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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모음/외부자료

부자는 어떻게 가난을 만드는가 - 0.01%를 위한 나라 미국

by 더불어삶 2017. 3. 27.

<부자는 어떻게 가난을 만드는가>는 한국과 미국 사회에 관한 저작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경북대학교 김광기 교수의 책입니다. 이 책에는 "0.01%를 위한 나라, 미국 경제로 보는 한국 중산층의 미래"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저자는 '미국은 잘사는 나라인가? 미국은 자유 평등의 나라인가?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인가? 아메리칸 드림은 진행형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미국의 중산층 몰락 현상을 조명합니다. 그리고 지금 미국의 현실을 보면서 우리의 미래를 치열하게 고민해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이 책의 내용 일부를 소개합니다.

 

 

 

 chapter 02 - 다운턴 애비 경제 

 

요새 미국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다운턴 애비 경제(Downton Abbey economy)'라는 말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 그것은 현재 미국 중산층의 생활상이 드라마 <다운턴 애비>에 나오는 하인들의 삶과 견주어볼 때 더 나을 것이 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 

 

<마켓워치>의 2014년 3월 2일자 기사 「다운턴 애비의 하인들이 당신보다 더 나은 열 가지 이유(10 ways 'Downton Abbey's servants had it better than you)」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하인들은 평생직장을 가지고 있다. 

둘째, 그들의 일은 절대로 외주화될 수 없다. 

셋째, 그들의 상사가 당신의 상사보다 나이스하다. 넷재, 그들은 출퇴근을 위해 시간과 돈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다섯째, 그들은 매일 '집밥'을 먹는다.

여섯째, 그들은 아름다운 환경에서 일한다.

일곱째, 그들은 숙박 시설을 공짜로 사용한다.

여덟째, 그들이 대한 손님이 당신이 대하는 고객보다 더 좋은 사람이다.

아홉째, 그들은 구질구질한 잔소리를 들을 필요가 없다.

열째, 그들은 복잡한 서류 작업을 할 필요가 없다. 

 

현재의 미국 중산층은 1세기 전 영국 하인들이 환경과 정확히 반대 상황에 놓여 빚의 노예로 살아가다 보니 그들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다. 천하의 미국 중산층을 1920년대 영국 귀족의 집에서 허드렛일이나 하던 하인들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놀랍고 민망스러운 일인데, 심지어 그들보다 못한 처지라니... (이상 pp.26~28)

 

 chapter 13 - 미국 정치권의 로비 중독증 

 

앞 장에서 언급했던 바니 프랭크 의원은 다음과 같은 분노 섞인 일성을 터뜨렸다. "미국 정치에서 이념? 이제 그런 것은 없다. 왜냐하면 정책을 만들고 정할 때 정치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념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그것으로 물질적 이득을 취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미국의 양당정치를 우리 식으로 보수와 진보 프레임으로 설명하려 드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나는 "꿈 깨시라!"고 말하고 싶다. (p.106)

 

2015년 현재 미국 대기업들이 워싱턴 D.C., 곧 국회에 로비로 지출하는 돈은 한 해에 약 26억 달러(약 2조 6000억원)다. 이는 상원과 하원을 다 합친 1년치 국회 예산 20억 달러를 훨씬 능가하는 실로 거대한 액수다.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조성된 액수보다 기업체가 '국회에 기름칠'을 하는 데 들어가는 돈이 더 많다는 말이다. 이 사실만 봐도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편에 설지 아니면 대기업 편에 설지가 분명해진다. (p.107)

 

1980년대 이전까지 정치권(정부와 국회)과 기업의 관계에서 "뭐 얻어먹을 게 없나" 하고 눈치를 보는 쪽은 어디까지나 기업이었다. 그러나 이후 로비의 진화와 함께 전세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다시 말해 칼자루를 완전히 기업 쪽이 쥐게 된 것이다. 이제 눈치를 보는 쪽은 정치권이며, 대기업이 정치권을 거느린다. 또 최근엔 이렇게 누가 봐도 뻔한 더러운 관계를 교묘히 위장하기 위해 월가의 금융회사를 비롯한 대기업이 이른바 싱크탱크라고 불리는 유명 연구소들도 돈으로 장악하고 있다. 그렇게 돈을 받은 연구소들이 마치 객관성을 담보한 것처럼 보이는 보고서를 작성해 의회에 제출하거나 공개하면, 정치권은 그 보고서를 바탕으로 기업에 유리한 입법을 한다. (pp.112~113)

 

 chapter 14 - 고삐 풀린 금권정치 

 

미국 대법원은 이미 2010년과 2014년 4월에, 후보의 외곽단체 격인 이른바 '슈퍼팩'에 개인이 기부할 수 있는 정치자금 한도를 아예 없애버렸다. 그러다 보니 2014년 중간선거에 정치자금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이때 쏟아져 들어온 돈의 규모가 약 6억 8900만 달러(약 8300억원)로, 2010년 중간선거 때보다 약 2배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USA투데이>는 그중 2억 달러는 고작 42명의 갑부가 낸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런데 그 액수는 단지 추정일 뿐이다. 슈퍼팩에 기탁된 정치자금의 규모와 지출 내역은 당국의 신고 대상이 아닌 그저 출처가 묘연한 '눈먼 돈(murky money)'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돈을 '검은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규제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런 돈을 정치인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면 그럴수록 정치에 있어 대부호들의 입김은 거세질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슈퍼팩을 통해 들어오는 돈은 말이 정치 후원금이지 뇌물이나 다름없다. 중간 수수료를 줘야 하는 로비스트들을 거칠 필요 없이 직접 뇌물을 줄 수 있는 이 슈퍼팩 제도는 한마디로 정치인들을 돈으로 쥐락펴락하겠다는 부자들의 야욕과 정치인들의 자발적 협잡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이런 정도의 일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것 아니냐고 딴죽을 거는 이들이 있을 것 같아 미리 말하겠다. 아무리 그래도 미국처럼 대놓고 정치자금 기부의 한계를 법으로 풀어버린 나라가 과연 어디 있느냐고 말이다. 

 

오바마도 2010년 무제한 기부를 허용한 법원을 향해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맹비난하며 그런 더러운 모금 행사에 절대로 참석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그러나 그런 말을 내뱉기가 무섭게 약속을 파기하고 부지런히 모금 행사에 참석해 돈을 그러모았다. 

 

<미국 역대 대통령 정치 모금 행사 참석 횟수>

 

버락 오바마   - 첫 번째 임기 321회 / 두 번째 임기 78회

조지 W. 부시  - 첫 번째 임기 173회 / 두 번째 임기 155회

빌 클린턴      - 첫 번째 임기 167회 / 두 번째 임기 471회

조지 H. W. 부시 - 첫 번째 임기 137회

로널드 레이건 첫 번째 임기 80회 / 두 번째 임기 100회

지미 카터      - 첫 번째 임기 85회  (이상 pp.119~121)

 

 chapter 26 - 노조 분쇄가 가져온 비극, 중산층 붕괴 

 

왜 노동조합 왜소화가 중산층 몰락과 관계가 있을까. 우리는 흔히 노조를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노직이라고만 생각한다. 그러나 노조라는 변수는 그 이상의 효과를 미친다. 바로 사회이동에 미치는 효과다. (사회학에서 계층 간 이동을 의미하는 사회이동이라는 말은 경제학에서는 '경제적 이동(economic mobility)'이라고 불리기에 이 장에서는 이 두 용어를 번갈아 쓰겠다.) 경제적 이동과 노조의 상관관계를 지속적으로 연구해온 학자들에 의하면, 부모 세대의 노조 가입률은 자녀 세대의 미래 소득과 정비례 관계에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노조 활성화는 현재의 노동자 세대뿐 아니라 후대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pp.230~231)

 

1960년대 이후 (미국의) 노조 가입률은 하강 국면을 타기 시작해서 전혀 역전의 기미 없이 날개 없는 추락을 이어나간다. 특히 1970년대에 들어서면 하강 국면에 가속이 붙기 시작하고 1980년대부터는 하강의 기울기가 거의 절벽에 가까울 정도로 급강하한다. 그 주된 이유는 13장에서 살펴보았듯이 1960년대까지는 비교적 점잖은 행보를 유지하던 정치권에 대한 대기업 로비가 1970년대 들어서면서 화력이 세졌기 때문이다. 정치권을 통한 대기업의 압박과 회유로 인해 근로자와 그들의 자발적 결사체인 노조는 직격탄을 맞았고, 그 결과 노조는 무력화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1980년대 들어서는 정치권이 로비에 중독되기에 이르렀고, 대기업은 그런 정치권은 물론 노동자와 국민의 숨통을 쥐락펴락하는 갑의 횡포를 부리게 되었다. (p.238)

 

미국의 경우 모든 관계 법령은 기업과 CEO들이 고용한 로비스트들의 요구대로 만들어졌다. 그리하여 규제 철폐라는 미명 아래 노조 왜소화 혹은 노조 와해라는 밥상이 차려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는 어떨가? 우리에겐 로비스트들이 없다. 그러면 누가 과연 노조를 무력화 혹은 왜소화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가? 바로 정부다. 우리나라에서는 미국 기업 로비스트들의 역할을 정부가 나서서 떠맡고 있는 것이다. 국민을 위한다는 정부가 왜 노동자와 노조를 무력하게 만들기 위해 그토록 애쓰며 공공의 적이 되고 있는 것일까? (pp.243~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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