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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모음/더불어삶 시선

생각 8. 사지로 내몰리는 사람들

by 더불어삶 2015. 2. 25.

사지로 내몰리는 사람들

작년 2월 26일은 송파 세모녀가 '죄송합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날이다. 지난 1년간 수많은 사람이 안타까움을 표명했고, 정치권에서는 기초생활법을 개정하면서 '세모녀법'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송파 세모녀와 유사한 사건은 지금도 끊이지 않는다. 네이버에서 '생계형 자살' 또는 '생활고 자살'로 검색하면 경제적인 문제로 스스로 삶의 끈을 놓아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잔뜩 나온다. 사실관계가 불명확한 것을 제외하고 그 일부를 나열(최근 사례부터 역순으로)해보겠다.

 

· 설 연휴 동안 서울 은평구의 한 단독주택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차모씨(40대)가 어머니에게 마지막 용돈 10만원을 보낸 뒤 번개탄으로 목숨을 끊었다. 차씨는 2010년부터 일용직 노동을 했는데 최근에는 일거리가 없어서 어려워했다고 한다.
· 설날 새벽, 경남 거제시의 한 도로 갓길에 세워진 차 안에서 5인 가족의 시신이 발견됐다. 이들은 은행과 카드사 등에 1억 5000만원 정도를 빚지고 있었다.
· 2월 6일 부산 동래구의 한 주차장에서 박모(50)씨가 차량 조수석에 착화탄을 피워놓고 숨진 채로 발견됐다. 박씨는 부채가 많아 힘들다는 말을 자주 했고, 3일 전 금전 문제로 다투다가 집을 나간 상태였다. 같은 날 오후에는 부산 용호동의 한 야산에서 이모(57)씨가 목에 나일론 끈을 맨 채 숨져 있었다. 이씨의 주머니 안에는 동거녀에게 남기는 "생활고로 미안했다"는 내용의 유서가 들어 있었다.
· 2월 4일에는 부산 사상구의 노상에 주차된 택시 안에서 60대 택시기사가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집 월세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 1월 29일 전남 여수에서도 기막힌 일이 있었다. 20대 부부와 세살배기 아들이 탄 승용차가 바다에 빠졌다. 여기서 남편만 혼자 살아남았는데 그도 결국 집으로 돌아가 연탄을 피워 자살했다. 그는 가족과 통화하면서 "돈이 힘들다"고 말했다고 한다.
· 1월 26일 대구 수성구의 한 식당에 주차된 승용차 안에서는 홀로 지적장애인 언니를 보살피며 살아온 20대 여성이 목숨을 끊었다. 그는 "할 만큼 했는데 지쳐서 그런다"는 유서를 남겼다.

 

위 사례들은 한국 사회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사태의 아주 작은 부분이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생계형 자살이 훨씬 많다고 봐야 한다. 또 '가정불화' 등 다른 이유로 자살했다고 여겨지는 경우라도 문제의 근원을 따지고 들면 결국 생계 문제가 있다. 자살자 통계에 잡히지 않지만 실제로는 심각한 사건도 많다. 이른바 '복지 사각지대'에서 쓸쓸하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독거노인이라든가, 생계 문제 때문에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하는 경우다. 몇 가지 예를 살펴보자.

 

· 2월 7일 서울 용산구의 한 다세대주택 단칸방에서 장모(79)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장씨는 기초생활수급자였고 1종 의료급여대상자였지만 한 달 지원금 가운데 절반 이상을 입원비로 내야 했다. 장씨의 통장 잔고는 27원이었다.
· 2월 2일 경남 진주시의 30대 가정주부가 생활고 등의 이유로 모친 산소 앞에서 목숨을 끊으려 했다. 다행히 그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발견됐다.
· 1월 26일 새벽에는 서울 방학동의 한 주차장에서 40대 남성이 번개탄으로 자살을 시도했다. 그는 책 배달업에 종사했는데 회사의 경영난 탓에 3개월치 월급을 받지 못했다.
· 1월 10일 경기도 연천군의 2차선 도로에 30대 여성이 생후 90일 딸을 안고 뛰어들었다. 그 여성은 남편이 일하는 공장 한켠에서 세살배기 아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는데, 넉 달 전부터 월급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송파 세모녀는 단순히 1년 전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도 제2, 제3의 송파 세모녀가 나오고 있다. 빈곤이나 장애로 인한 죽음만이 아니라 해고노동자들의 자살도 적지 않다. 이런 죽음은 사실상 자살이 아니다. 시대를 역행하는 정치와 부정의한 경제구조가 만들어낸 사회적 타살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송파 세모녀의 죽음을 부른 이른바 '복지 사각지대'의 문제는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작년 12월 기초생활보장법이 개정됐지만 대표적인 독소조항인 부양의무자와 추정소득 조항은 폐지되지 않았고, 개별급여라는 이름으로 보장 수준을 오히려 후퇴시키기도 했다. 세모녀가 수급신청을 했더라도 아무것도 받지 못할 법을 만든 것이다.

 

기초생활수급자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는 것도 한국 사회안전망의 기막힌 현실이다. 2014년의 경우 월소득이 90만원에도 못 미치는 빈곤층 숫자는 800여만 명이지만,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는 5년간 계속 줄어들어 135만 명에 그쳤다. 정부가 힘든 사람을 찾아내 생활과 자립을 도와주는 것보다 '부정수급자' 걸러내기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수급신청이 지나치게 까다롭고 그 과정에서 신청자와 그 가족이 인격적 모욕을 당하기 때문이다. 어렵게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더라도 탈출구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기초생활급여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지난 4년 반 동안 1200명이 넘는다. 사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어 절망하는 사람이 헤아릴 수 없다.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한 획기적인 대책이 나와도 모자랄 판인데 정부는 뒷짐이나 지고 있다.  


며칠 전 박근혜 대통령이 "불어터진 국수를 먹는 우리 경제가 불쌍하다"고 말했다. 부동산 3법이 생각보다 늦게 국회를 통과한 사실을 두고 한 말이란다. 이런 말 같지도 않은 말이 누구 머릿속에서 나왔는지 모르겠으나, 박 대통령이 사람이라면 부동산 경기부양책이 늦어진다고 안타까워할 게 아니라 밀린 월세 때문에 허덕이는 노동자와 빈곤층을 보며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민중을 사지로 내모는 서민증세, 공공요금 인상, 해고요건 완화, 비정규직 양산, 공공부문 민영화 등을 철회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에 이것을 기대하기 힘들다면? 비인간적인 현실을 바꾸기 위해 우리 모두가 더욱 분발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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