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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모음/더불어삶 시선

[시선]SVB 파산, 이렇게 봅니다

by 더불어삶 2023. 3. 17.

 

SVB 파산… 이렇게 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본사를 둔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과 그 여파에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요. 오늘은 SVB 파산 사태에 관해 나름의 관점을 제시해 보려 합니다. 제도권 언론에서 많이 보도하지 않은 내용도 넣어드려요😄

 

  1.  구제금융인가, 아닌가?    

미국에서는 은행 구제금융(bailout)에 관한 인식이 좋지 않아요. 과거 금융위기 때 미국 정부가 월가의 대형 은행들에 막대한 공적 자금을 투입해서 은행들을 살렸지만 도덕적 해이에 대한 책임은 제대로 묻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지난 12일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구제금융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off the table)”이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같은 날 재무부와 연준은 SVB의 모든 예금에 대해 정부가 전액 지급💰을 보장하겠다고 발표했어요. 원래 미국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25만 달러 미만의 예금에 대해서만 보증하는데, 한도를 넘는 예금도 전액 보증하겠다는 것이죠. 또 같은 날 연준과 JP모건은 파산 위기에 처한 다른 은행인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에도 700억 달러의 유동성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어요. 다만 FDIC의 기금을 사용하기 때문에 “납세자의 돈을 투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했지요. 

 

그리고 연준은 은행들이 보유한 국채 등의 고정자산에 대해 1년 만기로 돈을 빌려주기로 했어요. 채권의 액면가로 계산해서 돈을 빌려주기 때문에 은행들은 손해를 보면서 자산을 매각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정부가 개입해서 민간의 손실을 막아주는 것, 이게 구제금융이 아니면 무엇일까요? 지난 12일 <월스트리트저널>도 미국 정부의 조치는 “은행 시스템을 구제하기 위한 확실한 구제금융(de facto bailout)이다”라고 보도했어요. 

 

그러니까 바이든도, 옐런도, 은행업계와 벤처기업들도 하나같이 “구제금융”이라는 말은 피하고 있지만 이건 구제금융이라고 봐야겠죠.

 

  2. 핵심은 미국 국채?!!   

 

미국 재무부와 연준이 이례적으로 SVB의 예금 전액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들과 그 기업들에 투자한 벤처 자본가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런 측면도 있겠지만, 주말 밤에 옐런 재무장관과 파월 연준 의장이 급박하게 조치를 취한 것을 보면 뭔가가 더 있어 보여요.

 

여기서 ‘뭔가’란 미국 국채입니다. SVB가 파산에 이르는 과정의 중심에 미국 국채가 있었거든요.

 

저금리로 돈을 빌리기 쉬웠던 시절, 실리콘밸리에는 벤처 기업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이들 기업들로 투자금도 엄청나게 쏟아져 들어왔어요. 실리콘밸리의 벤처 기업들은 현금을 SVB에 예금했고, SVB는 그 돈으로 저금리 시기에도 비교적 높은 수익을 약속받을 수 있었던 미국 장기 국채를 매입해서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산의 절반 정도가 미국 국채였는데, 당시의 기준으로는 위험한 선택이 아니었을 것 같아요.

 

문제는 연준이 빠른 속도로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서 발생했어요. 일반적으로 금리와 채권 가격은 반대로 움직이잖아요. 기준금리가 상승하자 SVB가 보유하고 있던 미국 국채의 가격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벤처 기업들도 자금이 필요하게 되어 예금해둔 돈을 찾으려 했고, 결국 SVB는 국채를 대규모(210억 달러)로 매각하면서 큰 손실(18억 달러)을 입게 되었어요.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SVB에 예금했던 고객들이 불안해져서 너도나도 예금 인출을 시도했던 겁니다. 

 

기존에 미국 국채는 저위험도 아니고 ‘무위험’ 자산으로 통했어요. 초강대국 미국이 보증한다고 다들 믿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번에 그 미국 국채가 흔들리면서 SVB의 뱅크런💵🏃이 시작된 겁니다. 미국 재무부와 연준이 규칙을 깨가며 신속하게 움직인 것은 바로 이 미국 국채를 보유한 다른 은행들의 연쇄 파산을 막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만약 시장에서 미국 국채의 신뢰가 떨어질 경우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상까지 흔들릴 테니까요.

 

실제로 이번 SVB 사태 직후에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인덱스(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미국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가 일시적으로 하락했어요. 달러의 대체재로 통하는 금과 구리, 비트코인 등의 가격이 뛰어올랐고요📈. 며칠이 지난 지금은 안전자산 선호 현상으로 미국 국채가격과 달러인덱스가 다시 상승하고 있지만, 이번 사태로 미국 경제와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성이 다시 한번 부각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3. 트럼프 탓이라고?   

 

미국의 민주당과 일부 언론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임기 중에 이뤄진 금융규제 완화가 이번 SVB 사태로 이어졌다는 비판이 나왔어요. 정말로 이번 뱅크런이 트럼프 시기의 규제완화 때문에 발생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 트럼프 정부 시기였던 2018년에 도드-프랭크 법이라는 금융 규제법의 일부를 완화했던 건 사실이거든요. 도드-프랭크 법은 2010년 미국에서 금융위기 재발 방지를 위해 제정된 법으로, 은행들이 매년 스트레스 테스트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어요. 2018년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 의원들의 주도로(그리고 민주당 의원들의 일부도 찬성했어요) 이 법의 적용을 받는 은행의 자산 규모 기준을 상향했는데, 그 결과 이번에 파산한 SVB와 시그니처 은행이 규제에서 빠지게 됐어요😥  

 

그런데 더 크게 보면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의 탓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어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오랫동안, 무제한에 가까운 돈 풀기로 위기를 덮으려고 했기 때문에 결국 오늘의 위기가 발생했잖아요. 그리고 양적완화(QE)라는 이름의 유동성 공급 정책은 트럼프 이전인 오바마 전 대통령 시기에 월가 은행들을 구제하면서 본격적으로 시행되었지요. 그 양적완화는 누가 했죠? 연준입니다. 그때 연준 의장은 누구였죠? 벤 버냉키. 그 버냉키를 연준 의장으로 발탁한 사람은 조지 W. 부시였고, 그를 재임명하고 철저히 밀어줬던 사람은 버락 오바마입니다. 

 

결론. 요즘 미 연준은 인플레이션과 싸운다면서 마치 해결사처럼 행세하고 있지만, 사실은 지난 15년간 양적완화로 지금의 인플레이션과 금융 불안정을 초래한 것이 바로 연준입니다. 물론 그 뒤에는 미국의 역대 정부들🇺🇸🏦이 있었고요.

 

  4. 앞으로 어떻게 될까?   

 

확실한 예측은 어려워요(당연). SVB 파산으로 시작된 위기가 계속 전염되어 연쇄 도산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1929년의 금융 대공황도 처음에는 은행 한두 곳의 파산으로 시작되었으니까요.

 

그래도 일단은 SVB 파산으로 시작된 이번 사태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조금 더 커 보입니다. 미국 정부가 신속하게 개입했고, 당장 파산 위기에 처했던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의 뱅크런은 막았으니까요. 

 

그렇다 해도 위기의 근원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에요. 그동안 양적완화로 풀린 돈이 자산가격📊을 한껏 끌어올려 놓았지만, 실물경제와 분리된 자산시장의 호황은 모래성처럼 언제든지 무너져 내릴 수 있거든요. 위기의 불씨🔥가 그대로 남아 있다가 예상치 못한 다른 어딘가에서 터져 나올 수도 있어요. 단기적으로는 안전자산 선호가 강해질 것이고, 미국 금융시장의 위기가 다른 나라로 전가되어 신흥국 주식시장에서 자금 이탈과 같은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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