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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모음/더불어삶 시선

생각 9. 미친 것은 전월세가 아니다

by 더불어삶 2015. 4. 1.

미친 것은 전월세가 아니다
- 국민 주거권을 박탈하는 박근혜·최경환표 부동산정책

 

어김없이 이사철이 돌아왔지만 전월세난은 진정될 기미가 없다. 언론에서 자주 쓰는 ‘전월세 대란’이니 ‘미친 전셋값’이니 하는 표현이 식상할 지경이다. 전세가율(집값 대비 전셋값의 비율)은 전국 평균 70%를 넘겼고, 그나마도 빠르게 월세로 전환되고 있어 세입자들이 적당한 전셋집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전월세의 수직상승이 계속되자 사람들은 원래의 주거지에서 밀려나고 있다. 서울지역에 살던 세입자들이 일산, 시흥, 김포, 파주, 송도 등 외곽으로 나가서 집을 사기도 하고,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이 연립·다세대 주택을 매입하기도 한다. 주거비를 충당하기 위해 빚도 낸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빚 내서 집을 사도록 내몰리고 있다. 최근 들어 부동산시장이 살아나고 있다는 보도의 진실이 여기에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의 전세난, 월세난은 정부가 조장하고 만들어낸 것이다.


잠시 2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박근혜 정부가 출범 후 처음 내놓은 부동산대책인 4·1대책은 생애최초 주택구입자에 대한 각종 지원책, 취득세 한시 면제, 아파트 수직 증축 및 리모델링 확대였다. 몇 달 후인 8월 28일, 정부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폐지하고 분양가 상한제도 사실상 폐지해 버렸다. 작년에 나온 7·24 대책은 1%대 장기 저리의 수익공유형 모기지로, 전세 수요자들에게 빚을 내서 집 사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정책이었다. 8월부터는 대출과 관련된 LTV, DTI 규제를 완화했고, 이마저도 효과가 저조하자 10월 30일에는 월세자금 대출을 용이하게 해주는 ‘서민 주거비 부담 완화 대책’을 또 발표했다. 정부는 재개발·재건축 규제도 다 풀다시피 했다. 한편에서는 저금리와 대출 규제완화로 부동산시장을 떠받쳤다. 총 9차례에 걸친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서 제대로 된 세입자 대책은 찾아볼 수가 없다. 하나같이 이미 부동산을 보유한 사람들을 위한 대책이고, 매매 활성화로 투기를 조장하는 대책이고, 건설사들에게 특혜를 안겨주는 정책이었다. 이것이 비단 박근혜 정부만의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이미 전월세값이 오를 대로 오른 상황에서 시행된 묻지마 부동산 부양책은 무주택 서민의 고통을 몇 배로 키웠다. 그러는 동안 가계부채는 분기마다 최대치를 경신했다. 최근 한국의 가계부채 폭증에 대해서는 IMF와 맥킨지에서도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수치를 통해 살펴보면 더욱 실감이 난다. ‘부동산 114’의 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서울지역 아파트 전셋값이 매달 270만원씩 증가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월 76만원, 이명박 정부 때는 월 136만원이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셋값 증가 속도가 2배로 뛴 셈이다. 2015년 현재 서울지역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기존에 살던 집에 계속 살기 위해서는 매달 270만원을 지불해야 하는데, 이것은 가계가 감당할 수 있는 액수가 아니다(국가 통계에 따르면 2014년 3인가구 도시근로자 월평균소득은 474만 5천원 선이다). 그래서 가계는 부채에 의존해서 버티거나 점점 외곽으로 밀려나게 된다. 게다가 저금리 기조 속에서 집주인들은 아무런 견제 없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고, 금리의 3~4배에 이르는 월세를 세입자에게 부담시키며 폭리를 취하고 있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지점은 이것이 바로 정부의 의도, 최경환 경제팀의 의도라는 것이다. 세입자들을 빚더미에 앉게 해서라도 부동산 보유자, 즉 투기자들의 자산가치가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정책의 방향이다. 박근혜 정부의 정책 담당자들은 무주택 서민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며 고려하지도 않는다. 가계부채가 가파르게 늘어나 나라를 거덜 내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완화, 재건축 규제완화 등의 내용이 담긴 부동산 3법의 국회 통과가 늦었다고 성토하던 박근혜 대통령은 빈말로라도 전월세 세입자들의 처지를 걱정한 적이 없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역시 기회만 있으면 “전세의 월세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식의 발언으로 현재의 전월세난을 정당화한다. 지난 3월 12일에는 한은이 금리를 0.25%포인트 추가 인하했고, 신임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월세 대출금리 인하까지 언급하고 있다.

 

식의주는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에 해당한다. 만약 박근혜 정부가 이 점을 인식하고 국민의 46%나 되는 임차인, 무주택자, 세입자들의 고충을 조금이라도 해결하려 했다면 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간 시민사회나 정치권에서 논의된 공공임대주택 늘리기, 전월세 상한제, 세입자 권리 강화 등의 방책들도 고려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당장 고통을 겪는 세입자들을 위해 약간의 대출 지원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전세 수요를 주택 매매나 월세 거주로 돌려 전세난을 해소하겠다고 하지만, 현실에서 전세 세입자가 갑자기 집을 사거나 월세로 옮겨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더 비싼 월세를 부담하거나 무리해서 집을 사고 있다. 안전장치나 보호장치도 없이 부채의 늪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것은 정부가 불가역적인 어떤 흐름을 막지 못한 것과는 다르다. 무능이나 무대책의 결과도 아니다. 그냥 두면 집값이 떨어질 상황에서 정부가 부동산시장에 지속적으로 개입해서 전월세난을 조장했고, 그 여파로 무주택 세입자들이 몇 배의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전월세가 미친 게 아니라 부동산 정책을 주무르는 사람들이 이 사회의 부동산 투기세력과 이해를 철저히 같이하고 있어서 문제인 것이다.


덧붙이자면 전월세 상한제라든가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 등 최소한의 장치마저 현실화하지 못하고 시간만 흘러가고 있는 데는 자칭 야당인 새정치연합의 책임도 크다. 작년 12월 23일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은 ‘부동산 3법’을 연내 처리키로 합의하면서 계약갱신청구권 등 전·월세대책은 논의 자체를 미뤄버렸다. 언론에서는 이를 ‘빅딜’이라 불렀지만 사실상 여당의 의도가 그대로 관철된 합의안이었다. 세월호 특별법, 연말정산, 담뱃값 인상 등의 사안에서 자주 보던 풍경이기도 했다. 현재 여야 동수로 구성한 ‘국회서민주거복지특별위원회’에서 전·월세 전환율 인하 등을 논의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 특위에서 도출된 합의가 정책에 대한 강제성을 가지는 것도 아니라고 하니 깜깜한 노릇이다.

 

현재의 정부와 정치권이 무주택자를 위한 부동산정책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것은 최근 공개된 고위공직자 2302명의 재산변동신고 내역에서도 새삼 확인된다. 고위공직자들의 재산은 지난해에 비해 평균 2억원이 늘어났는데, 그들의 재테크 비결이 다름 아닌 주식과 부동산이었다. 국회로 시선을 돌려보면 재산 등록 의원 292명의 1인당 부동산 보유가액은 16억1218만원으로, 1년 전에 비해 7천만원 가까이 늘었다. 그들이 가만히 앉아서 7천만원씩 벌어들이는 동안 국민들은 원래 살던 집에서조차 쫓겨나오는 형편이니 이렇게 불공평할 수가 없다.

 

불공평하고 부정의한 구조 속에서 우리의 기본권이 날로 위태로워지는 듯하다. 개개인이 현명하게 판단해서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속지 말자고 외치는 것만으로는 문제 해결에 다가갈 수가 없다. 주거권이 사회 구성원 모두의 기본적인 권리임을 명백히 하고, 그 당연한 권리를 빼앗아간 것이 누구인지 책임을 따져 물어야 한다. 빼앗긴 권리를 찾아와야 함은 물론이다.

 

 

                                                                                                                                    2014년 7월 14일 한겨레 그림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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