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1.5명이 건설현장에서 죽는 나라, 괜찮을까?
"허울에 불과한 안전관리비... 비자금 조성에 사용되기도"
지난 4월, 인천 검단 아파트에서 주차장 붕괴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아파트 시공 과정에서 들어가야 할 철근이 빠진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었습니다. 이후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발주한 아파트 현장 중 15개 단지에서 상당수 철근이 누락되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철근 있는 아파트’를 홍보할 정도로 총체적 부실공사가 만연한 한국 사회.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길래 건설업계에서는 문제가 끊이지 않는 걸까요? 이 의문을 풀기위해 민주노총 건설노조와 간담회를 진행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국 건설업의 현실을 정리했습니다.
지난해 건설업에서 발생한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539명. 하루에 1.5명이 사망한 셈이다. 전체 산업 중 건설업의 산재 사망자 수는 1위로, 전체 산재 사망자의 24.2%를 차지한다.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면, 한국의 건설업 노동환경이 얼마나 열악한 상황인지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노동자 10만 명당 사고사망자 수를 나타내는 지표인 사고사망십만인율 통계를 살펴보자. 2020년 기준 국내 건설산업 사고사망십만인율은 20.0으로 OECD 경제 10대국 중 가장 높다. 10개국 평균인 7.9의 2.53배에 이르는 수치다.
▲ 노동자 10만 명당 사고사망자 수를 나타내는 지표인 사고사망십만인율 통계를 보면, 건설업 분야에서 한국이 OCED 경제 10대국 중 1위다. ⓒ 더불어삶
이렇게 사고사망십만인율이 국제적으로도 압도적으로 높은 한국의 현실을 '건설 현장은 다른 사업장보다 위험하다',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 안전불감증이 만연하다'라는 이유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 지난 8일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상암경기장)에서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의 하이라이트 행사인 ‘K팝 슈퍼 라이브’ 콘서트를 위한 무대가 설치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8월 8일,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의 하이라이트 행사인 'K팝 슈퍼 라이브' 콘서트를 위한 무대가 설치되는 현장 사진이다. 전재희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이 사진을 보여주며, 정부가 진행하는 국제 행사 준비 과정에서조차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게 한국의 현실이라 설명했다.
"(가장 윗 단을 보면) 추락을 방지하는 난간이 없어요."
"올라갈 때 계단을 설치해야하는데, 계단도 설치가 안되어 있고요."
"사람이 지나다니는 통로에 자칫하면 빠질 수 있는 공간이 (주의 표시도 없이) 있어요."
"(위에서 두번째 층에 있는 분은) 안전 벨트도 메고 (철근과) 고리를 체결해서 시스템과 본인을 연결시켰어요. 그래서 만약 추락을 하더라도 이 연결고리 때문에 사고가 나지 않게끔 예방이 되어있는데, 이 위의(가장 높은 층에 있는) 사람들은 (예방 조치가) 하나도 안 되어 있어요."
"(안전)벨트는 3만원 정도면 사요. 제가 현장에 나가면, 노조 조끼를 입고 있다보니까 저한테 달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어서 사무실 가서 달라고 하면 줄거라고 안내를 했는데 다들 (벨트를) 못 받고 그냥 나오세요."
"(미리 책정되어 있는) 안전관리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건설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안전화나 안전 벨트 등을 지급받는 경우가 거의 없거나 혹은 (지급된 물품도) 많이 부실합니다."
"워낙 급하게 진행되기도 했지만, 세계적인 대회를 유치한 가운데, 여러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도 이런 부실 환경이 버젓이 진행되고 있으니 건설 현장이 오죽하겠냐는 생각을 합니다."
심지어 K팝 콘서트가 예정된 8월 11일과 그 전날에는 수도권이 태풍의 영향권에 드는 상황이라, 더더욱 안전 조치에 신경을 써야했다. 하지만 위의 사진 한장이 그날의 현실을 보여준다. 관련하여 문제가 제기되자 그제서야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8월 1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지금 조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재희 실장이 이야기한 '안전관리비'란 무엇일까? 안전관리비는 건설공사 시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사용하는 비용으로 산업안전보건법 제72조는 사업비의 일정 비율 이상을 안전관리비로 사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관리비가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그래요. 워낙에 건설사들이 안전(관리)비를 안 쓰니까 아예 공사금액의 1~2%를 (안전관리비로) 떼놓은 거죠. (참고: 공사규모에 따라 안전관리비로 책정되는 비율이 다르다) 다 노동자 안전에 써야될 돈인 거죠. 안전화도 구입해줘야 하고 안전벨트, 안전고리 등도 사야죠. 안전관리자의 임금 등등 (어디에 써야할지) 노동부 고시에 다 나와있어요."
안전관리비가 얼마나 '허울'에 불과한지, 전 실장은 2017년 <경향신문>에 실린 대우건설의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대우건설은 2015년 8월 완공한 광교 주상복합아파트 신축공사 과정에서 안전관리비로 비자금을 조성해 노동부∙경찰∙수원시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이 뇌물은 2014년 광교 건설현장에서 기계 결함으로 타워크레인이 쓰러지면서 노동자 1명이 사망한 사건을 무마하는 등, 안전점검이나 산업안전보건법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로 사용됐다. 이해를 돕기 위해 대우건설의 비자금 조성 행태를 고발한 전 대우건설 직원의 발언 일부를 싣는다.
"현장에서는 안전, 품질, 환경 이런 쪽에 문제가 많이 발생합니다. 그런 경우에 위법적인 부분을 무마하기 위해서 뇌물공여라든지 접대 등이 필요한데 그럴 때 사용할 돈을 비자금을 조성해서 집행을 하게 됩니다. 100% 그걸(안전관리비)로 (비자금을) 조성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안전관리비에서 많은 비자금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노동부 안전 담당 감독관에게 접대를 하거나 명절, 휴가 때 교통비 명목으로 뇌물을 공여를 하고 또 어떤 사고가 났을 때 그 사고 형사처벌을 회피하기 위해서 담당 공무원에게 뇌물공여하고. 그런 데에 가장 많이 쓰이죠."
(출처: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2017년 10월 30일자 인터뷰)
이렇게 마련된 비자금으로 대형건설사가 얼마나 치밀하게 로비를 벌이는지는 앞서 언급된 2014년 광교 건설현장의 타워크레인 붕괴 사고 이후 처리 과정에서도 확인된다.
이러한 관행 속에서 건설 현장의 안전은 뒷전으로 밀리면서 산업재해가 많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부실시공 문제도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부실시공 문제는 다음 편에서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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