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소식 3 - 매카시즘과 할리우드 블랙리스트

세계 소식 2017. 2. 4. 02:31

세계소식 3 - 매카시즘과 헐리우드 블랙리스트


최근 박근혜-최순실 일당이 주도한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죠. 이번에 세계소식에서 전해드릴 기사는 1940-50년대 미국에 있었던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미국에서 매카시즘(McCarthyism)의 광풍이 몰아치던 시기, 할리우드 블랙리스트에 올라 박해받은 극작가 달튼 트럼보(Dalton Trumbo)에 관한 일대기 영화 <트럼보(Trumbo)>에 관한 CNN의 소개기사입니다. 당시 반미활동조사위원회(HUAC)는 청문회에 나온 증인들에게 "공산당에 가입한 상태거나, 가입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집요하게 던지면서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낙인을 찍고 활동이 거의 불가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기사에 나오는 극작가 트럼보를 비롯한 '할리우드 텐(Hollywood Ten)'은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근거로 이러한 진술을 거부하였다가 직장을 잃고 10년 이상을 가난과 사회적 낙인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을 한국의 '종북몰이'와 비교하면 어떨까요? 정권이 추진하는 사업이나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고 공격했다는 점은 비슷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다른 점도 있습니다. 미국의 매카시즘은 멀리 떨어진 소련과의 이념적 대결을 전제로 했지만, 종북몰이는 우리와 같은 민족인 북한 사람들에 대한 극단적 증오를 강요한다는 점에서 반인륜적인 행위입니다. 종북몰이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안위를 위협하는 전쟁몰이에도 쉽사리 반대하지 못합니다. 

영화 <트럼보>는 매카시즘의 시대에 고뇌하는 영화계 인사들에 대해 깊이 있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1950년대 미국과 헐리우드의 모습을 실제에 가깝게 재현했다는 좋은 평을 받았다고 하니 한번쯤 감상해 보시기를 권유합니다. 


▶▶ Daum 영화의 <트럼보> 소개 바로가기


영화 <트럼보>의 포스터


영화 트럼보가 우리에게 1950년대의 진실을 보여주다.

2015-11-27 찰스 카이저(Charles Kaiser)


1950년대가 정말로 어떠했는지를 기억하기에 너무 어린 사람들에게 블랙리스트에 오른 시나리오 작가 달튼 트럼보(Dalton Trumbo)와 할리우드 텐(Hollywood Ten)에 관한 새 장편영화 ‘트럼보(Trumbo)’는 꼭 봐야할 영화다. 이 영화의 출중한 감독인 제이 로치(Jay Roach)도 그런 어린 사람들에 포함되겠지만 놀랍게도 그는 당시 시대를 훌륭하게 재현해냈다. 로치의 영화는 빼어난 오락영화, 중요한 역사 강의, 현재의 거울이 되는 것을 동시에 달성해냈다. 

 

미국에서 냉전의 시작과 함께 반공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1945년 공산주의자 색출을 위해 구성된 하원 반미활동조사위원회(House 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 HUAC)는 1950년대까지 매카시즘으로 미국인들을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특히나 반미활동조사위원회는 1947년 할리우드에서의 공산주의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41명의 증인을 소환합니다. 그 중 미국 수정헌법에 명시된 사상의 자유를 옹호하며 끝까지 증언을 거부한 10명의 작가들(할리우드 텐)은 감옥에 가야 했습니다. 영화제작자들은 "공산주의자들을 고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매카시즘의 광풍에 동조했습니다. 원래 할리우드 텐은 유명한 독일 출신의 문학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를 포함하는 11인이었으나, 브레히트는 처음에 증언을 거부했다가 나중에 비협조적으로 증언을 하고 나서 독일로 돌아가 버렸다고 합니다.


보수주의자들은 1950년대가 미국인들이 평화와 번영을 경험한 황금기라고 종종 이야기한다. 1950년대는 수백만의 이성애자 백인 남성들에게는 즐거운 시기였다. 그들은 2차 대전에서 돌아와 전례 없던 경제적 기회와 미국을 가로지는 고속도로망과 디트로이트에서 만들어낸 아름다운 자동차들부터 혜택을 누렸다. 하지만 당신이 여자거나, 흑인이거나, 동성애자라면, 혹은 공산당에 약간의 관심이라도 있었던 사람이라면 수많은 장애물 속에서 전혀 다른 미국을 경험했을 것이다. 

1950년대에 흑인과 백인은 여전히 엄격히 격리됐다. 동성애자들은 연방정부와 산하 단체에 의해 채용되는 것이 금지됐고, 여성들이 있어야 할 장소는 항상 집이었다(여성들에겐 신용카드도 없었다). 또한 공산주의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헐리우드, 국무부, 미국의 모든 공립학교 등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반미활동조사위원회(HUAC)에서 증언하고 있는 트럼보


만연한 공포

공포가 그 시대의 지배적 정서였다. 우리 부모님이 그러한 공포에 떨었던 내 개인적 기억 때문에 영화가 더욱 인상 깊었다. 영화 ‘트럼보(Trumbo)’는 하원 반미활동조사위원회(HUAC)가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미국 관객들에게 영향을 주기에 부적절하다고 결정한 인물들에 초점을 맞춘다. 이 위원회는 “현재 혹은 과거에 공산당 당원이었던 적이 있는가?”라는 유명한 질문으로 트럼보를 비롯한 청문회 증인들을 모욕했다. 하지만 트럼보가 지적한 대로 1950년 이후에는 영화제작사 대표들마저도 위원회에 협조하기를 거부했던 사람의 채용을 거부했다.  


훗날 미국의 대통령이 되는 2명이 이 위원회와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닉슨과 레이건이죠. 당시 하원의원으로서 공산당 색출에 적극적이었던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은 반미활동조사위원회의 위원으로 참여하여 전국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당시 미국 배우조합의 대표였던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은 할리우드에서 공산당의 영향에 대해 증언하기 위해 증인으로 출석합니다. 영화에서는 당시 젊은 레이건이 나와 “몇몇 배우들이 공산당의 전략을 따르며 할리우드의 분열을 조장한다”고 주장하는 실제 청문회 장면도 나옵니다. 반공주의로 무장한 두 사람이 훗날 미국의 대통령이 됐다는 사실은 매카시즘 시대 이후에도 미국에서 반공주의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했는지 짐작케 합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헐리우드에서는 진지한 역사물이 적지 않았지만, 요즘에는 '트럼보'처럼 좋은 영화를 1년에 몇 편 건지면 다행이다(올 가을 개봉하는 보스톤 글로브의 유아성애자인 가톨릭 사제의 취재를 다룬 ‘스포트라이트(Spotlight)’도 그런 영화 중 하나이다.).


트럼보 역을 연기한 브라이언 크랜스튼


영화는 트럼보를 연기한 브라이언 크랜스튼(Bryan Cranston)과 차분하고 헌식적인 그의 아내를 연기한 다이안 래인(Diane Lane)의 정력적인 연기로 빛을 발한다. 루이스 CK(Louis CK)는 또 다른 블랙리스트 작가를 연기하고 헬런 머렌(Helen Mirren)은 언론에서 블랙리스트를 찬양한 부도덕한 헤다 하퍼(Hedda Hopper) 연기로 스크린을 밝힌다. 

트럼보는 의회모독죄를 선고받은 후 연방정부 감옥에서 1년을 견뎌야했고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했다. 그 후 그는 가명으로 수십 편의 각본을 쓰면서 겨우 가족을 부양한다. 그가 쓴 각본 중 다수는 영화 제작자인 킹 형제(영화에서 존 굿맨이 그들 중 형을 빼어나게 연기하였다)에 의해 제작됐다. 킹 형제는 핀볼 판매원 출신으로 "The Syndicate"과 같은 통속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지만 트럼보에게 (로버트 리치(Robert Rich)라는 가명으로) 오스카상을 안긴 투우 관련 영화인 "The Brave One"을 제작하기도 했다. 

여기에 지금에 대한 거울이 있다. 의회를 통해 이런 유해한 조사에 낭비된 예산은 오늘날 의회에서 벵가지 조사(Benghazi investigations)에 탕진된 세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는 의회의 부정행위가 일탈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불행히도 미국은 그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60년대에 오토 프리민저가 트럼보의 이름을 ‘엑소더스(Exodus)’에 올리고, 커크 더글라스가 ‘스파르타쿠스(Spartacus)’에 그의 이름을 싣고, 케네디 대통령이 ‘스파르타쿠스’를 보기 위해 미국재향군인회 시위대를 지나쳐 가고 나서야 블랙리스트는 트럼보의 작품을 익명으로 만들게 하는 힘을 상실했다. 


죄수 시절의 달튼 트럼보


가족의 비밀

영화가 나에게 깊은 울림을 준 큰 이유는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매카시즘에 관한 의견 때문이다. 1950년대의 대표적 좌파 사냥꾼은 위스콘신주의 공화당 상원의원 조셉 매카시(Joseph McCarthy)와 그의 심복이었던 로이 콘(Roy Cohn)이었다. 나는 그들이 이유 없이 파괴했던 많은 사람들의 삶에 비춰볼 때, 그들이 가장 사악한 사람들이라고 믿으며 자라왔다. 


매카시즘이라는 단어의 어원인 조셉 매카시(Joseph McCarthy)의 경우 상원의원(Senator)이었기 때문에 하원(House of Representatives)에서 진행된 반미활동조사위원회에서 활동하지는 않았다고 하네요. 매카시 의원, 매카시즘과 관련된 영화는 <트럼보> 말고도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가 감독한 <굿나잇 앤 굿럭(Good Night, and Good Luck)>(2005)이라는 작품도 있습니다. 당시 언론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매카시즘에 맞서 싸웠던 아나운서이자 언론인인 에드워드 머로(Edward R. Murrow)에 대한 영화로 당시 시대상을 잘 묘사한 흥미로운 작품이죠. 위에 나온 매카시의 심복 로이 콘에 관한 <권력자 콘(Citizen Cohn)>(1993)이라는 영화도 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1930년대 위스콘신 대학에서 그리고 당시에는 옥스퍼드대학교의 베일리얼(Balliol) 대학에서 로즈 장학생으로 있으면서 자유주의적 반공주의자였다. 대다수의 그의 친구들과는 다르게 그는 한 번도 공산당에 가입하지 않았고 결코 매카시즘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매카시즘에 영향을 받은 동시대 사람들의 운명보다 그를 소름끼치게 한 것은 없었다. 

그는 3명의 민주당 대통령 아래서 상원의 승인이 필요한 4번의 연방정부 자리를 맡았다. 그리고 평생의 반공주의에도 불구하고, 그가 의회의 승인을 받을 때마다 우리 가족들은 항상 몸서리를 쳤다. 

바로 내 어머니가 1938-9년 1년 동안 런던에 살았을 때(내 아버지가 그녀를 구애하는 동안) 스페인의 반제국주의 세력에 음식과 의류를 지원하던 단체인 스페인 구호위원회(Spanish Relief)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FBI가 밝혀낼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공포의 기운이 얼마나 격렬했으면, 내 아버지는 어머니의 자선활동이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의회 승인이 거부될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는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자신의 욕조에서 집필하고 있는 달튼 트럼보



원문링크: CNN


※ 더불어삶은 월 1회 의미 있는 세계 소식을 찾아 '국제브리핑'을 통해 소개해드립니다.



'Trumbo' shows us the truth of the 1950s

By Charles Kaiser Updated 1425 GMT (2225 HKT) November 27, 2015


(CNN) "Trumbo," the new feature film about the blacklisted screenwriter Dalton Trumbo and the rest of the "Hollywood Ten," is the must-see holiday movie for anyone too young to remember what the 1950s were really like in America. That group includes its talented director, Jay Roach, but he still does a great job of recreating the era. Roach's film manages to be fine entertainment, an important history lesson, and a mirror for the present, all at once.

Conservatives often invoke the 1950s as a golden period of peace and prosperity in American life. They were a great time for millions of straight white men who returned from World War II to benefit from unprecedented economic opportunity, a new interstate highway system, and the most beautiful automobiles Detroit has ever produced. But if you were a woman, an African-American, a gay person -- or anyone who had ever had the briefest flirtation with the Communist Party -- you experienced a very different America, with many significant roadblocks.

Blacks and whites were still strictly segregated, gay people were banned from employment by the federal government and all of its contractors, a woman's place was in the home (and without a credit card), and ex-communists were unwelcome everywhere: in Hollywood, the State Department and public high schools across the country.


A widespread fear 

Fear was the dominant leitmotiv of the decade. My personal memories of how my parents were touched by that fear deepened the impact of the movie. Trumbo focuses on the "radicals" who the House 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 decided were unfit to influence American film audiences by writing Hollywood films. It was the committee that humiliated Trumbo and the others by demanding, "Are you now, or have you ever been a member of the Communist Party?" but as Trumbo pointed out, it was the studio chiefs who gave the investigators all of their power, by denying employment to anyone who refused to cooperate after 1950.

In the 1970s this kind of serious history was still one of Hollywood's staples, but now we're lucky to get a couple of movies a year as good as this one. ("Spotlight," the story of the Boston Globe investigation of pedophile priests in the Catholic Church, is another one this fall.)

Trumbo benefits from powerhouse performances from Bryan Cranston, who plays the screenwriter, and Diane Lane, who is terrific as his steady, devoted wife. Louis CK plays another blacklisted writer, and Helen Mirren lights up the screen as a vicious Hedda Hopper, who was the blacklist's biggest cheerleader in print and on television.

Trumbo had to endure a year in a federal penitentiary after he was convicted of contempt of Congress and the Supreme Court refused to overturn the verdict. After that, he barely managed to feed and house his family by writing dozens of screenplays under phony names, including a large number for the King brothers (one of whom is brilliantly portrayed by John Goodman), the ex-pinball machine salesmen who made downmarket movies like "The Syndicate," but also produced "The Brave One," a bullfighter film that won Trumbo an Oscar -- but only under the fake name of Robert Rich.

The mirror here for the present: The money wasted by Congress on these poisonous investigations is not unlike the endless expenditures of current legislators on Benghazi investigations. The movie reminds us that congressional malfeasance isn't an aberration; it's an unfortunate American tradition. It was only after 1960 -- when Otto Preminger put Trumbo's name on "Exodus," Kirk Douglas put Trumbo's name on "Spartacus," and John F. Kennedy crossed an American Legion picket line to watch "Spartacus" -- that the blacklist finally lost its power to keep Trumbo's work anonymous.


The family secret 

A big reason the movie affected me so deeply was the opinion of McCarthyism I inherited from my parents. The chief red-baiters of the 1950's were Republican Sen. Joseph McCarthy from Wisconsin and his henchman, Roy Cohn, and I was brought up to believe that these were two of the most evil men who ever lived, because of the many lives they destroyed for no good reason.

At the University of Wisconsin in the 1930s, and then at Balliol College at Oxford, where he was a Rhodes scholar, my father was a liberal anti-communist. Unlike so many of his friends, he never joined the Communist Party, so he was never directly affected by McCarthyism. But nothing appalled him more than the fate of his contemporaries who had.

He held four federal jobs under three Democratic presidents that required confirmation by the Senate. And despite his lifelong opposition to communism, there was a shiver inside the family every time he was confirmed.

The worry was that the FBI might uncover the dangerous fact that when my mother lived in London for a year in 1938-39, while my father was courting her from Oxford, she worked for Spanish Relief -- an organization that sent food and clothing to the anti-fascist side in Spain. The climate of fear was so intense, my father believed that the revelation of my mother's charitable work could have been enough to prevent his confirmation. But nobody ever unearthed it.




posted by 더불어삶