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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모음/더불어삶 시선

생각 10. 건강보험, 근본적인 개편이 필요하다

by 더불어삶 2015. 4. 2.

건강보험, 근본적인 개편이 필요하다
- 국고지원 확대하고 건보료 형평성 높여야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는 기준을 개편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이 백지화되었다가, 악화된 여론에 의해 6일 만에 연내 재추진하기로 결정되었다. 백지화를 선언한 128일은 당초 정부안을 최종 발표하기로 예고한 바로 전날이었다. 건강보험안 개편안 추진 → 백지화 → 연내 재추진으로 오락가락했던 정부방침의 원인과 배경을 살펴보자.

 

 

한국에 의료보험 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77년이다. 도입 당시에는 500인 이상의 사업장을 대상으로 했지만 점차 사업장이 확대되었으며 1980년대부터는 지역의료보험이 도입되었다. 의료보험 제도는 지금까지도 직장과 지역으로 이원화된 부과방식을 유지하고 있는데 2014년 기준으로 약 5,014만 명이 직장 또는 지역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며 그 비율은 7:3정도다. 직장가입자는 근로소득의 5.99%(기업과 개인이 절반씩 부담)를 곱하여 보험료를 산정하며, 지역가입자는 종합소득(사업, 이자, 배당, 연금, 기타소득), 자동차, 재산으로 부담능력을 추정하여 보험료부과점수를 계산하여 보험료를 책정한다.

 

보험부과체계가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비판은 오랫동안 줄기차게 제기되어 왔다. 직장가입자는 근로소득을 대상으로 보험료를 부과하므로 직장가입자 중에서 기타소득이 있는 경우 7,200만 원을 초과하는 경우에만 보험료를 부과한다. 결과적으로 직장가입자는 기타소득에 대해서 적은 보험료를 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직장가입자의 경우는 지역가입자의 경우와 달리 피부양자 자격조건을 넓게 인정받고 있다. 직장가입자의 직계존비속, 배우자, 조부모, 형제, 자매 중에서 재산세 과세표준액 합이 9억 원 미만이며 근로소득, 연금소득, 금융소득이 각각 4천만 원 이하의 소득요건을 갖추면 피부양자로 인정받는다. 근로소득, 연금소득, 금융소득의 합이 12천만 원이 넘지 않으면 피부양자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고소득 퇴직자가 피부양자로 등록이 가능해진다. 

 

일례로 지난해 퇴임한 건강보험관리공단 이사장은 2천만원대의 연금소득과 5억 원 상당의 자산이 있지만, 부인의 직장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이 가능하므로 건보료를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 만약 피부양자로 등록되지 않았다면 월 19만원을 부담해야 했을 것이다. 이렇게 피부양자 인정기준이 후하다보니 지난 10년간 건강보험 전체 가입자 수가 6.5%(4,710만 명 -> 5,014만 명) 증가한 반면 피부양자는 10년 새 28%(1,602만 명 -> 2,054만 명)가 증가했다. 전체 건강보험 가입자의 41%가 피부양자로 등록된 상황이다.

 

지역가입자의 경우를 보자. 현행 제도에 의하면 지역가입자는 종합소득과 재산(전월세보증료, 자동차포함)이 보험료 부과대상에 포함되며 피부양자에 대한 보험료 면제 없이 가구원 수대로 보험료가 증가한. 지역가입자는 소득 파악이 어렵기 때문에 실제 부담능력에 비해 과소 보험료를 내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전세금, 자동차 산정기준이 적용되어 과도한 보험료를 내는 경우도 있다. 전세금의 경우 전세금 인상으로 은행대출이 증가하더라도 재산이 증가한 것으로 간주하여 보험료가 인상된다. 자동차 역시 배기량과 출고일을 기준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자동차 가격과는 무관하게 보험료가 책정된다. 널리 알려진 송파 세모녀의 경우 소득이 없었지만 두 딸이 젊고 전세집(실제 보증금 500만원, 월세 50만원이지만 전세금 3600만원으로 환산)이 재산으로 산정되어 매달 5만원이 부과되었다.

 

이러한 불합리한 현상은 일용직노동자, 생계형 차량 보유자, 반지하 셋방에 사는 저소득층에게도 해당된다. 이렇게 직장보험과 지역보험 모두 보험료 책정이 소득수준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형평성에 어긋났기 때문에 그동안 보험료 부과기준을 개편하라는 요구가 줄기차게 나왔던 것이다. 바로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20132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건강보험료 개편안을 국정과제로 선정하였고, 정부 출범 후인 20137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을 발족시켜 그 최종 결과를 올해 1월에 발표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기획단이 17개월 논의 끝에 마련한 개혁안이 발표되기 하루 전,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이 돌연 포기를 선언했다. ‘시뮬레이션이 최신 자료로 진행된 것이 아니어서 재검토가 필요하다. 연내 개편은 어려울 듯하다라는 것이 그가 밝힌 백지화의 이유였다. 연말정산 논란 등으로 지지율이 20%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건보료 개편안을 발표할 경우 고소득자의 반발로 국정운영이 더 어려워질 것을 우려한 결정이었다.  

 

그러자 곳곳에서 질타가 쏟아졌고 이규식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선기획단 위원장이 사퇴하기에 이른다. 새정치연합에서는 보건복지부장관의 사퇴를 요구했고, 여당인 새누리당에서도 개편안을 재추진하자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정부도 건보료 개편을 마냥 늦출 수는 없었던지 마지못해 재추진을 결정했다. 올 상반기 중으로 보건복지부와 새누리당이 당정협의를 통해 기획단의 개편안을 수정·보완해 확정안을 만든다고 한다.

 

그러면 정부가 3년간 공들여 마련했다는 건보료 개편안의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정부 개편안은 지역가입자들의 소득과 재산에만 보험료를 매기는 안이다. 지역가입자의 성()과 연령, 생계형 자동차, , 월세보증금까지 보험료의 부과 기준으로 삼는 것은 부당하다고 여겨 부과기준에서 제외한다. 그리고 재산이 일정 금액 이하일 경우에는 월 16,480원의 최저보험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이 개편안에 따르면 송파 세 모녀와 같은 저소득층은 월 보험료가 5만원 내지 수 만원에서 16,480원으로 줄어들게 된다. 결과적으로 전체 지역가입자의 약 80%(602만 가구)의 보험료가 내려가는 결과가 예상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최저보험료 16,480원보다 낮은 보험료를 부담해 온 약 127만 가구 가운데 저소득 지역가입자의 보험료가 인상될 여지도 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임대·배당·금융소득 등이 있는 고소득 직장인에게 월급 외 소득에 대해 보험료를 부과하지 않은 것은 월급 소득만 있는 직장인과 비교할 때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 개편안에서는 급여 외 임대·배당 등의 소득이 있는 고소득 직장인들에게 건보료 부과 종합소득 기준을 연 7200만 원 이상에서 2천만 원 이상으로 대폭 낮췄고, 그 결과 26만 명이 보험료를 더 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소득이 많은 부모나 배우자들의 피부양자 등록 문제도 건드리긴 했다. 개편안에 따르면 직장인 피부양자 중 금융, 임대, 연금 등의 소득이 연 2천만 원을 초과하는 사람은 지역가입자로 전환되어 보험료를 내게 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임대소득소득이나 금융소득(펀드)은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실제 보험료 부과 대상은 연금소득 2천만 원 이상인 피부양자, 즉 사학연금이나 공무원연금과 같은 연금 수령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전체적인 소득의 파악이 온전치 못한 상황에서 그나마 소득이 파악되는 투명한 소득 자료에만 보험료가 부과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현행 부과체계 개편 방향
직장가입자 직장에서 받는 보수 기준 보험료 납부 보수 외 종합소득에도 보험료 부과하는 대상 확대(종합소득 : 근로소득, 사업소득, 2천만원 초과 금융소득, 연금소득, 기타소득)
보수 외 종합과세소득이 연 7,200만원 초과시 보수 외 소득에 보험료 납부
직장가입 피부양자 재산 9억 이상, 금융, 연금, 임대소득 각 4,000만원 이상 금융, 임대, 연금소득 2천 만원 초과하면 지역가입자로 전환되어 보험료 납부
지역가입자 연간 종합소득 500만원 초과시 소득+재산+자동차 종합소득 + 재산에 보험료 부과, 자동차 기준 제외, 저소득자 세대 정액 최저보험료(16,480)도입
연간 종합과세소득 500만원 미만시 평가소득+재산+자동차

(: 건강보험 개편안)

 

정부 개편안은 저소득 600만 가구의 보험료를 내리고, 고소득자 46만 명의 보험료를 인상하여 기존의 부과체계에 비해 진일보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들이 남아 있다.

 

우선 건강보험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이 너무 적다. 한국 정부는 전체 건강보험 재정의 고작 14%만 지원하고 있는데, 이것은 일본(37%), 프랑스(47%), 대만 (26%)과 같은 다른 나라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비율이다.

 

많지도 않은 국고지원금을 미납하는 것도 문제다. 2007년 제정된 국민건강보험법(108)에 따르면 전체 건보료 예상수입액의 20%(국고지원 14% + 담배세로 충당되는 국민건강증진기금에서 6%)를 매년 정부가 지원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이 시행된 2007년 이후 정부지원액은 20%를 채운 적이 한 번도 없고 매년 14%-17%에 그쳤다. 사후정산의 강제 규정이 없기 때문에 건보료 예상수입액을 일부러 낮게 책정한 뒤 미지원금에 대한 지원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식으로 최근 6년간 지급하지 않은 미납액이 65천 억원에 달한다.

 

건강보험 흑자는 정부가 건강보험 지원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하나의 배경이다. 2014년 건강보험 재정의 당기흑자가 무려 46천억 원이며 누적 흑자는 128천억에 달하는데, 정부는 이를 핑계 삼아 현재의 국고지원마저 단계적으로 축소하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 

 

사실 건강보험이 누적흑자가 많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막대한 흑자는 그만큼의 금액이 환자들의 치료비로 지급되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에 의료보장 확대와 의료공공성 확충이라는 전사회적 요구에 반하는 것이다.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치료비가 부담되어 아파도 병원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 건강보험료 체납 때문에 보험혜택을 받지 못하고 방치된 사람들이 상당한 숫자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건보료 개편안에서는 국가가 빈곤층의 건강권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하려는 의지를 찾아볼 수 없다. 핵심적인 문제는 그대로 두고 근로소득자나 연금소득 퇴직자에게 돈을 더 내라고 요구할 뿐이다.  

 

정부 개편안의 또 다른 문제점은 건강보험료 상한선에 관한 개선안이 없다는 것이다. 현행 건강보험 제도는 직장가입자의 경우 한 달 급여의 5.99%를 직장인과 사용자가 절반씩 부담하는데 급여가 상한액(7,810만원)이상이면 모두 월 237만원만 내도록 되어 있다. 건강보험료 직장가입자 중 최고보수월액 상위 1-59위인 사람들의 건강보험료 부담액은 급여 대비 0.14%-0.54%에 지나지 않는다. 건강보험료 상한선 제도는 재벌 총수나 연봉이 수십억 원씩 되는 CEO들에게 지나친 혜택을 주고 있다. 직장건강보험 부과기준 상향액을 폐지하는 것이 준조세인 건강보험의 형평성에 더 맞을 것이라고 본다.

 

정부는 전면적인 개편안 재추진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국고지원을 확대하고 건보료 부과의 형평성을 높이는 근본적인 개편이어야 의미가 있다. 또한 정부는 국민의 건강권 보장이라는 책무를 인식하고 충분한 재원을 확보하여 공공의료기관 확충,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와 같은 의료공공성을 강화시켜 나가야 한다

 

                                         의료공공성 강화가 올바른 방향이다.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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