도하였다. 2010년 기준으로 한국인 3,122만명을 소득 순으로 한 줄로 세웠을 때 가운데에 있는 사람의 연 소득이 1,074만원이고, 1,000만원 미만의 소득자가 전체의 48.4%이며,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8.05%를 차지한다는 주장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였다.

 

김낙년 교수의 추산에 따르면 2010년 기준 개인소득자 3,122만명의 중위소득은 1,074만원이었고, 취업자 2,383만명만을 대상으로 하면 중위소득은 1,594만원이었다. 한편 민주당 홍종학 의원실이 국세청의 자료를 받아 수행한 분석에 따르면 국세청에 소득을 신고하고 세금을 납부한 종합소득자와 근로소득자의 중복자를 제외한 통합소득자 1,244만명의 2010년 중위소득은 2,450만원이었고, 과세미달자까지 포함한 1,838만명의 중위소득은 1,591만원이었다.

 

자 이제 국가기관인 통계청의 자료를 보자.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서 파악된 가구소득을 가구원수의 제곱근으로 나누어 산출한 균등화 개인소득의 중위소득은 2010년 기준 2,930만원이었다. 우리 앞에 1,074만원, 1,594만원, 2,450만원, 1,519만원, 그리고 통계청의 2,930만원까지 총 5개의 숫자가 놓여 있다. 과연 어떤 숫자를 믿어야 하는 것일까? (비교를 위해 모두 2010년 자료들만 제시하였다)

 

김낙년 교수가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낙성대경제연구소의 소장이라는 사실까지 염두에 두게 되면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또한 김낙년 교수의 주장대로 중위소득이 그렇게 낮다면 ‘중위소득의 50%’로 정의되는 빈곤의 기준선은 지금보다 훨씬 밑으로 내려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빈곤층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적어지게 되고 그에 따라 복지혜택의 대상도 크게 감소할 것이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우리가 한국의 소득분포에 대한 정확한 통계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국가가 정확한 통계를 제공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부정확한 통계도 문제지만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부정확한 통계를 가지고 이미 국가 정책이 입안되고 실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위소득의 경우, 중위소득 50% 미만을 빈곤층, 50~150%를 중산층, 150% 초과를 상류층으로 분류하는 등 사회·복지정책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렇듯 정확한 통계가 부재한 상황에서는 사회의 상황에 대한 파악도 어렵고 그에 따라 정책적 대안을 내놓기도 매우 어려워진다. 그것이 바로 ‘무식국가’인 것이다. 무식국가에서는 정확한 현실진단 자체가 어려우니 현실의 모순을 개혁하고자 하는 노력들 역시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결국 사회를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기득권층에게만 유리한 것이다.

 

무식국가 한국의 통계 오류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실업률이다. 현재 한국의 실업률은 2014년 10월 기준 3.2%인데, 이는 OECD 최하위 수준이며, 사실상 완전고용에 가까운 수치이다. 이러한 수치를 과연 누가 납득할 수 있을까?

 

그런데 우리나라 실업률 집계방식은 ILO 방식을 따르고 있으며 다른 나라들과 완전히 동일한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는 항변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한국은 ILO 방식을 대단히 기계적으로 적용하고 있을 뿐 실업자의 기준을 매우 엄격하게 규정하여 실업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한국의 방식은 미국, 일본의 방식과도 다른 것이다(자세한 것은 황수경(2011), “실업 및 잠재실업의 측정에 관한 연구”, KDI를 참고하라). 

 

지니계수도 문제다. 2011년 0.311, 2012년 0.307, 2013년 0.302로 2011년 이후 3년 동안 지니계수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즉 한국사회가 계속 평등해져 가고 있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0년 발표를 보면 2009년 한국의 지니계수는 0.314로 OECD 평균 수준이었으며 스페인(0.317) 이탈리아(0.337) 등 남유럽 국가뿐만 아니라 일본(0.329) 캐나다(0.324) 뉴질랜드(0.330) 영국(0.342) 등 선진국보다도 낮았다. 과연 한국이 이토록 평등한 나라일까?

 

그런데 통계청,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이 공동으로 2011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1년 한국의 지니계수는 0.357이다. 또한 홍종학 의원실에서 국세청 자료에 의한 통합소득을 통해 산출한 지니계수는 2011년 기준 0.448이었다. 2011년 지니계수에 있어서도 0.311, 0.357, 0.448 세 가지 숫자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어떤 숫자를 선택해야 할까?

 

그 외에도 주택통계, 산업통계, 농업통계, 노동통계(특히 비정규직 통계) 등등 한국의 통계오류는 거의 전 분야에 걸쳐서 발견된다. 이러한 통계오류가 통계청 등 관할 공무원의 무능함 때문은 아닐 것이다. 한 예를 들어보자. 작년 한겨레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2012년 대선 전에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른 새 지니계수를 발표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예상보다 지니계수가 불평등하게 나오자 청와대 경제수석실에서 통계청에 외압을 가해 결국 ‘새 지니계수’가 누락된 채 공표되었다고 한다. 불완전한 통계이지만 그나마도 정권에 불리하다 싶으면 공표마저도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다.

 

통계는 대단히 객관적인 외양을 갖추고 있지만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정치적 투쟁의 장이기도 하다. 통계는 그 객관적 외양으로 인해 높은 신뢰성을 갖고 있고, 단순하고 분명하게 전달되는 힘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인식에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러하기에 무식국가 대한민국은 ‘의도적으로’ 통계를 왜곡하고 부실하게 생산하고 있다.

 

자 이런 상황에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깨어 있는 시민들의 국가통계에 대한 철저한 감시가 필요할 것이다. 이와 함께 오직 진실만을 추구하고자 하는 많은 학자들의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결국 시민들이 움직여야 한다. 가만히 있어서는 무식국가 대한민국에게 세뇌를 당할 뿐이다.

 

 

추가

여기서는 『지식국가론』이라는 책의 타당성 자체에 대한 입장은 배제하기로 한다. 책에 대한 비판적 서평으로는 배영수(1992), “노동자운동 방향 변화의 요인검토에 소홀한 느낌”, 『이론』; 정영태(1992), “국가의 지식생산과 객관성 확보간에 순환논리가”, 『이론』을 참고할 수 있다.

 

 

 

더불어삶 2014.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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