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12. 노동개혁으로 포장된 개악

더불어삶의 생각 2015. 5. 6. 14:37

노동개혁으로 포장된 개악

- 정부의 노동'개혁'안에 관한 쉬운 해설과 반론 

 

지난 4월 9일, 고용노동부는 5월 중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절차 가이드라인을 내놓고 6~7월 일반해고 요건 완화에 관한 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노사정위에서 한국노총을 향해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하다가 끝내 합의가 결렬되자마자 본색을 드러낸 셈이다. 노동시장 구조개악 외에도 공공기관 구조개악, 연금개악 등 다방면의 반노동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는 박근혜 정부에게 모양새 따위는 애초에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노동계에서 '개악'이라 부르는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은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2월 29일 내놓은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토대로 하고 있다.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ㆍ남용을 방지하고 근로조건의 격차를 시정하겠다는 그럴싸한 언어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내용을 보면 정말로 기가 막힌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게 아니라 기존의 정규직 고용을 불안하게 만드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문제의 책임을 기업도, 정부도, 시장도 아닌 정규직 노동자에게 돌리는 것은 현 정부의 일관된 접근법이다.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로 기업이 겁이 나 인력을 뽑지 못한다”는 최경환 부총리의 발언은 이를 한 마디로 요약해서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정부는 '비정규직 철폐'나 '정규직 전환'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소위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럼, 지금부터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 과제 가운데 현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사안들을 알기 쉽게 정리해보자.    

  

① 일반해고(정리해고, 징계해고 외의 일반적인 해고) 요건 완화 - 정부는 이를 ‘근로계약 해지 기준 명확화’라고 표현한다. 현재 경영상 정리해고는 근로기준법과 근로기준법 시행령에 그 절차와 요건 등이 명시돼 있으나, 일반해고는 따로 규정이 없다. 다만 근로기준법 23조(해고 등의 제한)에서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을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행법에는 성과가 낮다는 이유로 해고할 수 있다는 조항이 없으며, 그동안 저성과 때문에 해고된 경우 법원에서도 이를 통상적인 해고의 정당한 사유로 평가하지 않았다. 정부의 주장은 일반해고에 관한 명확한 법률 규정이 없으니 구체적 기준과 절차를 담은 '가이드라인'을 만들자는 것이다. 말은 그럴싸하지만 정부안대로라면 교육이나 배치전환, 임금조정 등 ‘해고 회피 노력’이라는 절차적 요건만 갖추면 낮은 성과를 낸 노동자를 언제든 자를 수 있게 된다. 예컨대 A라는 기업이 B라는 직원을 다른 부서로 배치했다가 성과가 낮다며 해고를 통보할 경우 B는 꼼짝없이 해고를 당해야만 한다. 게다가 성과가 높고 낮음을 평가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사용자측이기 때문에, 일반해고 요건에 관한 가이드라인 마련은 기업에게 무제한에 가까운 해고 권한을 쥐어주는 것과도 같다. 노동조합 활동에 적극적인 노동자를 위협하고 해고하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② 취업규칙 변경 관련 기준ㆍ절차 완화 -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상시 10명 이상의 노동자를 사용하는 기업은 취업규칙을 작성해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해야 한다. 업무의 시작과 종료시각, 휴게시간, 휴일, 연월차 휴가, 교대근무, 임금의 결정·계산·지급 방법 등이 모두 취업규칙에 담긴다. 비록 정식 계약은 아니지만 취업규칙은 노동에 관한 거의 모든 사항을 망라하는 사용자와 노동자의 약속이다. 그렇기 때문에 취업규칙을 작성 또는 변경하려면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을 경우 노동조합의 의견을, 노동조합이 없을 경우 과반수 노동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경우에는 노동조합 또는 과반수 노동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근로기준법 94조, 취업규칙의 작성 변경 절차). 정부안은 노사협의회나 개별 노동자의 동의만 얻으면 사측이 취업규칙을 일방적으로 바꿀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용자가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마음대로 후퇴시킬 수도 있다. 예컨대 사측이 직원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해서 사실상 반강제로 동의를 받아낸 후 휴가를 줄여버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모든 것이 개별적 노사관계의 영역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노동조합과 단체협약이 사실상 무력화된다. 

 

③ 직무ㆍ성과급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 - 정부가 취업규칙 변경 요건을 완화하려는 주된 이유가 바로 임금체계 개편에 있다. 연공급 임금체계가 임금격차 확대, 중·장년 노동자의 조기 퇴출, 기업 신규채용 축소 등의 주된 요인이므로 직무·능력·성과급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다. 재계와 조중동 역시 성과급제 개편이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웅변한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을 뜯어보면 근거나 사례가 빈약하며 결국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줄여주자는 것밖에 없다. 정규직에 직무성과급 체계를 적용하면 근속연수가 긴 노동자들의 임금은 지금보다 낮아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사실 성과급이냐 연공급이냐를 따지는 것이 사회적으로 아주 시급한 문제라고 보기도 어렵다. 핵심은 노동자들이 적정 임금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아닐까. 특히 중소영세 비정규 노동시장에는 사실상 임금체계랄 것이 없고 최저임금이 유일한 임금결정 기제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성과급이냐 연공급이냐를 따지기 이전에 최저임금 현실화, 임금체계의 사회적 형평성 제고 등이 먼저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정부안에서는 이런 문제의식을 찾아보기가 어렵고 오직 사용자의 이익 챙겨주기만 있다.  

 

이만하면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안을 더 쉬운 해고, 더 낮은 임금, 더 많은 비정규직을 만들어내는 방안이라 부르는 이유가 이해된다. 기업이 정규직 노동자마저도 자의적으로 해고하거나 노동여건을 후퇴시킬 수 있게 된다면 한국에 안정된 일자리라는 것은 남아나지 않게 된다. 헌법과 노동법에 규정된 노동기본권은 크게 후퇴해 그야말로 말뿐인 권리로 남을 것이다. 또한 박근혜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에는 비정규직을 전면 확산시키고 한번 비정규직을 영원한 비정규직으로 머무르게 하는 내용도 버젓이 들어가 있다.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이나 파견 확대 등이 그것이다. 국민을 바보로 알지 않는 이상 이런 것들을 비정규직 대책이라고 내놓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짤막하게 반론을 펼쳐보자. 첫째,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원인을 정규직 과보호에서 찾는 것은 엉뚱한 진단이다. 한국은 정규직의 고용안전성도 낮은 편이다. 지난해 말 OECD 발표에 따르면 2013년 한국 정규직의 일반해고·정리해고에 대한 고용보호 지수(고용보호법제의 수준을 지수화한 것)는 2.17로 34개 회원국 가운데 22위에 머물렀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중 근로형태별 부가조사를 보더라도 지난해 8월 기준 정규직 근로자의 평균 근속기간은 7년 1개월이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오래 전에 사라지고, 명예퇴직이니 희망퇴직이니 하는 이름으로 사실상의 정리해고가 빈번히 이뤄진다. 쌍용차 등에서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들의 복직도 산 넘어 산이다. 이런 나라에서 해고요건을 또 완화한다는 것은 생지옥을 만들자는 이야기밖에 안 된다. 한국은 고용의 유연성이 아니라 안전성을 높여야 한다. 정부 정책과 반대로 해고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방향으로 법과 제도를 개정해야 한다 .

 

둘째, 비정규직 노동자의 몫을 가져간 것은 정규직 노동자가 아니다. 노동자가 만들어낸 이 사회의 부를 독점하는 존재, 과보호를 받는 존재는 바로 재벌이다. 한국의 노동소득분배율(국민소득 중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2년 기준 59.7%, 2014년 기준 62.6%로 OECD 최하위 수준이다. 한국 경제의 분배구조가 지나치게 기업 중심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포함한 20대 기업의 노동소득분배율(경향신문이 2012년 자료를 토대로 분석)은 49.9%로 국내 기업의 평균 노동소득분배율보다 10%가까이 낮다. 재벌이 노동의 과실을 제대로 나누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이들은 여력이 있는데도 인건비가 부담된다고 우는 소리를 하면서 특혜는 알뜰하게 챙긴다. 재벌에게 과실을 공평하게 나누라고 요구하지 않는 한 그 어떤 노동대책을 쓰더라도 한국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는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셋째,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만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근로기준법에서는 중간착취를 금지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재벌 대기업일수록 비정규직 고용과 간접고용이 만연하다. 지난해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10대 재벌의 계열사 노동자 119만 6천명 가운데 36.3%인 43만 4천명이 비정규직이었다. 그리고 비정규직들 가운데 사내하도급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기간제 등 직접고용 비정규직의 5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정부와 재벌은 지금의 시장구조가 형성되도록 만든 책임을 인정하고 합리적인 조치를 취해 나가야 마땅하다. 노동계 추산에 따르면 10대 재벌그룹의 비정규직 전부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비용은 약 4.3조원인데, 이는 10대 재벌 사내유보금의 0.8% 수준이다. 이렇게 시작한다면 '비정규직 철폐'는 구호에서 현실로 바뀌어나갈 수 있다.    

 

그밖에도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당장이라도 착수해야 하는 과제들이 있다. 불법파견 단속을 강화하고, 공공기관 비정규직을 줄이고, 비정규직과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하면 된다. 그러나 노사관계의 공정성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이 자본의 요구만을 관철시키려는 집권세력에게 이런 것은 관심 밖의 일들이다. 노동절인 지난 1일에도 정부는 맨몸의 노동자와 시민들의 행진을 차벽과 최루액으로 가로막았다. 민생 파탄과 정치적 폭압이 겹치니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그러나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역사 발전의 자연스러운 행로이며, 이를 거스르는 정권의 앞날은 결코 밝지 못할 것이다.        

 

                   ⓒ판화가 이윤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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