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은 물류센터에 고객이 주문하는 상품을 처리하는 전 과정인 '풀필먼트' 시스템을 도입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숫자가 상당하다. 그러나 최근에 지어진 곳들을 제외하면 쿠팡 물류센터 건물은 철저히 '물류'를 위해 설계되었다. 자재를 가능한 많이, 최대한 이동하기 쉽게 만들었기 때문에 환기를 비롯하여 냉·난방 시설이 들어설 공간과 여건이 부족하다. 처음부터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에 대한 고려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폭염과 한파 대책 요구에 대해 쿠팡은 건물 설계상 불가능하다는 말만 반복한다. 그속에서 노동자들이 쓰러져도 나몰라라 한다.
"노조가 생긴지 한 15개월 됐네요. 노조가 생기고 공식적으로 휴게 시간을 정해서 주는 건 아니지만, 올 여름에는 쉴 시간도 조금 생겼어요. 원래 식사 시간이 1시간이잖아요, 그 1시간에서 뺀 10분이랑 무급 10분을 합해서 20분 쉴 시간을 줘요. 물류센터마다 (내부) 온도 차가 달라서, 폭염 정도가 심한 곳은 휴게 시간을 조금 더 주죠. (고용노동부의 폭염 지침에 따르면 폭염 정도에 따라 휴게 시간이 달라진다. 그러나 폭염 정도가 심해 더 많이 제공되는 휴게시간은 모두 무급이다.)”
물류센터 노조의 노동자들이 에어컨 설치 등 폭염 대책을 내놓으라고 끊임없이 목소리를 낸 덕분에 장시간 노동 중 쉴 시간이 조금이나마 확보되었다고 했다.
폭염이 아니더라도 이미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휴식 시간 없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왔던 터다. 故 장덕준 씨를 비롯해 과로사로 목숨을 잃은 쿠팡 노동자들은 알려진 것만 여럿이다. 폭염 시기 받았던 짧은 휴게시간은 더위가 꺾이고 선선한 계절이 되었으니 사라진다. ‘유급 휴게시간 보장' 요구가 전면에 있는 이유다.
"추위가 어느 정도냐면, 저희가 장갑을 끼고 일을 하는데 PDA를 사용하려니 터치가 안 되니까 장갑 손가락 끝을 잘라요. 끝에만 손가락이 나오는데 일하다보면 얼얼해요. 동상걸린 것처럼. 그정도로 많이 추워요. 그런데 추운 거를 이기려고 진짜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많이 움직이면 덜 춥잖아요.”
앞서 언급했지만 쿠팡은 기록적인 한파에도 1인당 핫팩 1개만 제공했었다. 핫팩 하나만 더 달라고 요청하면 ‘없다. 다른 분도 써야 되지 않나. 뒤에 일할 다른 조 사람들도 생각하셔야죠' 라며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면박을 주기도 했다. 제대로 된 난방 장치는커녕 한파 대책도 없는 속에서 2021년 1월 영하 11도의 어느날, 쿠팡 물류센터에서 밤샘근무를 하던 중년 여성 노동자가 심근경색으로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외에도 강추위 속에서 일하던 쿠팡 노동자들의 심혈관계 질환에 의한 돌연사는 계속됐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적어야했던 쿠팡,
노동조합의 힘으로 조금씩 바꿔간다
“옛날에는요, 화장실 가는 것도 몇 시 몇 분에 갔다고 핸드폰 번호를 썼어요. 화장실 갔다 와서도 언제 왔다고 핸드폰 번호를 쓰고.”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핸드폰 번호와 시간까지 적었다는 이야기에 귀를 의심했다. 혁신을 부르짖는 기업이 성인에게 그런 요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이 어처구니없는 행태는 물류센터 노조가 인권 침해라며 항의하자 바로 중단되었다. 노동조합의 힘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여전히 쿠팡 물류센터에 핸드폰을 소지하고 들어가지 못한다. 군대도 핸드폰 반입이 가능한 사회인데 말이다. 이에 노조는 ‘휴대폰을 가지고 가면 (쿠팡이 인권과 노동권을 침해하는) 증거 자료를 많이 확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휴대폰 자체를 처음서부터 차단하는 것'이라 강하게 추측하고 있다. 동시에 물류센터에서 사고가 발생해도 핸드폰 및 연락수단이 없는 노동자들은 발빠른 대처를 할 수가 없기에 위험한 상황이다.
이외에도 열악한 노동환경을 드러내는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다. 사무국장 님은 고용노동부 장관도, 국회의원들도 쿠팡 물류센터에 방문해서 직접 확인하고 때로는 직접 일을 해보며 체험도 해보지만 그 이상의 행동을 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의원들도 물류센터에 보좌관이랑 같이 일하고 오신 분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렇게 갔다와서 뭔가를 바꿔 놔야죠. 여기 온 게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들은 법을 바꿀 수 있으니까, 일하는 사람들 위주로 법안을 제대로 바꿨으면 좋겠어요. 그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런 건 해줬으면 좋겠어요.”
지지방문을 간 날은 오랜만에 비구름 없이 맑은 날씨였고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진짜 겨울 준비를 해야하나"라고 간담회가 끝날 때 즈음 이야기하시는 걸 들으며 가슴이 쿵 내려 앉았다. 사무국장님은 1인당 1개씩만 지급하던 얼음물과 핫팩을 여러개씩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적은 게시물을 당당히 부착할 수 있는 게시판도 얻어내는 등 물류센터 노조는 조금씩 쿠팡 노동환경을 바꿔나가고 있다는 데에 자부심을 내비쳤다. 물류센터 내 코로나19 집단감염의 피해자 중 한명으로 이에 대해 쿠팡에 항의하다가 부당해고를 당했다는 사무국장님. 그는 노동조합을 결성해 싸워나가는 게 “할만한 일”이라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싸움은 물류센터 노동자들만의 것이 아니다. 소비자로서 쿠팡을 이용하지 않는 집을 찾아보기 힘들기도 하거니와, 한국 사회에서 고용 3위 기업이 된 쿠팡에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일용직이나 계약직으로 일하는 이들이 상당하다. 쿠팡 노동자들이 건강과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목소리가 필요한 때다.
➕ 다음 ‘쿠팡 노동자의 참혹한 노동현실 2’는 책 <마지막 일터, 쿠팡을 해지합니다>의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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