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0일 경비노동자 최희석씨가 한 입주민의 폭행과 폭언을 비롯한 갑질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비단 경비노동자만이 아닙니다. 부당한 대우와 갑질에 상시적으로 시달리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지난 7월 4일, 더불어삶 회원들은 경비노동자 조정진씨가 자신의 경험담을 서술한 <임계장 이야기>를 함께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음은 책 발제를 맡아준 더불어삶 회원이 인상깊게 읽은 책 내용의 일부입니다.
들어가며
(이 책은 저자가 퇴직 후 네 곳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며 겪은 처우, 심경 등을 기록한 책입니다. 근무지별 근무 환경과 업무 처리 방식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나는 퇴직 후 얻은 일터에서 ‘임계장’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는 ‘임시 계약직 노인장’이라는 말의 준말이다. 임계장은 ‘고다자’라 불리기도 한다.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다고 해서 붙은 말이다.
-수십만에 달하는 노인들이 믿기지 않는 비참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지만, 노령 노동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은 전혀 없다. 정부, 입법자 그 누구도 고령 노동자의 이런 현실을 잘 알지 못하며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다.
첫 번째 일터 (2016. 6. 1~ 2016. 8. 20) - 버스회사
-“오늘의 일자리 합계 2만 개”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일자리가 많구나, 놀랍고 반가웠다. 의지만 있으면 일할 곳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구인 광고들은 거의가 단순 노무직이었다.
-배차원의 하루하루는 쉼 없이 구르는 버스 바퀴와도 같았다. 주어진 일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한 몸이 몇 사람이라도 되는 듯 움직여야 했다. 대합실 승객들을 향해 출발을 외치다가도, 버스가 떠나기 전 세 개 노선의 디지털시계를 조작하고, 승객들의 민원을 해결하고, 버스의 갑작스런 고장으로 차질이 생긴 노선의 배차를 실시간으로 변경하고, 탁송 물품을 접수해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다급하게 화물칸에 실어 줘야 한다. 하루 종일 숨이 가빴지만 나는 매순간 최선을 다했다. 나의 시간은 낮도 밤도 오롯이 회사의 것이었다.
-이 회사는 공무상 비용은 회사 비용으로 처리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개인 차량을 터미널 주차장에 주차시키면 그 주차비도 개인 돈으로 냈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회사의 보급이 전혀 없는 병사들과 같았다. 보급품이 필요하면 자신의 시급을 털어 넣어 조달해야 한다. 시급 일터는 다 그랬다.
-수치심에 떨면서도 직장에 목을 매야 하는 여성 노동자에게 지옥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이 들면 온화한 눈빛으로 살아가고 싶었는데 백발이 되어서도 핏발 선 눈으로 거친 생계를 이어가게 될 줄은 몰랐다. (...) 임계장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어느덧 나는 임계장을 내 삶의 2막에서 얻게 된 새로운 이름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버스 회사가 세 명이 할 업무를 내게 떠맡겼어도 두렵지 않았다. 오랫동안 공기업에 근무하면서 그렇게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만 열심히 한다고 일자리를 보존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걸핏하면 나한테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산재를 입은 직원을 치료해 주는 것은 그들이 알아야 하는 세상 물정이었다. 그들은 세상 물정이라는 말로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만들어 버렸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소송을 하든, 노동청에 진정을 하든 법에 호소한다면 이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긴다 해도 회사는 더 이상 다닐 수 없을 것이고 내가 얻는 이득도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자른 사람이 얼마나 될까.
두 번째 일터 (2016. 8. 28 ~ 2017. 8.27) - 아파트 경비원
-아파트 경비원은 민원의 총알받이이자 자치회와 관리소의 칼과 방패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자치회나 관리소는 주민이 싫어하는 말은 절대 하지 않고 곤란한 일은 다 경비에게 떠넘기거든요. 칼과 방패 역할은 경비원에게 넘기고 관리소장은 그저 입주민에게 ‘친절하고 선량한 관리인’의 이미지로 잘 보이려 하죠.
-사실 쓰레기 청소처럼 몸으로 때우는 일은 힘들지도 어렵지도 않았다. 그러나 슈퍼맨이 되지 않고서는 해낼 수 없는 수십 가지 비정형적 업무들이 시도 때도 없이 주어졌다.
-잡균과 오물이 묻은 손으로는 밥을 먹을 수 없고, 주민의 심부름도 할 수 없으며, 택배를 다룰 수도 없으니, 하루 평균 손을 씻는 횟수가 서른 번, 어떤 때는 쉰 번이 넘는 때도 있었다.
-나는 경비 업무 일지에 오늘의 근무를 요약해 적었다. “10시간 이상 아스팔트 분진과 악취 속에서 종일 서서 근무.” 관리소장은 다음날 일지를 결재하면서 내가 써 놓은 글귀 아래 “실제와 다름”이라고 빨간 사인펜으로 이의를 기록해 놓았다.
-그들이 보기에 경비원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경비원은 제 마음대로 켰다 껐다 할 수 있는 스위치 같았다.
-“당신, 그런 일 하라고 월급 주는 거 몰라?”
-“너도 공부 안 하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
-시급 노동자로 일하는 동안 가장 자주 들었던 말은 ‘자른다’였다. 수없이 들어서 익숙해질 만도 한데 들을 때마다 가시처럼 목에 걸린다.
-징계나 처벌의 사유란 명확성의 원칙을 지켜야 하는데도 애매모호하고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규정이 아주 많았다. 특히 제 35호의 “상호 근로관계상 신뢰성 및 성실성을 상실한 자” 같은 조항을 적용하게 되면 어느 누구도 징계를 피해 갈 수 없었다.
-노동을 제공한 사람이 그에 해당하는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 아파트다.
-경비원이 휴게 시간에 쉴 수 있으려면, 그 시간에 아파트도 함께 쉬어야 한다. 그러나 수천 명이 살고 있는 아파트는 24시간 잠시도 쉬지 않는다.
세 번째 일터 (2016년 9월 10일 – 2017년 8월 27일 - 고층 빌딩 경비원(생계 유지를 위해 아파트와 동시에 담당)
-... 비정규직을 합법적으로 쓸 수 있는데, 휴가 챙겨 줘야 하고 상여금 줘야 하고, 아프면 치료해 줘야 하고, 자르기도 어려운 정규직을 뽑아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한 눈은 감고 다른 눈은 뜬 채로 있을 수 있는, 백 개의 눈을 가진 아르고스처럼 자야 하는 것이 경비원의 숙명이다.
-그러나 식사 시간은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휴게 시간이고 임금을 주지 않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식사 시간은 근무시간의 일부가 아니다. 근무시간의 개념 정의가 관리소장의 말 한마디에 바뀌었고, 그에 대한 항변은 묵살되었다.
-사실 경비원에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 중 반가운 것은 빗방울뿐이다. 눈이며, 꽃잎이며, 낙엽이며, 하늘에서 쏟아지는 것들은 모두 다 쓰레기다.
-경비원은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으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도 했다. 문제 해결 과정에서 새로운 문제를 일으켜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결국 불법 주정차 단속은 철저히 하되 이로 인해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경비원 몫이라는 뜻이었다.
-열심히 일만 한다고 해서 일터를 유지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빌딩에서는 본부장 사모님을 몰라본 죄로 잘렸고, 아파트에서는 자치회장의 심기를 거슬려 잘렸다.
-내가 ‘인간적 품위’까지 바란 건 아니었다. ‘최소한의 생계비를 벌 수 있는 나라’를 원했을 뿐이다.
네 번째 일터(2017년 9월 13일 – 2018년 8월 31일)
-같은 건물에 굳이 용역 회사를 별도로 만들고 이를 통해 파견 근로자를 쓰는 것은 불법 파견에 가깝다.
-대기업답게 경비원의 업무 범위는 문서로 규정돼 있었다. 제1호에서 제9호까지 나열돼 있는 업무들은 경비직의 일상적인 규정들이다. 그러나 맨 마지막 10호를 보면, “터미널고속의 직원이 지정하는 기타의 제반 업무”라는 포괄적 규정이 하나 더 있다. 경비원에게 시킬 수 있는 업무를 ‘경비 관련 제반 업무’로 특정하지 않고, 막연히 ‘제반 업무’라고 포괄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경비원의 업무를 무한정 확장시킬 수 있는 독소 조항이었다.
이 규정에 따른다면 터미널고속의 직원은 경비에게 무슨 일을 시켜도 규정 위반이 아니었다. 이런 규정이 갑질을 부르고 경비원을 구속하는 족쇄가 됐다. 전에 일했던 아파트와 고층 빌딩은 근거도 없이 갑질을 했지만 대기업은 갑질을 정당화하는 규정까지 만들어 놓고 있었다.
-주치의는 나의 노동이 과로를 넘어 자해 행위였다며 나무랐다. 몸이 힘들면 자각 증상이 있게 마련이고 바로 대처를 해야 했는데 나는 그 반대로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난 나와 내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한 것뿐이었다. 자해가 아니라 살기 위한 자구 노력이라고 나는 생각했던 것이다.
-병상에서 나는 속절없이 잘리고 말았다.
나가며
-시급 노동자 임계장은 아파서는 안되고 일터에서 부상을 입어서도 안 된다. 이런 일터를 겪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일하다 다치면 당연히 산재로 생각하고 회사가 치료해 줄 줄 안다. 그러나 고용주의 생각은 다르다. 고용주에게 중요한 것은 치료가 아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단 한 가지. 이 사람에게 일을 시킬 수 있는가이다.
-아프다고 말하면 고용주는 즉시 관심을 보인다. 잘라야 할지 판단하기 위해서다. 질병 휴가란 시급의 일터에는 없는 말이다. 더 이상 일을 못 시키겠다고 판단되면 바로 권고사직을 시킨다. 이것이 불법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뼈마디와 근육이 튼튼한 사람을 새로 구한다. 일할 사람은 항상 널려 있다.
-전태일 시대의 가혹한 노동은 현 시대에 단기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이 시대의 비정규직이 없어지려면 또 얼마나 많은 전태일이 스스로를 태워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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