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7. 복지과잉이면 국민이 나태해진다고?

더불어삶의 생각 2015. 2. 6. 03:11

복지과잉이면 국민이 나태해진다고?

 

 

욕 먹을 줄 몰랐을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복지과잉’이라는 발언으로 이목을 끌었다. 


문제의 발언이 있기 이틀 전으로 가보자. 김 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치인이 그러한 말로 국민을 속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주장으로 청와대를 정면 공격했다. 그것은 증세나 복지에 대한 입장을 떠나서 듣는 사람을 황당하게 만드는 발언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후보였을 때 김 대표는 선대본부장이었기 때문에 박 후보측의 핵심 공약인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해 함께 책임져야 할 입장이다. 그런데 사죄나 반성의 말 한 마디 없이 그 핵심 공약을 '거짓말'이라고 비난하고 자기만 빠져나가려 한다. 속칭 유체이탈 화법이다.

 

박근혜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가 복지공약은 철회하고 사실상의 서민증세, 꼼수증세를 시행해서 거센 반발을 자초하고 있다. 김 대표는 나름의 정치적 계산 끝에 ‘증세 없는 복지’와 선을 그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증세 없는 복지'의 무엇을 반대하는 것일까? 누구를 위한 반대일까? 그 의문은 이틀 만에 풀렸다. 2월 5일 경총 행사에 참석한 김 대표는 "복지과잉으로 가면 국민이 나태해진다", "복지수준의 향상은 국민의 도덕적 해이가 오지 않을 정도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행사가 끝난 뒤 기자들을 만나서는 "법인세 인상은 제일 마지막에 할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해석은 어렵지 않다. 복지과잉이 나쁘다는 말은 복지를 축소하자는 이야기다. 복지를 '나태' 등의 부정적인 단어와 자꾸 결부시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차기 대권을 노린다는 김 대표가 이렇게 시대에 역행하는 발언을 하니 '자살골'이라는 평도 나왔다. 

 

그런데 이번 자살골은 실수가 아닌 듯하다. 김 대표는 복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일관되게 드러내고 있다. 2014년 10월 30일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도 '과잉복지'라는 표현을 썼다. 당시 김 대표는 "저성장 과잉복지로 과거 위기를 겪었던 선진국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독일과 네덜란드의 사례를 들었다. 모두가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면서 1982년 네덜란드의 노사정이 체결한 바세나르 협약 이야기도 꺼냈는데, 희한하게도 바세나르 협약의 내용 가운데 ‘노동자의 임금인상 억제, 노동시장 유연화, 공무원 임금 삭감’만을 언급했다. 협약의 핵심적인 내용인 일자리 나누기, 기업의 노동시간 단축 등은 생략해 버렸다.


김 대표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추진한 '기업소득환류세제'에도 앞장서서 반대한 바 있다. 알다시피 기업소득환류세제란 기업의 당기소득 일정분에서 임금 증가분, 배당액, 투자를 제외한 사내유보금에 과세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실제로는 '투자'의 기준이 모호해서 대기업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다 마련해준 것이나 다름없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분석에 따르면 자산규모 1-50위 기업에는 과세 부담이 아예 발생하지 않고, 100위까지 중에도 과세 대상이 되는 기업은 3개에 불과하다. 그런데 김 대표는 이마저도 반대하면서 “기업이 오죽했으면 투자를 안 하겠는가"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요즘도 법인세 인상에 반대하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대충 알 만하다. 김 대표는 복지를 국민에게 공짜로 나눠주는 혜택쯤으로 여긴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복지를 필요로 하는 빈곤층은 나태하고 해이한 존재다. 국민이 복지란 걸 받으려면 돈을 내고(서민증세) 고통을 분담(임금 동결이나 삭감)해야 하지만, 기업에 대한 증세나 법인세 원상회복은 절대 안 된다. 이 같은 김 대표의 생각과 주장은 철두철미 친기업 반서민이라 새로울 것이 없다. 국민을 바라보는 시각도 구시대적이고 권위적이다.


진실을 말하자면 한국인은 과잉복지는 고사하고 복지란 걸 제대로 누려본 적도 없다. 지난해 한국의 GDP 대비 복지지출은 OECD 최하위였고 OECD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저부담 저복지'라는 말도 틀렸다. SBS 박원경 기자의 <취재파일>에 따르면 한국의 국민부담률은 25.9%로 OECD 평균인 34.1%보다 낮지만, 사회복지지출 비율은 9.1%로 OECD 평균 21.7%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한국 정부가 다른 OECD 국가들과 같은 비율로 사회복지에 지출했다면 한국의 사회복지지출 비율은 16.5%가 되어야 하는데 고작 9.1%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과 국민부담률이 비슷한 호주(26.5%)와 미국(24%)의 경우 사회복지지출 비율은 18.2%, 19.6%로 한국의 2배 수준이다. 즉 우리 국민들은 호주나 미국 국민과 비슷한 세금을 내고 복지 혜택은 절반만 누리고 있는 셈이다. 이런 통계가 없더라도 이 땅에서 노동하며 생활을 꾸려가는 사람들은 다 안다. 김무성 대표만 딴 나라에 사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나태하다느니, 도덕적 해이라느니 하는 표현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 생활고와 빚더미에 시달리는 한국의 노동자, 서민, 중산층들은 나태해질 새가 없다. 2013년 한국인의 연간 노동시간은 2163시간으로, 미국의 산업화 초기였던 1950년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한국인의 하루 평균 수면시간 역시 OECD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피곤한 삶을 살아가는 국민은 '사자방'으로 100조 이상을 탕진한 정부와 관료들, 아직 생산도 안 된 전투기 값으로 7조4000억원을 미국에 갖다 바치기로 약속한 국방부, 타워팰리스 거래로 억대 차익을 남기고 특강 6번에 6000만원을 받았다는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에게 분노한다. 이런 판에 집권여당의 대표가 어떻게 국민을 향해 '나태'를 운운할 수 있는가. 그릇된 인식을 근본부터 바로잡지 않는다면 김 대표는 입을 열 때마다 ‘자살골’을 넣게 될 것이다.


 

 

posted by 더불어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