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택배노동자 파업이 한국에 던지는 질문
- 미국 최대 배송업체 UPS의 노사협상 이야기
미국 내 최대 배송업체 UPS의 배송원(운송 노동자)들이 사측과 노사협상을 해서 지난 7월 25일(현지시각) 잠정합의에 도달했어요. 이 합의가 나오기까지 배경과 합의 내용, 그리고 이 합의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를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UPS는 5년에 한 번 노사협약을 체결하는데, 올해가 노사협약을 체결하는 해에요. 미국의 전미트럭운수노조🚚는 Teamster라 불리고, UPS Teamsters가 노동자들을 대변해 UPS 사측과 협상을 해요.
전국의 UPS Teamster는 34만 명. UPS 노동자들이 미국 GDP의 6%를 움직인다는 분석도 있어요. 만약 협상이 결렬되어 파업에 들어갔다면 경제 손실이 엄청났을 거라고 합니다. 특히 올해는 협상이 결렬될 경우 파업 여부를 묻는 투표에서 조합원의 97%가 찬성했습니다. 왜 이렇게 찬성률이 높았을까요?
➡️ 팬데믹 기간 중 배송원들은 모든 것을 희생해서 미국 사회를 움직였어요. 덕분에 UPS는 기록적인 매출을 올렸죠.
➡️ 그러나 UPS는 말로만 '필수노동자'라고 할 뿐, 배송원들과 이익을 나누진 않았어요. 임금은 계속 정체되어 있었고, 배송원들 중에 생계를 위해 투잡을 뛰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 그리고 특정 시점 이후 채용된 배송원들은 22.4s라는 체계에 편입되어, 기존 배송원들보다 낮은 임금을 받았어요. 동일 노동을 하는데 임금 차별이 있었던 겁니다.
UPS 노사는 협상 끝에 7월 26일 잠정합의에 도달했어요. 8월에 노조 투표를 통해 최종 비준하는 절차가 남아 있는데, 비준이 마무리되면 이 협약이 2028년까지 5년간 적용되게 됩니다.
Teamster 노동조합은 이 잠정합의를 두고 "UPS 역사상 가장 뜻깊은 잠정합의"라고 평가했어요. 역사상 가장 좋은 조건의 협약을 요구했고, 그 요구를 관철했다는 것입니다.
잠정합의의 내용을 보면 노동조합이 그렇게 자랑할 만도 해요. 합의의 주요 내용을 크게 4가지로 나눠 살펴볼게요.
1️⃣ '역사적인' 임금 인상
- 풀타임, 파트타임 모두 2023년에 시간당 2.75$ 이상 인상. 향후 5년간 총 7.5$ 인상하기로.
- 현직 파트타임 노동자들은 시간당 임금을 21$로 즉시 인상.
- 현직 파트타임 노동자들의 장기근속수당 시간당 1.5$ 이상 인상.
- 향후 5년간 파트타임 임금 48% 인상
- 신규 채용 파트타임 노동자들은 시간당 21$에서 시작해서 일정 시간 경과하면 $23으로.
- 풀타임 노동자 임금은 시간당 최고 49$로 인상. 미국 전체 배송 노동자 중 가장 고임금이 됨.
- 현직 파트타임 노동자들은 시간당 임금을 21$로 즉시 인상.
- 현직 파트타임 노동자들의 장기근속수당 시간당 1.5$ 이상 인상.
- 향후 5년간 파트타임 임금 48% 인상
- 신규 채용 파트타임 노동자들은 시간당 21$에서 시작해서 일정 시간 경과하면 $23으로.
- 풀타임 노동자 임금은 시간당 최고 49$로 인상. 미국 전체 배송 노동자 중 가장 고임금이 됨.
* 풀타임(전일제) 노동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고 처우가 좋지 못했던 파트타임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까지 꼼꼼하게 챙겼어요.
2️⃣ 차별 철폐
- 22.4s로 분류되는 UPS Teamster 배송원들을 즉시 정규 배송노동자(Regualr Package Car Drivers, RPCD)로 재분류하고 호봉제도 적용
UPS에는 불공정한 이중임금제(two-tier wage system)가 있었어요. 2018년 UPS-Teamsters 노사협약에 따라 22.4s 배송원(화~토 근무하는 주니어 배송원)에게는 낮은 임금을 지급했던 거죠. 그래서 22.4s 배송원들은 저임금과 차별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 잠정합의에서는, 22.4s로 분류되는 UPS Teamster 배송원들을 즉시 정규 배송노동자(Regualr Package Car Drivers, RPCD)로 재분류하고 호봉제도 적용하기로 했어요.
* UPS의 불공정한 이중임금제를 깔끔하게 폐지시킨 거죠!
3️⃣ 노동조건 및 안전
- 모든 대형 배송차량에 에어컨 설치
- 화물칸에 선풍기와 환풍기 설치
- 최초로 공휴일(마틴루터킹 데이) 휴무.
- 강제 초과근무 폐지
- 계절적 파트타임 노동자 사용은 11월~12월에 5주로 제한
- 화물칸에 선풍기와 환풍기 설치
- 최초로 공휴일(마틴루터킹 데이) 휴무.
- 강제 초과근무 폐지
- 계절적 파트타임 노동자 사용은 11월~12월에 5주로 제한
* 폭염에 배송업무를 하면 트럭 내부 온도가 40도까지 올라간다고 해요. 그래서 노동조합은 사측으로부터 에어컨 설치를 약속받았어요.
4️⃣ 신규 채용
- UPS에 풀타임 7500명 포함, 2만2500개의 신규 일자리 창출
- 파트타임 노동자가 풀타임으로 전환할 기회도 늘어남
- 파트타임 노동자가 풀타임으로 전환할 기회도 늘어남
*기존 배송원들이 강제 초과근무를 하지 않고 계절적 파트타임 노동자 사용도 제한하는 대신, 부족한 노동력을 신규 채용으로 해결하기로 했어요.
이상의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UPS는 5년간 300억 달러를 투입하기로 했어요. 노동조합이 정말 열심히 협상을 해서 노동자들의 생계와 안전에 필요한 것들을 다 얻어냈고, 나아가 신규 고용도 창출해서 미국 사회에 기여했다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300억 달러는 큰돈이지만(약 39조원), UPS 사측 입장에서도 파업이 발생했을 경우의 손실을 피해갈 수 있어서 다행일 거라 생각됩니다. 만약 노동자들이 사측에 처우 개선과 신규 고용 창출을 요구하지 않았다면 저 300억 달러는 어디로 갔을까요? 아마 생산적인 데로 가지 않고 주주 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 주주들의 이익 증대에 사용되었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도 UPS 노사는 의미 있는 합의를 이뤄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가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을 파괴한 이후로, 미국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오랜 시간을 두고 노동운동을 재건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환경이 변화하면서 미국의 노동운동이 다시 활기를 띠는 모습입니다.
UPS 노사 잠정합의 내용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만약 한국에서 노동자들이 시간당 3,000원이 넘는 액수의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면? 노사협상을 통해 회사가 39조원, 아니 그 10분의 1인 3.9조원이라도 처우 개선과 신규 채용에 사용하게 만들었다면? 정치권과 언론이 어떻게 반응할지 머릿속에 대충 그려집니다. '기업 망하게 하는 기득권 강성노조'라느니 '임금 올려달라 공갈 협박'이라느니 '택배업계의 고소득 귀족노조'라느니 하는 비난이 쏟아지겠지요. 자주적 단결로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을 옹호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기본 책무이자 존재 이유인데도 그렇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에게는 사측과 마주앉아 협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대화가 이뤄지지 않으니 파업과 농성이라는 수단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기업에서는 손해배상을 요구하겠다고 하고 사법부에서는 노동자들에 대해서만 구속 기소를 남발합니다. 이게 정상적인 걸까요? 아니면 미국처럼 팬데믹 기간에 고생한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는 게 정상일까요?
노동조합은 자주적 단결로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을 옹호하는 단체입니다. 한국의 정치권과 언론, 그리고 시민들이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주 많이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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