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소식 2 - 미국 대선과 트럼프 당선 (폴 크루그먼, 네오미 클라인)

세계 소식 2017. 1. 4. 15:40

세계 소식 2 - 미국 대선과 트럼프 당선



지난 미국 대선 이후 다소 시간이 흘렀지만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분석이 넘쳐났는데 주로 트럼프의 당선을 인종주의, 소수자혐오 등의 선동적 포퓰리즘에서 찾는 논평가들과 언론의 분석이 많았습니다. 또한 미국 백인 하층민들의 우매한 선택의 결과라는 조롱섞인 비난 역시 넘쳐났습니다. 노벨경제학 수상자이자 오랜 기간 뉴욕타임즈(New York Times)에서 칼럼을 연재해온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의 대선 직후 발표된 아래의 글(영문 및 번역 1번)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크루그먼은 '잘못된' 선택을 한 대중을 불신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그래서인지 글이 끝날 때까지도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반면 사태의 핵심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논자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진보 정치 세력이 유권자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극단적인 비주류 정치인에게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입니다. <쇼크 독트린(The Shock Doctrine)>,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This Changes Everything)> 등의 저서로 유명한 운동가이자 학자 네오미 클라인(Naomi Klein)의 글(영문 및 번역 2번)은 크루그먼의 글보다 차분합니다. 그녀는 인종주의, 불평등, 환경 문제에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면서 미국 민중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세력을 형성해야만 트럼프와 같은 극우세력의 득세를 막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대선 전 월스트리트의 자본가들은 일관되게 힐러리 클린턴에게 기부금을 몰아주었습니다. 네오콘의 상징인 조지 부시 대통령도 대선에서 상하원에는 투표하였지만 대선 투표용지는 공란으로 비워뒀다며 자신이 트럼프에게 투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백하였습니다. 미국의 기득권 세력이 원하는 대통령은 자신들의 질서에 위협이 될 수 있는 트럼프 같은 '망나니'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줄 '기성'세력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 민중의 선택은 바로 그 기득권 세력에게 반기를 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분석은 야당이 노동자와 민중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정치에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으로 보입니다. 



영문 및 번역 1.

Our Unknown Country 알 수 없는 우리나라

 By PAUL KRUGMAN 2016-11-08 22:58:01PM ET

 

We still don’t know who will win the electoral college, although as I write this it looks incredibly, horribly as if the odds now favor Donald J. Trump. What we do know is that people like me, and probably like most readers of The New York Times, truly didn’t understand the country we live in. We thought that our fellow citizens would not, in the end, vote for a candidate so manifestly unqualified for high office, so temperamentally unsound, so scary yet ludicrous.

우리는 아직 누가 선거인단 투표에서 승리할지 모르지만, 현재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놀랍게도, 끔찍하게도) 트럼프가 당선될 확률이 높아 보인다. 우리가 아는 한 가지 사실은 나와 같은 사람들이나 뉴욕타임즈(NYT)를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래도 우리의 동료 시민들이, 고위직을 맡을 자격이 없고 감정적으로 불안하며 너무나 추한 동시에 우스꽝스러운 후보에게 투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We thought that the nation, while far from having transcended racial prejudice and misogyny, had become vastly more open and tolerant over time. We thought that the great majority of Americans valued democratic norms and the rule of law.

또한 우리는 우리나라(미국)가 인종적 편견이나 여성혐오를 극복하는 것으로부터는 아직 멀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훨씬 더 열리고 관용적인 사회로 변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민주적 규범과 법치에 가치를 둔다고 믿었다.

 

It turns out that we were wrong. There turn out to be a huge number of people white people, living mainly in rural areas who don’t share at all our idea of what America is about. For them, it is about blood and soil, about traditional patriarchy and racial hierarchy. And there were many other people who might not share those anti-democratic values, but who nonetheless were willing to vote for anyone bearing the Republican label.

하지만 우리가 틀렸다는 것이 판명됐다. 미국의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 전혀 공유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특히 시골지역에 사는 백인들이 그랬다. 그들에게 미국의 가치는 '피와 영토', 전통적 가부장제, 인종적 위계질서 따위였다. 이런 비민주적 가치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화당 딱지만 달고 나오면 아무에게나 기꺼이 투표하려 했던 사람도 많았다.  

▶ 피와 영토란 동일한 혈연(유전적 형질)과 영토에 기초하여 나치 등이 사용했던 전통적 의미의 국가주의를 지칭. 독일어로는 Blut und Boden.


뉴욕 시 맨해튼에 있는 재비츠 컨벤션 센터에서 개표 결과를 지켜보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 지지자들. ⓒ Todd Heisler/The New York Times


 

I don’t know how we go forward from here. Is America a failed state and society? It looks truly possible. I guess we have to pick ourselves up and try to find a way forward, but this has been a night of terrible revelations, and I don’t think it’s self-indulgent to feel quite a lot of despair.

나는 여기서 어디로 나아가야할지 모르겠다. 미국은 실패한 국가이자 사회인가? 정말 그럴 수도 있겠.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추스르고 나아갈 길을 찾아야 하겠지만, 오늘밤은 너무도 끔찍한 진실이 드러나 버렸기 때문에 커다란 좌절감에 빠져든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 New York Times 원문 바로가기




영문 및 번역 2.

It was the Democrats' embrace of neoliberalism that won it for Trump

트럼프에게 승리를 안겨준 것은 신자유주의를 껴안은 민주당이다

 

네오미 클라인(Naomi Klein)

 

People have lost their sense of security, status and even identity. This result is the scream of an America desperate for radical change

사람들은 안정감, 지위,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이번 대선 결과는 급진적 변화를 요구하는 미국인들의 절규다.


They will blame James Comey and the FBI. They will blame voter suppression and racism. They will blame Bernie or bust and misogyny. They will blame third parties and independent candidates. They will blame the corporate media for giving him the platform, social media for being a bullhorn, and WikiLeaks for airing the laundry.

누군가는 제임스 코미(James Comey)를 탓하거나 FBI를 탓할 것이다. 누군가는 투표 억제 전략(voter suppression)을 탓하거나 인종주의를 탓할 것이다. 그들은 버니 아니면 집어쳐(Bernie or bust)!’를 외치는 흐름이나 여성혐오(misogyny)를 탓할 것이다. 그들은 제3당이나 독자 후보들을 탓할 것이다. 누군가는 트럼프에게 플랫폼을 제공한 대기업 언론을 탓하거나, 확성기 역할을 한 SNS, (클린턴 재단에 관한) 돈세탁 보도를 한 위키리크스(WikiLeaks)를 탓할지도 모른다.

제임스 코미는 미국 대선 직전 힐러리 클린턴의 ‘이메일 스캔들’ 재수사 방침을 밝혀 클린턴 지지자들로부터 정치적 수사라는 비난을 받은 FBI 국장이다.  또한 투표 억제 전략이란 제도적으로 문맹자, 불법 이민자의 자녀 등에게 선거에 참여하기 어렵게 만드는 투표부정의 일종이다.  클린턴 지지자가 많은 흑인이나 라틴계 미국인들의 낮은 투표율이 클린턴 낙선의 한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평자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But this leaves out the force most responsible for creating the nightmare in which we now find ourselves wide awake: neoliberalism. That worldview fully embodied by Hillary Clinton and her machine is no match for Trump-style extremism. The decision to run one against the other is what sealed our fate. If we learn nothing else, can we please learn from that mistake?

그러나 이런 비난은 우리가 현재 생생하게 겪고 있는 악몽을 만들어내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힘을 간과하게 만든다. 그것은 바로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라는 세계관이다. 힐러리 클린턴 세력에 의해 완벽하게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세계관은 애초에 트럼프식 극단주의의 상대가 못 된다. 트럼프의 대항마로 힐러리를 출마시키기로 하면서 우리의 운명도 정해졌다. 우리가 다른 것은 못 배우더라도, 이번의 실패에서는 뭔가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Here is what we need to understand: a hell of a lot of people are in pain. Under neoliberal policies of deregulation, privatisation, austerity and corporate trade, their living standards have declined precipitously. They have lost jobs. They have lost pensions. They have lost much of the safety net that used to make these losses less frightening. They see a future for their kids even worse than their precarious present.

여기 우리가 이해할 필요가 있는 사실이 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탈규제, 사영화, 긴축, 기업거래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정책 아래에서 많은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급격하게 하락했다. 그들은 직장을 잃었다. 그들은 연금을 잃었다. 또한 뭔가를 잃는다는 공포를 덜어주는 역할을 하는 사회안전망의 대부분을 잃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불안정한 현재보다도 자녀들의 미래가 더 안 좋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At the same time, they have witnessed the rise of the Davos class, a hyper-connected network of banking and tech billionaires, elected leaders who are awfully cosy with those interests, and Hollywood celebrities who make the whole thing seem unbearably glamorous. Success is a party to which they were not invited, and they know in their hearts that this rising wealth and power is somehow directly connected to their growing debts and powerlessness.

그리고 미국인들은 다보스 계급(the Davos class)의 부상(浮上), 금융·기술 억만장자들의 초고도화된 네트워크를, 그런 기득권층의 이익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 선출직 정치인들을,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굉장히 멋지게 보이게 만들어주는 할리우드 연예인들을 목격해왔다. 그들은 성공이라는 파티에 초대받지 않았다. 그들은 소수 기득권층의 부와 권력이 커지는 것과 자신들의 빚이 늘고 무력감이 커지는 것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음을 마음 속 깊숙이 알고 있다.

다보스(Davos)는 매년 세계경제포럼(The World Economic Forum)이 열리는 장소로 유명한 스위스의 도시이다. 클라인이 가리키는 다보스 계급이란 여기 참가하는 각국의 고위 정치인, 경제인 등의 반민중적 지배계급과 유사한 의미이다. 


매년 세계경제포럼이 열리는 스위스의 다보스. ⓒ Ruben Sprich/Reuters

 

For the people who saw security and status as their birthright and that means white men most of all these losses are unbearable.

안전과 지위유지를 생득권(birthright)으로 보는 사람들(이들 대부분은 백인)에게 그들의 이러한 상실은 참을 수 없는 것이다.

 

Donald Trump speaks directly to that pain. The Brexit campaign spoke to that pain. So do all of the rising far-right parties in Europe. They answer it with nostalgic nationalism and anger at remote economic bureaucracies whether Washington, the 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 the World Trade Organisation or the EU. And of course, they answer it by bashing immigrants and people of colour, vilifying Muslims, and degrading women. Elite neoliberalism has nothing to offer that pain, because neoliberalism unleashed the Davos class. People such as Hillary and Bill Clinton are the toast of the Davos party. In truth, they threw the party.

도널드 트럼프는 이들의 고통에 직접적으로 호소한다. 브렉시트 캠페인도 이들의 고통에 호소했던 것이다. 유럽에서 점점 커지고 있는 극우 정당들이 모두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들이 제시하는 답은 민족주의에 대한 향수(鄕愁)와 경제 관료들에 대한 분노다. 워싱턴, 세계무역기구(WTO), 유럽연합, 나프타(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에 대한 분노. 물론 극우 정당들은 이주민과 유색인종을 공격하고, 무슬림들을 악마화하고, 여성들을 폄훼한다. 반면 엘리트들의 신자유주의는 그러한 고통을 해소할 방법을 제시할 수가 없다. 신자유주의가 다보스 계급에게 무제한의 자유를 선사했기 때문이다. 다보스 파티 참석자들은 힐러리 클린턴과 빌 클린턴을 향해 축배를 든다. 아니, 사실은 클린턴 부부가 그 파티를 주최한 장본인이다. 

 

Trump’s message was: “All is hell.” Clinton answered: “All is well.” But it’s not well far from it.

트럼프의 메시지가 모든 게 엉망진창(All is hell)”이라면 클린턴은 모든 게 괜찮다(All is well)고 답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괜찮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이다.

 

Neo-fascist responses to rampant insecurity and inequality are not going to go away. But what we know from the 1930s is that what it takes to do battle with fascism is a real left. A good chunk of Trump’s support could be peeled away if there were a genuine redistributive agenda on the table. An agenda to take on the billionaire class with more than rhetoric, and use the money for a green new deal. Such a plan could create a tidal wave of well-paying unionised jobs, bring badly needed resources and opportunities to communities of colour, and insist that polluters should pay for workers to be retrained and fully included in this future.

이렇게 극심한 불안정과 불평등에 대한 네오파시즘(neo-fascism)적인 반응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1930년대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파시즘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진짜 좌파(real left)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프럼트가 받는 지지의 상당부분은 진정한 분배적 아젠다가 우리들의 눈에 보이도록 상정돼 있었다면 쉽게 벗겨져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수사(修辭, rhetoric)가 아니라 진정으로 억만장자 계급에 대항할 아젠다, 생태적 뉴딜(a green new deal)을 위해 재정을 지출할 아젠다가 필요하다. 그런 계획이 있으면 안정적인 급여를 받으며 노동조합활동을 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많이 창출할 수 있고, 현재 유색인종 공동체에 심각하게 요구되는 자원과 기회를 제공할 수 있으며, 공해유발기업들에게 장기적으로 노동자들을 재교육 시키고 그들을 안전망에 포함시키기 위한 비용을 부담하게 할 수 있다.

 

It could fashion policies that fight institutionalised racism, economic inequality and climate change at the same time. It could take on bad trade deals and police violence, and honour indigenous people as the original protectors of the land, water and air.

또한 진짜 좌파의 계획은 제도적인 인종차별, 경제적 불평등, 기후변화에 한꺼번에 대항할 수 있는 정책들을 수립할 수 있다. 잘못된 무역협정을 바로잡고 경찰들의 만연한 폭력 문제를 해결하며 토착민들을 땅, , 공기에 대한 보호자들로 존중해줄 수 있다.

 

People have a right to be angry, and a powerful, intersectional left agenda can direct that anger where it belongs, while fighting for holistic solutions that will bring a frayed society together.

사람들은 분노할 권리가 있다. 여러 가지 문제를 포괄하는 강력한 진보적 아젠다가 제시되면 사람들의 분노는 올바른 방향으로 모일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분열된 사회를 통합할 전체적인 해결책을 위해 투쟁할 것이다.  

  

Such a coalition is possible. In Canada, we have begun to cobble it together under the banner of a people’s agenda called The Leap Manifesto, endorsed by more than 220 organisations from Greenpeace Canada to Black Lives Matter Toronto, and some of our largest trade unions.

이러한 연합은 가능하다. 캐나다에서는 이미 이러한 요구들을 도약을 위한 선언(The Leap Manifesto)’으로 불리는 민중적 아젠다의 깃발 아래 모으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캐나다 그린피스(Greenpeace Canada)‘Black Lives Matter Toronto’와 같은 220개의 시민단체, 노조들이 함께하고 있다.

 

Bernie Sanders’ amazing campaign went a long way towards building this sort of coalition, and demonstrated that the appetite for democratic socialism is out there. But early on, there was a failure in the campaign to connect with older black and Latino voters who are the demographic most abused by our current economic model. That failure prevented the campaign from reaching its full potential. Those mistakes can be corrected and a bold, transformative coalition is there to be built on.

버니 샌더스의 경선 레이스는 이러한 종류의 연합이 발전한 사례이고, 민주적 사회주의에 대한 열망이 충만하다는 것을 증명해줬다. 하지만 경선 초반부터 노인층 흑인·라틴계 유권자들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데 실패하고 그러한 실패로 인해 샌더스의 시도는 그 잠재력을 완전히 발휘하지 못했다. 이들이 인구학적으로도 현재의 경제체제에 의해 가장 핍박받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That is the task ahead. The Democratic party needs to be either decisively wrested from pro-corporate neoliberals, or it needs to be abandoned. From Elizabeth Warren to Nina Turner, to the Occupy alumni who took the Bernie campaign supernova, there is a stronger field of coalition-inspiring progressive leaders out there than at any point in my lifetime. We are “leaderful”, as many in the Movement for Black Lives say.

이것은 우리가 앞으로 해결해야할 과제이다. 그러므로 민주당은 확고하게 친자본적 신자유주의자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아니면 단호하게 폐기돼야 한다.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부터 니나 터너(Nina Turner), 샌더스 경선의 폭발을 일으킨 점령하라운동의 참가자들까지, 이러한 진보적 연합에 영감을 제시하는 진보적 지도자들은 내 인생의 어떤 때보다 지금 더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흑인운동에서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leaderful”하다.

엘리자베스 워런은 미국 민주당 내에서 여성 정치인으로 힐러리 클린턴보다 좀 더 진보적인 대선 후보로 거론되었던 인물이고, 니나 터너는 끝까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지지한 오하이오 주의회의 민주당 흑인 상원의원이다.

 

So let’s get out of shock as fast as we can and build the kind of radical movement that has a genuine answer to the hate and fear represented by the Trumps of this world. Let’s set aside whatever is keeping us apart and start right now.

그러니 최대한 빨리 충격을 이겨내고 이 세상의 트럼프들에 의해 표현되는 혐오와 분노에 대한 진정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급진적 운동을 만들어가자. 우리를 분열시키는 것들을 잠시 미뤄두고 지금 당장 시작해보자.


▶ The Guardian 원문 바로가기

 


※ 더불어삶은 올 해부터 월 1회 의미 있는 세계 소식을 찾아 '국제브리핑'을 통해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posted by 더불어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